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와플 맛있죠?
가게 앞에서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할머니와 5~6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윽박지리는 듯한 할머니의 격앙된 목소리에 나만 놀랄 뿐 손자는 흔들림 없이 와플을 골랐다.
딸기크림 와플을 먹을 생각에 신이 난 손자는 할머니의 왼팔을 좌우로 세차게 흔들어 댔다.
"아이고, 그래주면 나는 고맙죠."
이제 고작 오전 10시 조금 지났을 뿐인데 할머니는 에너지 넘치는 손자에게 기가 다 빨린 듯 지쳐있었다.
"주문하신 와플 나왔습니다."
"니가 가가 받아 오너라, 고맙습니다~ 하고."
손자는 개구지지만 수줍은 표정으로 와플을 전해 받았다.
"자, 이제 원하는 와플 사줬으니까 어린이집 가자. 말 좀 들으라~ 할머니 힘들어 죽겠다."
"맛있당."
"맛있나? 뭐 얼마나 맛있는데 아침부터 난리부리노? 할머니 한 입 도봐라."
할머니 키에 맞춰 손자가 자기 머리 위로 와플을 치켜들자 할머니가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
"맛있네, 하여튼 입은 고급인기라.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원하던 와플을 획득한 손자는 순순히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가게 문을 나섰다.
와플가게 근처엔 병원과 학원, 어린이집이 많다.
시간대마다 주요 고객층이 확연히 나뉘는데,
점심시간엔 병원 유니폼을 입거나 사원증을 목에 맨 회사원들이 점심 겸 간식 겸 와플 사러 몰려온다. 간혹 이 시간에 중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올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시험기간이다.
학원 수업이 마치는 늦은 오후와 저녁시간엔 초중고 학생들이 주요 고객층으로, 주문하는 와플도 아주 다양하다. 망고범벅젤라또 와플, 초코범벅젤라또 와플, 오레오누텔라 와플 등 달고 토핑 가득한 메뉴들이 많이 나간다. 단 것으로 공부 스트레스를 푸는 건가 싶다.
그리고 나의 근무 시간인 오전에는 어린이 집에 아이를 보내고 잠깐의 수다 타임을 즐기기 위해 가게에 들른 젊은 엄마들도 있지만, 가장 많이 오는 손님은 할머니와 그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손자손녀들이다.
손자의 손에 이끌려 와플가게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와플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신다.
난 잘 모르니 니가 골라보라는 할머니의 말에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이 키오스크에서 춤추듯 빠르게 움직이고 이내 주방으로 알림음이 울리며 주문서가 들어온다.
대부분의 손자들은 자기 얼굴보다 큰 와플을 혼자선 다 먹지 못한다.
반쪽정도 먹다가 "먹기 싫어."라며 와플 쟁반을 할머니에게 들이민다. 그럼 할머니는 "거봐라, 얼마 먹지도 못할 거면서 사달라고 졸라대노."라며 아깝다는 듯 남은 와플을 집어드신다.
"아이고, 요거 달다리한 게 맛있네? 네가 그래가 좋아했구나."
손자가 남긴 와플을 어쩔 수 없이 한 입 베어 문 할머니들은 신세계를 발견한 듯 아주 맛있어하시며 남은 와플을 다 드신다.
"방금 주문한 이거 이름이 뭐예요?"
"크림 와플이에요. 밀크 크림에 초코칩 추가된 거예요"
"다음에 시켜 먹어야겠네. 아주 맛나네."
할머니들은 다음번엔 당신이 먹을 와플을 사기 위해 다시 와플 가게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손자의 땡깡이 아니었다면 모르셨을 와플의 매력을 알게 된 할머니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와플 먹는 게 일상인 손자에겐 많은 간식거리 중 하나이지만 처음 맛본 할머니에게 와플이 이 순간만큼은 특별하고 색다른 디저트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동네의 많은 손자들이 계속 할머니 손을 이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와 주길, 할머니에게 바삭하고 맛 좋은 와플의 신세계를 알게 해 주길 오늘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