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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an 08. 2024

계좌이체 완료 확인을 손님으로부터 강요받았다.

-감사하면서 씁쓸했다.

 지난 3주 간 와플가게는 정신 못 차릴 만큼 아주 바빴다. 

사장님이 근처 중학교에 와플 쿠폰 390장을 판매했다며 아마 '조금' 바빠질 거라고 가볍게 얘기했었는데, 전혀 '조금'이 아니었다. 

 딸기 제품 출시 이후 쭈욱 바쁘긴 했지만 이렇게 다 집어던지고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 


 선생님 몰래 학교에서 빠져나왔으니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얼른 와플을 만들어 달라며 열댓 명이 우르르 와플가게에 한 동안 몰려왔다. 

 가게 안을 가득 채운 검은 패딩 무리의 중학생을 보고 놀라 발걸음을 돌리는 가게밖 손님들도 몇 명 보였다. 검은 패딩 무리의 중학생들은 추가 요금을 지불해 각자 먹고 싶은 와플을 주문한 뒤 어디 가지 않고 감시하는 듯 카운터 앞에 팔짱 끼고 서서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도 그들이 몰려오려나?'

 전장에 나가는 병사가 무기를 정성스레 닦으며 준비함에 만전을 기하는 마음으로 와플 몇 개를 미리 구워두고, 잘 나가는 메뉴의 토핑도 미리 세팅해 두었는데 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그들이 몰려오지 않았다. 


-방학했잖아. 

 친구의 한 마디에 '아!' 라며 왠지 모를 안도감에 신이 나던 찰나 귀여운 하얀색 털 귀마개를 한 40대의 어여쁜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저, 주문하려고요."

 "키오스크로 주문해 주시면 되세요."

 "송금하려는데... 여기 송금 주문은 안 되나요?"

 "아니요, 돼요. 주문하실 와플 알려주세요."

 

 우리 와플 가게에선 카드, 현금, 삼성페이, 모바일 상품권 등과 같은 대부분의 결제는 키오스크에서 받지만, 계좌이체만 예외적으로 포스기에서 직접 주문을 받고 있다.

 의외로 꼬마 손님들이 계좌이체 주문을 많이 하는데, 대부분 엄마에게 전화해 금액과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엄마가 대신 계좌이체를 해 주었다. 

 엄마가 캡처해서 보낸 '계좌이체 완료하였습니다.'라고 적힌 사진을 나에게 의기양양하게 보여주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귀엽다. 


 "메이플 시나몬 와플 하나 포장해 주세요."

 "네, 2,900원이고요. 포스트잇에 적힌 계좌로 이체해 주시면 되세요."

 사장님 계좌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건네고 와플을 만들기 위해 몸을 홱 돌렸는데 손님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잠시만요. 계좌이체 확인하셔야죠."

 "아... 이체하시는 동안 와플 만들면 기다리시는 시간이 절약되니까요..." 라며, '계좌이체를 안 해놓고 했다고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아요.'라는 눈빛을 보냈다.


 "안 돼요. 정확히 계좌이체가 완료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하셔야 해요. 잠시만요"


 사실 그동안 계좌이체를 확실히, 정확히, 꼼꼼히 확인을 하진 않았다. 

바쁠 때는 쪼그마한 휴대폰에 '계좌이체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만 슬쩍 흘려볼 뿐 이 사람이 제대로 확인 버튼까지 눌렀는지, 안 눌렀는지 확인할 여유가 없다. 

 슬픈 얘기지만, 슬슬 노안이 와서 그런지 한 번에 문장이 잘 읽히지도 않는다.


초반에 손님이 나간 뒤 '방금 얼마 송금했는데 입금됐는지 확인해 줘.' 라며 사장님께 카톡을 보내 계좌이체 완료 여부를 확인을 했었는데 전부 제대로 계좌이체가 되었었다. 

 매번 사장님께 톡을 보내 확인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속이려는 손님을 만난 적도 없고 해서 가끔 뉴스에서 보던 '먹튀 손님'은 정말 뉴스에만 나오는 일인가 보다 라며 안일한(?) 마음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제가 실제로 봤어요. 시장 분식집에서 떡볶이 먹고 있는데, 학생들이 떡볶이랑 순대를 시켜서 먹더라고요. 그러곤 분식집 할머니한테 현금이 없으니 계좌이체 하겠다고 해 놓고 글쎄 계좌이체를 안 하고 갔나 보더라고요."


 "네~? 진짜요? 전 그런 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서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러니까요. 보통 문자로 출입금 알람 오게 해 놓거나 하는데 할머니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 설마 돈 안 내고 가겠나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학생들이 나가고 뒤늦게 입금 안 된 거 아시곤 급하게 뛰쳐나가시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아이고, 할머니 어째요. 그렇게 돈 날리셨네요... 참... 왜 그런 못된 짓을 하는 건지..."


 "그러니까요. 저도 세상 참 무섭다 싶었어요. 그러니 사장님도 계좌이체 이런 거 꼼꼼하게 다 확인하셔야 해요. 방금 보냈어요. 보세요. 이리로 오셔서 확실히 한 번 보세요."


 강요(?)에 못 이겨 손님 폰에 얼굴을 들이밀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읽어 내려갔다. 확실히 계좌이체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손님은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셨다.

 

 "아셨죠? 계좌이체는 번거로워도 꼭 제대로 확인하세요."


 "네, 당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남의 일이라 대충 한 두 마디 조언으로 끝내도 될 일이었을 텐데 진심으로 걱정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던 하얀 털 귀마개의 그 손님이 한 동안 계속 생각났다.




 다음날,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쭈볏대며 가게로 들어왔다. 복숭아 아이스티와 스노우 와플을 먹고 갈 건데 얼마냐고 물었고, 5,600원이라고 말해 주었다.

가격을 들은 꼬마 손님은 계좌이체를 하려는데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응? 꼬맹아, 너 계좌이체도 할 줄 알아~? 캬~ 똑띠네 똑띠야.' 

차마 입밖으론 꺼내지 못할 말을 삼키며 계좌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전해 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포스트 잇도 대충 보는 듯 마는 듯하더니 휴대폰 숫자 자판은 치지 않고 흘깃흘깃 내 눈치를 보고만 있었다. 와플 만들려다 괜히 아이의 행동이 수상하게 여겨져 하던 일을 멈추고 엄한 테이블을 닦아댔다.


 "계좌이체 다 하고 저 보여줘야 해요~"

 "네."

 혹시나 해서 말을 걸어봤는데도 여전히 서성이며 휴대폰을 꼬옥 쥐고만 있었다.


 -5,600원 입금되면 알려 줘.

 -왜?

 -묻지 말고 그냥 알려줘.

 사장님께 카톡을 보냈다.


 "보냈어요."

 아이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이상하다 분명 숫자 자판 치는 걸 못 봤는데...


 -입금 완료.

 사장님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가 계좌이체 하느라 좀 늦었어요."

 아~ 그럼 그렇지, 괜히 수상하다 의심한 내가 너무 싫어졌다.

 "아이스티 더 많~이 줬어. 많이 먹어."

 미안한 마음에 아이스티를 컵 끝까지 담아 주었다. 


 원래였다면 아무렇지 않을 '계좌이체의 기다림'이 '의심'이 시작되자 시간은 더디게 가는 듯했고, 손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게 만들었다.

 계좌이체 주문을 없애면 안 될까 싶다가도 '엄마 계좌이체 찬스'로 와플을 먹으러 오는 꼬마 손님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손님이 기분 나쁘게 느끼지 않는 선에서 내가 제대로 계좌이체 완료를 확인하는 수밖에.  



 내가 누군가에게 한 행동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좋은 일을 했다면 좋은 일이 되어,
나쁜 일을 했다면 나쁜 일이 되어,
아프게 했다면 아프게 하는 일이 되어,

인생에 공짜는 없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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