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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Dec 01. 2023

죽을 때까지 내가 화난 이유 모를 남자.

-화, 서운함, 속상함 쓰리콤보.

다투고 화해한 지 5일 채 안 된 월요일이었다.

배 터지게 저녁식사를 한 탓인지 속이 더부룩하다며 J가 먼저 산책을 제안했다

원래 산책을 좋아하는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 얼른 잠바를 챙겨 입었다.

그러다 30분 정도 산책로를 걷고 돌아오는 길에 사달이 나버렸다.


"일자리가 왜 이렇게 안 구해지지, 아~ 스트레스받아."

바리스타 자격증 및 센서리, 브루잉등 커피 관련 수업을 몇 개 듣고 있지만, 여전히 취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몇 개월동안 이력서를 내고 있던 중이었다.

이 푸념이 우리를 다시 '다툼'의 길로 접어들게 한 시발점이 될 줄이야.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듣지 마자 상처받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왜 '노력'하지 않았다 생각하는지 궁금해 다시 물었다.

 

 "내가 뭘 노력을 안 해? 올해 2월부터 열심히 지원하고 있구만."


 "...... 너 올해 초에는 띄엄띄엄 입사 지원 했잖아. 이것저것 배운다고. 그러니까 그렇지."

 J 말의 요지는 '취직'에 몰두하지 않고 바리스타 자격증 수업 듣고, 화과자 체험 수업도 듣고, 작가가 되겠다며 투고도 했던 내 행동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띄엄띄엄 입사 지원 했다고 노력 안 한 거가? 매일 구인사이트에 들어가서 회사 찾아보고 입사 지원도 하고 했거든?"

따져대는 내 말에 J는 입을 다물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내가 누르길 기다리며 딴짓하는 게 더 밉깔랑스러워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내게 "계단도 좋지~"라며 신나게 따라오는 J의 행동에 더 빈정이 상했다.


(J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청결과 위생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보통 엘리베이터 버튼과 같은 외부에서의 모든 접촉은 내 몫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몸 끔찍이 아끼던 그는 코로나에 걸렸고, 난 걸리지 않았다.)


괜히 눈물이 났다.

톡파원 25시를 보고 있는데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속 얘기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J이다.

이상하게 J에겐 부끄러운 것도 자존심 상하는 것도 없어 사소한 감정까지 다 끄집어 내 얘기하는 편이다.

내가 지금 마흔 춘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J가 나보고 노력을 안 했다고 하다니 서운했다. 속상했다.


"아! 아무것도 모르겠으면 걍 내 편만 들어주면 된다고!"

여자 위로하는 법을 모르는 중년 남자 친구에게 정답을 알려줬는데도 응용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입 꾹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내게 "이거 때문이야? 저거 때문이야? 뭐든 미안해."라며 갖은 아양을 떨어댔지만, 절대 내가 왜 입을 닫게 됐는지 J는 알아맞히지 못했다.

결국 다음 날인 화요일까지 (사실 화났다기보다는 서운한 게 더 컸다.) 이상한 이유들만 나열해 이번에도 내가 직접 화난 이유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늘 하던 똑같은 레퍼토리의 행동을 시작했다.


-속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말이 잘못 나왔어. 미안해. 앞으로 안 그럴게.


매번 뜻과 다르게 말이 잘못 나온단다. 그럼 말을 뜻대로 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되는 거 아닌가?

매번 이유가 뭔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단다. 그게 정말 미안한 게 맞는 건가?

매번 한 마디 한 마디에 왜 그렇게 예민하냔다. 무조건 입버릇처럼 미안하다고만 하니까 달라지는 게 없잖니?

매번 다신 안 그러겠단다. 그렇지만 네 말들이 꽤 자주 나에게 상처 주고 있거든?


나보고 포기하라는데, 내가 정말 포기해야 되는 걸까?

도저히 이 사람에겐 '다정한 말 한마디'를 바라면 안 되는 걸까?

이 정도면 정말 내가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님 J의 말대로 정말 내가 예민한 건가?

도대체 언제까지 다퉈야 하나, 나도 나인데 너도 참 너다.


아직도 화해하지 않은 우리 관계를 생각하며 오늘도 내 머릿속엔 온갖 물음표들이 넘쳐대고 있다.



속상해 화요일에 썼던 글입니다.

수요일에 극적으로 화해했습니다.

다정하게 말하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J를 다시 한번 믿기로 했습니다.

또한 저도 속상하다며 입 닫기보다는 말해주고 감정을 푸는데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또 그와의 연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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