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52분 매장 안 테이블들을 닦고 있는데 창모자를 눌러쓴 손님 두 분이 들어왔다.
엇, 와플기계 아직 예열 안 됐는데...
엇, 키오스크도 포스기도 안 켰는데...
"아직 준비 중인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럴게요."
시크하게 대답하곤 매장 밖으로 나갔다.
'안에서 기다려도 되는데......'
부르려다 그럴 시간에 얼른 영업 준비나 하자 싶어 부랴부랴 주방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닦던 행주를 싱크대에 던져놓고 키오스크와 포스기를 켰다.
냉장고에서 반죽과 생크림을 꺼내는데 약봉지를 든 아빠와 콜록콜록 기침하는 7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준비 중이라 5분만 기다려주세요."
아... 내가 방심했구나.
여름과 방학 기간에는 10시 오픈하자마자부터 매장 방문 손님과 배달 주문이 들어와 오자마자 무조건 키오스크와 포스기, 와플기계부터 작동시켰다.
하지만 가을 겨울엔 빨라야 11시 다 되어야 주문이 들어오길래 오늘도 그러려니 했는데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감기 걸린 꼬마 아가씨가 바나나 누텔라 와플을 주문했다.
젤라또 와플이 먹고 싶다는 딸에게 감기 걸려 아이스크림은 안된다며 어르고 달래던 아빠 손님은 아침이라 입맛이 없으신지 그저 물 한잔 달라했다.
바깥으로 나갔던 창모자 손님이 어느새 들어와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그녀들은 베스트 메뉴인 애플 시나몬과 오레오누텔라 와플,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을 주문하곤 앉았다.
자주 만들어 본 베스트 메뉴들이라 그런지 레시피를 재차 확인하지 않고 뚝딱뚝딱 만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아, 뿌듯하다.
'매장 식사'를 선택한 두 팀의 메뉴를 클리어하고 생크림을 만들려는데 또 콜록콜록 거리는 남자아이와 약봉지를 든 엄마가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날이 추워지니 감기 환자가 확실히 많아졌다.
주문서를 보니 엄마와 아들 손님도 매장에서 먹고 가는 걸로 선택이 되어있었다.
보통 오전엔 포장해 가는 손님이 대부분인데 오늘은 11시도 되기 전에 식사하는 손님들의 대화 소리로 매장 안은 활기가 넘쳤다.
흔하지 않게 바쁜 아침이라 잠시 허둥댔더니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느껴졌다.
"잘 먹었습니다."
콜록거리는 딸의 패딩 점퍼를 단디 여민 뒤 매장을 나서는 아빠 손님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히 계세요."
나란히 창모자를 쓰고 왔던 시크한 손님도 뒤따라 가게를 나갔다.
배달 주문 와플을 기사님께 건네고 생크림을 만들었다. 평소보다 50분 늦었다.
완성된 생크림을 냉장고 넣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엄마와 아들 손님이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며 나갔다.
마지막 손님들이 나가자 매장 안은 완벽히 고요해졌다.
출근하자마자 내려 마시던 커피를 오늘은 11시가 넘어서야 맛볼 여유가 생겼다.
가게로 걸어올 때만 해도 쌀쌀한 아침 공기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노라 다짐했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했다.
얼음 잔뜩 넣은 아메리카노를 들고 햇살이 내리쬐는 매장으로 나가 자리 잡고 앉았다.
"오늘 뭔 일이래~ 갑자기 바빴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크게 나왔다.
회사 사무실이었다면 옆에 앉아있는 박 대리에게 정신없었던 방금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했을 텐데 지금은 내 혼잣말에 "그쵸? 갑자기 정신없었죠?"라며 대꾸해 줄 동료가 없다.
'나에게 또다시 동료가 생기는 날이 오긴 할까?'
유난히 그 시절 내 곁의 동료들이 그립다.
순식간에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아~ 입동(立冬)도 지났는데 나는 아직 가을 타는 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