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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Dec 19. 2023

자영업자 필라테스 선생님의 큰 결심.

- 꾸준함과 성실함, 내년에도 부탁해!

 일주일은 감기로,  또 일주일은 와플가게 추가 근무로 2주 정도 필라테스 학원에 가지 못했을 뿐인데, 학원 분위기가 뭔가 달라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학원 왼쪽 벽면에 새로 생긴 고급스러운 금색의 네모난 실내 간판이었다.

거기엔 학원 수강료, 원장 선생님 경력, 처음 보는 이름의 선생님 경력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보니 '다수:1' 수업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은 안 보이고, 진주 귀걸이의 포니테일 머리가 잘 어울리는 처음 보는 선생님이 수업 중이었다.


 감기 때문인지 살이 좀 빠졌다고 말하는 원장 선생님도 눈에 띄게 살이 빠져 보였다.

 "선생님도 살 빠지신 것 같은데요?"

 "오~ 눈썰미~ 맞아요. 나도 2Kg 정도 빠졌네. 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

 "어떤 일들이요?"라고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수다'를 허용하지 않았다. 2주 간 못 했던 운동을 이 50분에 다 녹여보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이전보다 더 강력한 강도로 나를 운동시키셨다.


 옆 강의실에서 '다수:1'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 활기찼던 월요일과 달리 수요일 오전 10시의 학원은 고요하고 조용했다.고요하고 조용한데 뭐지? 이 낯섦은?

그러고 보니 주로 가요가 들려왔던 이전과 달리 지금 울려 퍼지고 있는 이것은 '클래식'이었다.

노래도 바뀐 걸 보니 뭔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게 맞긴 하구나! 또 확신이 들었다.


 "당분간 수요일 오전은 우리 수업밖에 없을 거야. 조용하지?"

 온통 물음표 가득한 머릿속이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이 말했다.

 "원래는 내년 봄부터 학원에 변화를 좀 줘볼까 했는데, 다수:1 수업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퇴사하는 바람에 이참에 내년까지 기다릴 거 뭐 있나 싶어서 계획 앞당겨서 12월부터는 다수:1 수업은 최소로 줄이고 1:1 수업만 진행하려고 해요."

 지난번에 궁금했지만 묻지 못한 학원의 변화를 알려주시기 주시기 시작했다.


 우리 학원을 주변의 모든 건물엔 '필라테스 학원' 간판이 서너 개씩은 꼭 있다.

우리 학원처럼 아담한 규모의 필라테스 학원도 있고, 프랜차이즈 대형 규모의 필라테스 학원도 있다.

필라테스와 요가를 접목한 학원도 있고, 필라테스와 전문 자세교정을 접목한 학원도 있다.

2년 전 기구 필라테스를 배우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뒤지며 필라테스 학원을 검색해 볼 때도 '많긴 많구나.' 싶었는데 그때보다 지금 '필라테스 학원'이 더 늘어나긴 했다.


 "내년엔 경기가 더 안 좋다는데 가격 경쟁만으론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계도 있고. 내가 잘하는 게 뭔가 생각해 봤더니 '클래식 필라테스'더라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어. 모 아니면 도지! 해보는 거지 뭐! 안 그래요?"

 이전엔 '다수:1'의 수업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원장 선생님의 '1:1' 수업을 늘려 가격보다는 질로 승부해 보기로 하셨단다. 예전 '다수:1' 수업 선생님은 정규직 채용이었지만 지금은 오전/오후 시간대별로 프리랜서 강사 분들이 수업 진행하는 걸로 바꿨다고 하셨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내 판단을 믿고 한번 해보기로 했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목소리엔 결단과 결심이 가득 차 있었다.


 "선생님, 저도 꽤 오랫동안 기구 필라테스 배웠거든요. 올해 햇수로 5년 차예요. 오랫동안 필라테스를 한 사람들은 '운동'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싼 곳만 무조건 찾아가진 않을 거예요. 저처럼요. 저는 그래서 선생님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해요."


 백수 주제에 비싼 1:1 수업한다는 게 자랑인가 싶었지만 선생님께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선생님의 표정은 본인의 판단과 결정이 진짜로 옳았다는 듯 확신에 찬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경기가 안 좋아도 될 사람은 돼! 내가 장사만 20년째 하고 있잖아! 그러니 내가 올해 1년 간 지켜본 코알라씨도 부지런히 이것저것 하더만. 잘 될 거야! 그러니 지치지만 마!"


 마침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올해가 벌써 다 가버리려 한다는 생각에 지쳐버리려 했는데 다시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내가 지금 지쳐버리면 선생님께 건넨 내 말이 다 부정될 것만 같은 책임감이 생겼다.



2023년의 12월, 벌써 한 해가 다 갔다.

올해 내가 한 일은 많은데 뚜렷한 결과를 낸 일은 없어 속상했다.

나처럼 많은 이들도 그러하겠지?

일면식 없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체적으로 위로해 본다.



 우리 모두 지치지만 말자.
꾸준함과 성실함,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이것만큼 효험이 보장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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