노년의 치과의사를 만나다

의사를 의심하고 깨달은 것에 대하여

by 이우

얼마 전 치과에 갈 일이 생겨 회사 근처에 갈 만한 곳을 찾아봤다. 주변의 치과들 중 평점이 좋은 곳을 찾아봤다. 평생 쓸 이를 치료하는 거다보니 평점이 좋은 곳을 가야겠다 싶었다. 눈에 띈 곳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한 치과였다.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요란하게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환자들이 남긴 후기가 눈에 띄었다. "과잉 진료가 없어요.", "아프지 않게 치료해 주셨어요.", "아이들도 무섭지 않게 잘 진료해 줘요." 어딘가 따뜻함이 느껴지는 후기에서 신뢰가 들었고 호기심마저 일었다. 나는 곧바로 예약을 했다.


며칠 뒤 나는 치과의 진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에 반쯤 누운 채로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 잠시 후, 누군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길래 고개를 돌려봤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다름 아니라 내가 본 치과의사 중 가장 노년이어서였다. 그녀의 머리는 완전히 백발이었고, 얼굴에는 지나온 세월이 주름 속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나의 조부모를 미루어 짐작컨데 80대 일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 '이거 진료를 맡겨도 괜찮은 걸까?' 하는 불신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나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진료는 무사히 끝이 났다. 의사 선생님은 어금니에 살짝 덧덴 아말감이 빠진 자리를 레진으로 깔끔하게 메꿔 주셨다. 그리고 치아 상태도 여기저기 살펴봐주시며 관리 방법도 친절하게 안내해주셨다. 인사를 하며 나오는 데 불신을 품었던 게 내심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나는 회사로 돌아오며 자문했다. 의사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서 느낀 불신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의사라는 존재마저 불신이 들게 한 감정은 노년이라는 것으로부터 연유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왜 노년에 불신을 품고 있었을까?


그것은 따지고 보면 노년에 대한 사회적 통념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장년에 접어들면 그동안 맡았던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나야 할 시기가 찾아온다. 우리는 그것을 은퇴 혹은 명예퇴직이라 부른다. 이 시기를 거친 이들은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혹은 반강제적으로 한발 물러서 젊은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넘기고 은퇴자의 삶을 살아간다. 또한 노년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수용성이 줄어든다. 점차 최첨단 기술, 새로운 트렌드, 그리고 급변하는 시대와 멀어져 간다. 나는 이런 노년에게 건강을 맡긴다는 게 본능적으로 불편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편견이었다. 이제는 시대와 함께 노년의 의미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은퇴 라이프'는 보통 사회의 일선에서 벗어나 그동안 삶에서 누리지 못한 여유를 한껏 누리는 시기처럼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게다가 시대는 완전히 변하고 말았다. 사회에서 물러나기에 60대는 너무나 젊고, 환갑잔치를 하기에도 어딘가 낯부끄러운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은퇴한 60대도 열심히 구직하며 살아간다. 노년도 삶에 대한 방향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마주한 의사 선생님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노년의 훌륭한 표본처럼 느껴졌다. 사회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끊임없이 찾고, 사회 구성원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쌓아 가며, 또 그곳에서 쓸모와 인정을 받는 것.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불신을 이겨 내고 보란 듯이 증명하는 것. 사실, 그들에 대한 사회의 처우는 나의 부모님 또한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청년처럼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가는 모든 노년을 진심으로 응원해 보기로 했다. 그것이 곧 나의 가족과, 나의 미래이기도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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