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세상을 배우다
- 이방인으로서 낯선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세상에는 호구세(虎口稅)가 존재한다. 호구란 본래 호랑이의 입이란 뜻이지만,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후자의 의미를 가진 호구이다. 호구. 좋게 말해 순박하고, 이타적이며, 배려를 잘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땐 세상 물정도 모르고, 주관도 없으며, 손해만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관점과 의미가 어떻든 간에, 세상은 이런 호구들에게 세금을 징수한다.
누군들 호구가 되고 싶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피치 못하게 호구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낯선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 그러하다. 난생처음 어느 낯선 세상에 이제 막 도착한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그네들과 인종도, 문화도, 언어도 다르다. 풍습도, 도덕도, 관습도 모른다. 처음 맞닥뜨리는 세상이기에 그네들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어수룩한 이방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호구가 되는 것이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산지 육 개월 정도 되었던 때였다. 기차로 여섯 시간 정도를 달려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같은 국가 내에서의 여행이고, 수도에서의 거주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여행은 자신마저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수도는 잘 구획 지어지고, 잘 정돈되었으며, 무언가 안정적이었다면, 마라케시는 혼란 그 자체였다. 무척이나 번잡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마치 처음 상경한 시골 소년처럼 역동적인 도시에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사람을 가득 싣고 달리는 버스에 올라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들은 타라고 하는 대신 목적지를 묻는다. 그리고 가격을 제시한다. 300디르함! 500디르함! 그들은 내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다. 모로코 택시의 기본요금은 2디르함(대략 230원)으로 10km, 혹은 20분을 내리 달려도 20디르함(대략 2,300원)을 넘지 않는다. 내가 비싸다고, 미터기를 켜자고 이야기하면 저리 꺼지라는 듯 손을 내젓는다. 몇 십분 동안 택시를 잡아보았지만 미터기를 켜는 택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흥정 끝에 100디르함에 합의를 보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호텔을 찾아가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구시가지의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호텔을 잡았더니 지도를 보고 도저히 찾아갈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는 나를 보곤 자전거를 탄 현지인 사내가 접근했다. “어딜 찾는 거야?” “여기 호텔에 가려고.” 나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데려다줄게.” 갑자기 호의를 건네는 사내. 나는 그를 경계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갑자기 내게 도움을 준다고? 뭔가 의심스러운데.
“어디 가던 길 아니었어?”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내가 말했지만, 그는 다 썩은 이를 다 드러내며 괜찮다고 씨익 웃어 보였다. 여행자를 돕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고까지 했다. 그를 믿기로 했다. 그를 따라 오 분을 걸었을까, 어느새 호텔 앞에 도착했다. “정말 고마워.” “500디르함이야.” “응?” “길 안내해줬으니 500디르함이라고.” 그는 웃음기 없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에 가까운 어조로 돈을 내노라고 했다. 그렇게는 안되지! 나는 살짝 겁이 났지만 터무니없는 금액은 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나갔다.
호텔 앞에서 시끄러운 실랑이가 벌어지자 투숙객 두 명이 나왔다. 마치 럭비 선수처럼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모로코 사내 둘이었다. 그들은 자초지종을 묻더니 안내자를 나무랐다. 그러자 그는 풀이 죽어 혼자 중얼중얼 대기 시작했고, 이내 자전거 핸들을 잡아끌고 길을 돌아가려고 했다. 아, 그래도 길 안내자가 아니었던가. 나는 미안한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 20디르함을 건넸다. 그는 돈을 낚아채더니 나를 노려보며 삿대질을 했다. 마치 나를 기억하겠다는 듯, 밤길 조심하라는 듯이.
호텔에 도착한 나는 진이 빠져버렸다. 나는 여행도 미뤄둔 채 호텔 로비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내가 피곤한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호구가 되지 않으려 애를 쓴 탓이었다. 그들이 징세하는 호구세를 마땅히 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곁에 앉아 있던 프랑스 여행객들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들은 모두 호구세를 치렀다. 그래서 그런지 피곤한 기색 없이 한없이 밝아 보였다. 택시도 한 번에 잡았고, 길 안내자의 도움으로 별 탈 없이 호텔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렇다. 세상은 호구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금은 내지 않으면 피곤한 일만 벌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머나먼 이방의 땅에서 이러다가 충실한 납세자가 되는 건 아닐는지, 자조적인 미소만 나올 뿐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세금 징수원들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나는 똑똑해져야겠다고, 세상 물정을 얼른 배워가야겠다고,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고, 사람을 쉽게 믿지 말아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다. 호구가 되기 싫은 호구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