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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Dec 04. 2023

다정)미안해서 세스코 직원에게 커피를 건넸다.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

기분 좋을 일 하나 없는 아침이었다.


몇 주 동안 열심히 이력서를 냈지만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마지막 남은 자만과 자존으로 하향 지원은 하지 않다가 선심 쓰듯 몇 군데 지원했는데 이마저도 연락이 없다.


자고 있을 때는 깨우지 말아 달라 그리 부탁했는데 새벽 6시에 엄마가 피망이 안된다며 깨워댔다.

"잘 때는 깨우지 말랬잖아!"

앙칼진 나의 신경질엔 이골이 난 듯 단단하게 무시하는 엄마를 보니 더 신경질이 났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타야 하는 버스가 지나갔다.

15분 기다려 버스에 탔다.

가는 족족 신호에 걸려 이대로라면 늘 타던 시간대의 지하철을 못 탈까 봐 초조했다.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하철역 계단을 뛰쳐 내려갔지만 놓쳤다.


가까스로 지각은 면했다.

오자마자 와플기계를 예열하고 재료 재고를 확인했다.

생크림과 와플 반죽 한 두통씩 여유분은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하나도 없다.

초코 크런치, 아몬드, 초코칩, 사과잼 등 잘 나가는 토핑과 잼이 소분되어 있지 않았다.


"최소한의 다음 날 오픈 영업은 하도록 해둬야지!"

사람 없는 빈 가게에서 소리쳤다.

어제 마감 정산표를 확인하니 평소보다 매출이 좋다. 바빴나 보다.

그래도! 아무리 매출이 좋아도 남김없이 쓰고 채우지 않은 건 너무 하다며 짜증의 타당성을 부여했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좋을 일 없는 아침이지만 더 묵직한 이유가 있다.

어제저녁 또 별 거 아닌 일로 J와 다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 사람이 내 기분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력이 생긴 것인지.


키오스크와 포스기의 전원을 켜고 테이블과 의자를 닦은 뒤 생크림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가게 뒷문이 벌컥 열렸다.

올케가 왔나 싶어 고개 돌렸더니 세스코 잠바를 입은 세스코 직원이 "안녕하세요."라며 들어왔다.


"소독하려 왔습니다."

"지금요?"

평소 같으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세스코 직원의 방문인데, 할 일이 태산인데 소독하려 왔다니 괜히 심통  되물었다.

 "네~ 그동안 불편하신 점은 없으셨어요?"

심통 부리는 걸 눈치 못 챈 건지 이런 홀대엔 익숙한 것인지 웃으며 대응하는 세스코 직원이다.


소독 중엔 와플 재료들을 만들면 안 될 것 같아 하던 일을 멈추고 매장 테이블 쪽으로 나가 섰다.

'이 시간에 소독은 처음인데, 왜 하필 지금 오셨지. 할 일도 많은데 거 참...'

내 손발을 묶어놓은 세스코 직원을 원망했다.


 "여름에 밖에서 안으로 개미가 들어온다고 하셨는데 요즘엔 없지요?"

 "매장 문 사이 틈으로 날파리나 벌레들이 들어온다고 다른 가게 점주님들이 얘기하시던데 여기 매장은 괜찮으세요? 제가 한 번 볼게요."

 "바쁘신 거 같은데 얼른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세스코 직원은 충실히 소독하며 다정한 말투를 일관했다.


갑자기 세스코 직원의 하루가 상상이 되었다.

본인은 본인의 일을 하러 가는 것일 뿐인데 가는 매장마다 나처럼 퉁명한 사람을 만나면 하루가 얼마나 힘들지, 그럼에도 친절한 말투와 꼼꼼한 대응을 해야 하는 감정노동이 얼마나 피로할지.


오늘 첫 업무는 우리 가게 방문으로 시작했을 텐데
내가 그에게 '눈앞에서 놓친 버스고 지하철이고, 여분하나 없는 생크림이고 반죽'처럼 느껴지면 어쩌나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커피... 좋아하세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 저야 너무 좋죠!"

"아이스로 드릴까요?"

"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소독을 끝내고 가방을 정리하던 세스코 직원은 너무나 밝은 미소로 "안 그래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라며 신나 했다.


"안 주셔도 되는데... 사장님 아시면 뭐라 하는 거 아니세요?"

"어휴~ 커피 한 잔에 혼낼 쪼잔한 사장 아니에요. 그리고 저 사장 누나예요."

"아! 그러세요? 아하하하."

세스코 직원이 호탕하게 웃어주니 온갖 표정으로 '불편'을 표현했던 행동이 조금은 용서받은 기분이었다.


"저희가 와플이 주력 상품이라 커피가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맛있게 드세요."

"어휴~ 아닙니다. 이렇게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네요."


되는 일 하나 없어 영 언짢기만 했던 나의 아침이, 고맙다며 환하게 웃는 세스코 직원 덕분에 덩달아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아침의 불운들은 잊히고 내 머릿속엔 밝은 기운의 세스코 직원만이 남게 되었다.



'감정을 옮기지 말자.'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내가 베푼 호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간 다정한 세스코 직원 덕에 내 아침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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