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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Oct 10. 2023

할머니와 손자 그리고 와플.

-할머니 와플 맛있죠?

"뭐 묵을낀데!! 니 와플 먹을 줄 아나? 어린이집 가야 되는데 사달라고 쌩 땡깡을 지기고... 어휴 할머니 힘들다 니때매~"


 가게 앞에서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할머니와 5~6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골라봐라 니가! 할미는 와플 모른다. 니가 먹고 싶다 캐가 들어왔다 아이가!"

윽박지리는 듯한 할머니의 격앙된 목소리에 나만 놀랄 뿐 손자는 흔들림 없이 와플을 골랐다.


 "딸기 딸기로"


 "여기 딸기 와플 있어요? 가만있어봐라 쫌! 물어보고 있잖아!!"

 딸기크림 와플을 먹을 생각에 신이 난 손자는 할머니의 왼팔을 좌우로 세차게 흔들어 댔다.


 "딸기 들어간 와플은 지금 없고요. 딸기맛 크림 와플은 있어요."


 "그걸로 하나 주소."


 "제가 키오스크에서 주문 도와드릴게요."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손자의 등쌀에 할머니는 아예 체크카드를 나에게 맡기며 대신 주문해 달라 하셨다.


 "와플 구워야 해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와플!! 빨리빨리~~"


 "가만있어봐라 쫌!! 기다리라 안카나, 할머니 니때매 힘들어 죽겠다. 죽겠어 야야~가만히 좀 있으래이."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가게 안을 뛰어다니는 손자를 쳐다보며 연신 힘들어죽겠다는 말을 하고 계신 할머니의 이마엔 땀이 맺혀있었다. 덩달아 와플을 구워내고 선풍기 바람에 식혀 크림을 바르는 데 소요되는 3분이라는 시간이 지금 이 순간 30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혹시 밀크크림 추가할 수 있어요?"

괜한 책임감에 빠르게 딸기 크림을 바르고 있는데 할머니가 물었다.


 "아... 추가하시려면.. 음... 다시 주문을 하셔야 될 거 같은데... 잠시만요."


 "아이고 또 계산해야 해요? 그럼 됐어요. 고마 귀찮게 했네 내가. 저번에 뚜레쥬르에서 크림빵 사줬디 크림만 쏙 빼먹더라고... 그서 이번에도 크림만 쏙 빼먹을까 싶어가 크림을 더 넣을까 싶어 그냥 물어봤어요."

 손자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던 할머니는 크림을 좋아하는 손자에게 크림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하셨다.

 

 "아... 원래는 안되는데, 제가 밀크크림도 옆 면에 조금 발라 드릴게요."


 "아이고, 그래주면 나는 고맙죠."


 이제 고작 오전 10시 조금 지났을 뿐인데 할머니는 에너지 넘치는 손자에게 기가 다 빨린 듯 지쳐있었다. 


 "주문하신 와플 나왔습니다."


 "니가 가가 받아 오너라, 고맙습니다~ 하고."

 손자는 개구지지만 수줍은 표정으로 와플을 전해 받았다.


 "자, 이제 원하는 와플 사줬으니까 어린이집 가자. 말 좀 들으라~ 할머니 힘들어 죽겠다."


 "맛있당."


 "맛있나? 뭐 얼마나 맛있는데 아침부터 난리부리노? 할머니 한 입 도봐라."


 할머니 키에 맞춰 손자가 자기 머리 위로 와플을 치켜들자 할머니가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

 "맛있네, 하여튼 입은 고급인기라.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원하던 와플을 획득한 손자는 순순히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가게 문을 나섰다.




 와플가게 근처엔 병원과 학원, 어린이집이 많다.

 시간대마다 주요 고객층이 확연히 나뉘는데,

 점심시간엔 병원 유니폼을 입거나 사원증을 목에 맨 회사원들이 점심 겸 간식 겸 와플 사러 몰려온다. 간혹 이 시간에 중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올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시험기간이다.

 학원 수업이 마치는 늦은 오후와 저녁시간엔 초중고 학생들이 주요 고객층으로, 주문하는 와플도 아주 다양하다. 망고범벅젤라또 와플, 초코범벅젤라또 와플, 오레오누텔라 와플 등 달고 토핑 가득한 메뉴들이 많이 나간다. 단 것으로 공부 스트레스를 푸는 건가 싶다.

 그리고 나의 근무 시간인 오전에는 어린이 집에 아이를 보내고 잠깐의 수다 타임을 즐기기 위해 가게에 들른 젊은 엄마들도 있지만, 가장 많이 오는 손님은 할머니와 그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손자손녀들이다.


 손자의 손에 이끌려 와플가게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와플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신다.

 난 잘 모르니 니가 골라보라는 할머니의 말에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이 키오스크에서 춤추듯 빠르게 움직이고 이내 주방으로 알림음이 울리며 주문서가 들어온다.


 대부분의 손자들은 자기 얼굴보다 큰 와플을 혼자선 다 먹지 못한다. 

 반쪽정도 먹다가 "먹기 싫어."라며 와플 쟁반을 할머니에게 들이민다. 그럼 할머니는 "거봐라, 얼마 먹지도 못할 거면서 사달라고 졸라대노."라며 아깝다는 듯 남은 와플을 집어드신다.


 "아이고, 요거 달다리한 게 맛있네? 네가 그래가 좋아했구나."

 손자가 남긴 와플을 어쩔 수 없이 한 입 베어 문 할머니들은 신세계를 발견한 듯 아주 맛있어하시며 남은 와플을 다 드신다.


 "방금 주문한 이거 이름이 뭐예요?"


 "크림 와플이에요. 밀크 크림에 초코칩 추가된 거예요"


 "다음에 시켜 먹어야겠네. 아주 맛나네."

 할머니들은 다음번엔 당신이 먹을 와플을 사기 위해 다시 와플 가게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손자의 땡깡이 아니었다면 모르셨을 와플의 매력을 알게 된 할머니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와플 먹는 게 일상인 손자에겐 많은 간식거리 중 하나이지만 처음 맛본 할머니에게 와플이 이 순간만큼은 특별하고 색다른 디저트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동네의 많은 손자들이 계속 할머니 손을 이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와 주길, 할머니에게 바삭하고 맛 좋은 와플의 신세계를 알게 해 주길 오늘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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