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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Dec 31. 2023

모르는 동갑내기 애아빠의 띵언.

-나를 사랑하자. 무엇보다 더.

 하... 몇 십분 째 멍하니 스타벅스에 앉아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아무리 쥐어짜도 브런치에 올릴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서다.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밀어붙여보자 다짐하는 글을 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러다 거짓말쟁이가 될 판이다.


 '에잇! 일단 일어나자! 움직이면 뭔가 떠오르겠지!'

배도 고파오는 참이라 일어나려는데 스타벅스 직원이 시식해 보라며 버터빵을 권해왔다.

 '오홋! 공짜빵은 포기할 수 없지! 이것만 먹고 가자!'

빵을 입에 던져 넣고 오물오물 씹고 있는데, 방금 전 자리 잡고 앉은 직장동료로 보이는 남자 네 명의 대화가 자연스레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어휴, 내년이면 마흔한 살이네. 이제 영락없는 40대다야."

 '나랑 동갑이군.'

 "김 팀장은 아까 말을 뭐 그렇게 한대? 그럼 지가 업체에 나가서 말해 보던가. 열받게 시리."

 '직장동료가 맞군. 모든 팀장들은 늘 말만 그렇게 해대지. 암암 알다마다.'

 "어제는 와이프랑 딸이 겁나 싸워대는데 어휴. 여섯 살 되더니 엄마를 이긴다 이겨."

 '유치원 다니는 딸이 있나 보군. 난 유치원 다니는 조카가 있답니다.'


 엉거추줌 의자에 기댄 채 입 속 빵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자세를 고쳐 바른 자세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울려맸던 가방도 옆 의자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려는 의도 때문만은 아니다. 

점심 식사로 우엉 김밥을 사갈지, 불싸이 버거를 사갈지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다. 

김밥집과 햄버거집은 서로 완전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고심해야 하는 일이다. 암암 그렇고 말고.


 동갑내기 딸바보 아빠가 요즘 들어 아내와 말썽꾸러기 여섯 살 딸아이의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다며 하던 말을 이어갔다. 버릇없는 행동을 하거나 말대꾸가 심할 때 아내는 딸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아주 혹독하게 혼낸다고 했다.

 "똑바로 서! 지금 하는 행동이 옳은 행동이야?"

몰아붙이는 아내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 센 딸을 보고 있노라면 본인이 더 조마조마하다 했다.


 딸은 없지만 여섯 살짜리 조카가 있는 나도 자주 목격한 광경이다. 

말도 안 되는 일로 땡깡의 도가 지나치다 느껴질 때 올케도 조용히 조카의 손을 붙들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몇 분 후 엄하게 꾸중을 들은 것인지 방문을 나오는 조카의 표정은 한껏 기가 죽어있곤 했다.


 "혹시 저러다가 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아닌지 괜히 걱정했는데, 그건 또 아니대.
 혼내는 건 혼내는 것뿐이더라.
그런다고 사이가 나빠지는 건 아니더라고."
매번 물어도 아빠보단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대. 참나~
서운하게시리"


동갑내기 모르는 애아빠는 그런 딸에게 서운하다 하지만, 그 얘길 몰래 듣고 있던 나는 괜히 울컥했다.



마흔 되고 나니 인간관계가 협소해졌다. 

그나마 회사 다닐 땐 직장동료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회사도 다니지 않으니 '동료'도 없다.


내 성격이 문제인 건가? 

아까 내가 한 말이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내 말투가 거슬리거나 하진 않았겠지? 

듣기 좋은 말만 해주자. 좋은 게 좋은 거다. 상대방이 좋으면 그걸로 된 거지.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 난 아무거나 상관없어. 괜찮아.

외롭지 않으려 선택한 방법이었다. 나는 아무거나 괜찮으니 네가 좋은 걸로 하자 말하는 것이. 


이랬던 내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니 '혼내는 건 혼내는 것일 뿐'이라는 말이 충고처럼 여겨졌다.

좋아하는 것을 "좋다" 말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다" 말하는 게 관계를 무너지게 만들고 사이를 틀어지게 만들 정도라면 아등바등 끈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대우를 받고도 나는 나를 못 본 척하는 게 맞는 것일까?


 그래서 결심했다.

무엇보다 나은 2024년이 되길 간절히 염원하는 내가 첫 번째로 가질 마음가짐은 바로, 

'나를 사랑하자!'

 배려와 센스라 생각했던 의도와 다르게 왜 남눈치를 그렇게 보고 사냐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배려한 건데 네가 뭘 모르네라고 호기롭게 받아치긴 했다만, 가끔 제삼자의 눈이 정확할 때가 있지 않을까?


 사랑하자.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나부터 사랑해 보자.

 배려하자. 타인을 배려하기 전에 나부터 배려해 보자.

 눈치 보자. 타인을 눈치 보기 전에 나부터 눈치 보자.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 따위 그만 걱정하고, 내가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보자. 이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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