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출근해도 느긋할 수 없는 이유.
출근길에 '오늘은 기필코 영업 시작 전 나만의 커피타임을 갖자!'라며 아무리 다짐해도 막상 가게에 도착하면 여느 날처럼 일찍 온 보람 없이 여유가 사라진다.
들어가는 순간 고요한 가게 안의 청소 상태가 매우 거슬리기 때문이다.
나도 그다지 깔끔한 사람은 아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내 방을 보며 마흔 먹어도 하는 짓이 10대 때랑 똑같다며 도대체 방 청소는 언제 할 거냐는 엄마의 한 섞인 호통을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듣는 우리 집 돼지울간의 주인이다.
내 화장대는 물건들이 뒤섞여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로 몇 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내가 회사 탕비실은 매일 쓸고 닦으며 물건을 정리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회사 싱크대와 냉장고 정리도 알아서 척척 하곤 했는데, 역시 돈의 힘인가?
돈 받고 일하는 이상 '값어치'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손님이 뜸한 시간엔 사부작사부작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쓸고 닦고 있는데 몇 달째 이건 뭐 나만 쓸고 닦는 기분이다.
하루이틀 본 걸로 이런 하소연을 하는 건 아니다.
사장 누나라곤 하지만 지도 알바면서 오버한다 할까 봐 꾹꾹 참았는데 도저히 이날은 참을 수 없었다.
오늘도,
전날 마감 근무자들이 매장 청소를 한 것 같긴 한데 구정물로 밀대질을 한 것인지 밀대의 움직임이 전부 읽힐 정도로 검정 물자국이 바닥에 나있었고, 드문드문 머리카락들도 붙어있었다. 빗자루질을 하지 않고 밀대질을 한 것인지 바닥 양쪽 가장자리엔 각종 찌꺼기가 쌓여있었고 테이블엔 굳은 반죽들과 크림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끈적끈적거렸다.
오늘도,
여기가 제일 심하다, 싱크대 하수구.
상상될 독자들을 위해 이 부분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아무튼 각종 찌꺼기가 늘 그득히 쌓여있는 곳이다.
오늘도,
커피 머신과 일회용 음료컵 정리대 주변엔 우유와 커피 등 각종 음료와 시럽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도마행주용 락스가 섞인 물에 10시간 이상을 담가놓았을 장갑과 행주는 하나도 씻겨지지 않은 채 물 위에 떠 있다.
조물조물 거려 3시간 정도 락스 섞은 물에 담가만 놓아도 뽀얘지던 장갑과 행주를 보니 대충 대야에 툭툭 던져놓고만 갔을 마감 아르바이트생이 상상됐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될 텐데라며 탓하다가도 '청소'라는 업무를 아르바이트생에게 요구하는 건 꼴랑 최저시급 주면서 별 일 다 시키는 사장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가게 외관이 좀 지저분한 것 같은데? 봤니?
목요일마다 가게엔 별일 없냐며 먼저 연락 오는 동생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그런가? 자세히 못 봤어. 나중에 가서 청소 한번 할게.
-아침 출근하다 보면 다른 가게들은 오픈 아르바이트생이나 매니저들이 가게 유리창 닦고 내부 청소하고 있던데... 우리도 오전 근무자가 유리창을 닦는 건 어떨까?
-음... 그렇게 더러워?
-어, 이 라인에 우리 가게 유리창이 제일 지저분한 것 같아. 거미랑 벌레들도 구석구석 많이 붙어있고.
읽고 바로 답이 없이 오지 않는 것을 보니 동생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10평 남짓한 가게라 유리창이 큰 것도 아니고 매일 가게문 포함 4 군데 정도만 슥슥 닦아만 줘도 한결 보기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서 한번 대청소할게, 와플 만드느라 바쁜데 청소까지 시키면... 좀 그래.
-평일 오전엔 안 바빠. 유리창 닦는데 넉넉잡고 10분이면 되는데? 매일 조금씩 하면 큰 일거리도 아냐.
가을/겨울 평일 오전 시간은 다른 계절보다 손님이 적은 편이다.
어쩔 땐 10시에 오픈했는데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첫 주문이 들어오곤 한다.
하지만 매출이 중요한 남동생은 행여 장기 근무로 손이 빨라 단체주문이 들어와도 끄떡없던 아르바이트생들이 청소까지 닦달하면 그만두진 않을까 걱정되는 듯했다.
동생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나를 자극시켰고, 손가락이 휴대폰 자판에서 빠르게 춤추며 글자를 만들어내 동생에게 쏘아댔다.
-아니 뭐 테이블 의자 다 빼고 매일 대청소하듯 청소하자는 것도 아니고 유리창이랑 가게 앞에 빗자루질 좀 해달라는 게 잘못이야? 너 아침에 가게 들어오면 얼마나 지저분한 줄 알아? 이건 뭐 청소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티도 안나. 묵은 때까지 청소해 달라고 바라진 않아! 이런 건 나나 네가 한다 쳐! 그래도 너무 하잖아! 와플만 빨리 잘 만들면 다야? 위생적이지 않은 가게에 손님들이 계속 오고 싶겠어?
-알겠어. 내가 다음 주에 매니저한테 얘기할게, 그런데 주말엔 계절 상관없이 오픈하자마자부터 바빠서 유리창 청소까진 무리일 것 같아.
-그럼 평일 오전 아르바이트생만 유리창 청소하는 걸로 하자. 가게 걸어오다 보면 다들 유리창 닦거나 청소기 돌리고 있더라. 그 정도 청소는 할 수 있는 일이야.
-어쩌겠어. 사장이 가게에 없어서 그래,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네가 와서 직접 봐봐라, 이게 감수하고 안하고의 문제인지, 이렇게 할 거면 때려치우든가!
-누나가 이렇게 봐주잖아.
-너 진짜 위생, 청결, 청소 이게 제일 중요한 거야. 이번에 확실히 말해, 알겠지?
빗자루 질과 유리창 닦기가 대단히 힘든 업무를 시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고심해야 하는 건가 싶다.
하루하루 쌓이면 큰일이 되지만 매일 조금씩 치워두면 굳이 시간을 내여 힘들여해야 할 일이 없지 않은가?
내가 먼저 말을 꺼낸 만큼 모범을 보이자 싶어 그날은 2시간 내내 청소에 매진했다.
"손님이 드시고 나면 테이블 정리를 꼭 하세요."
지금은 퇴사한 성실한 매니저가 남자 매니저에게 이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던 걸 본 적이 있다.
당연한 걸 재차 왜 얘기하나 싶었는데 남자 매니저와 둘이 근무를 몇 번 해보니 알 것 같았다.
그는 손님이 머물다 간 테이블에 생크림과 크림, 초코칩쿠키와 초코칩이 묻어있어도, 테이블과 의자가 중구난방으로 흐트러져 있어도 치우러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묻지도 않은 본인 개인사나 여자친구 얘기, 먼 훗날 멋진 자신의 카페를 차릴 거라는 인생 계획을 얘기하는 데에 신이 나 매장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이야기 들어주던 내가 테이블 정리하러 나가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드래그하며 시간을 때울 뿐이었다.
비단 남자 매니저만 그런 게 아니었다.
1년 가까이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다 이번에 매니저가 된 여자 매니저도, 추석 추가 근무를 같이 하게 된 다른 아르바이트 생들도 누구 하나 나서서 손님이 다녀간 매장을 정리하러 나가지 않았다.
키오스크 밑에 우후죽순 떨어져 있는 영수증을 보고도 지나쳤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절대 깔끔 떠는 성격이 아니다.
청소와 거리가 먼 여자다.
우리 집 돼지 울간의 주인이기도 하다.
엄마가 와플가게에 한 번 온 적 있는데 밀대질 하고 있는 나를 보고 한마디 했다.
"집에선 손 하나 까딱하지도 않으면서 네가 여기서 청소를 다하노?"
"엄마, 나 돈 받고 일하는 거잖아. 해야 할 건 해야지."
"허리 너무 숙이지 마라! 허리 나간다. 그 뭐 하러 그래 힘주고 닦노!"
아들 가게에서 일하는 딸에게 열심히 청소한다고 걱정하는 엄마다.
이렇듯 나도 우리 집 귀한 딸이다.
와플 가게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와플만 잘 구우면 장땡인 건 아니다.
지저분한 곳에 누가 내 돈 써가며 와플을 먹으러 오겠는가?
내 생각은 그러한데 정말 남의 집 귀한 아들딸에게 '청소'를 바라는 건 정말 오버일까?
나에겐 당연한 일이라 요구하는 것인데 이것조차 '꼰대스러움'으로 치부되는 건 아닌지 괜히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