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기만 한 그대, 대만의 화어문능력시험
'중국어 시험'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중국의 HSK 시험을 떠올린다. 중국어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매우 대중화된 시험이다.
하지만 대만에는 HSK가 아니라 대만 자체에서 운영하는 중국어 시험이 있는데, 바로 화어문능력시험(TOCFL)이다.
단계는 아래와 같이 크게 3개(band A, band B, band C), 그리고 각 밴드 별로 2단계가 더 나뉘어 총 6개 레벨이 있다.
밴드 A에서 C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며 통상 밴드B의 레벨 4가 HSK의 6급 수준과 비슷하다고 한다. 내가 고른 시험은 듣기&독해 밴드B 시험이었고 듣기 50문제(1시간), 독해 50문제(1시간), 총 100문제를 최대 2시간 동안 친다.
시험 수준은 보통 HSK보다 조금 더 어렵다고 여겨지며 실제로 그렇게 쉬운 편은 아니다. 아니면 개인적으로는 TOCFL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험은 난이도의 문제보다는 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에서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일단 대만의 TOCFL은 HSK와 달리 시험자료도 별로 없고 교재도 거의 전무한 상태다. 특히 한국에서 중국어를 배운다고 하면 대만 번체자가 아니라 대륙에서 쓰는 간체자가 대부분이기에 TOCFL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을 더욱 찾기 어렵다. 본격적으로 대만 번체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면 차라리 대만에 와서 배우는 걸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나야 현재 대만에 살고 있고 대만 소재 대학원을 준비하다 보니 TOCFL를 준비하고 있지만 만약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그냥 간체자 중국어(HSK)를 배우는 걸 추천한다. 교재도 훨씬 다양하고 참고할 수 있는 자료도 매우 풍부하다.
마지막으로, 6개월 간 독학으로 TOCFL를 준비하며 느낀 감상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갈 길이 멀다'라고 하고 싶다. 내 중국어 실력이 아니라 바로 TOCFL자체가 갈 길이 멀다라는 의미다. 내가 이렇게 TOCFL를 격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 번째, 나오는 단어 자체가 올드스쿨 그 자체다. TOCFL 내 단어와 숙어 중에는 한 10~20년 전에나 쓰던 그야말로 '늙은 말'들이 많다. 그래서 배워도 실제 회화에서는 잘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만약 원서를 보는 경우라면 그나마 도움이 되겠다마는, 일상 회화에서는 정말 크게 쓰지 않는 말들이 많다.
두 번째로 고를 수 있는 교재 자체가 매우 적다. 대만사범대에서 출판하는 교재도 거의 한정적이며 자주 갱신이 되는 게 아니라서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많다. 그래서 중국어 기초 자체가 부족한 사람들은 나처럼 독학을 하기보다는 대만의 대학교에서 개설하는 언어중심 수업을 듣는 걸 추천한다.
세 번째는 TOCFL 시험 자체를 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부족하다. 나처럼 독학으로 하는 경우에는 시험 접수 당연히 알아서 신청을 해야 하는데, 신청 가능한 자릿수 자체가 매우 적다. 경험상 열리자마자 몇 분 안에 대만 수도 타이베이 시험장은 이미 자리가 꽉 찬다. 재수 없으면 (나처럼) 다른 지역으로 가서 시험을 쳐야 한다.
한국에 부는 중국어 열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교재 자체가 적으니 더 많은 학생들이 HSK를 선택한다. 그 결과 TOCFL 교재 수요 자체가 적어져 결국 한국인을 위한 교재 출간은 더 미뤄지고, 또다시 TOCFL 교재 자체가 충분하지 않고 학생들은 교재가 많은 HSK를 선택하게 되고... 악순환 그 자체다. 최근 대만의 식문화가 한국에서 큰 유행을 하면서 대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상태라고는 하지만 정작 대만의 TOCFL과 한국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