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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Oct 03. 2023

추석연휴에 출근하는 기분이란?

-처음엔 낯설었지만 서서히 적응 중입니다.

  퇴사하기 전부터 줄곧 동생은 와플가게 매니저 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었다.


 "매니저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쉬어?"

 "아니, 근무일이면 나와야지."

 "그럼 안 할래."


그때마다 주말, 공휴일과 같은 빨간 날도 '당연히'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 동생의 부탁을 거절했다. 


 물론 14년간 일했던 전 회사에서 빨간 날 출근했던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당연히 해야 하는 출근'이 아닌 처리해야 할 업무가 밀려서 '내가 선택한 출근'이었다. 

 전 회사는 '뭐든 알아서' 하면 되는 분위기여서 '특근 강요'가 없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단, 업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온전히 실무자 몫이기에 실무자가 '알아서' 특근을 하든 잔업을 하든 하면 되었다. 


 팀원의 실수로 사장에게 깨지는 경우에도 누구 하나 편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우리 팀 팀장마저도...


 나의 와플대학 아르바이트 근무일은 주 2회로 목/금 이틀이다.

 하지만 평일 다른 시간대의 아르바이트생의 개인 사정이나 갑작스러운 퇴사로 대타가 필요해졌을 경우엔 내가 투입되어 일했었기 때문에 실질적 근무일은 주 3~4일 정도가 된다.


 "주말엔 대타 못 해. 안 돼."

 "왜? 약속 있어?"

 "주말이니까 안 돼, 쉬어야 해."


 "현충일 오전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못 나온다는 데 대타 가능?"

 "안 돼, 다른 사람 알아봐."

 "왜? 약속 있어?"

 "빨간 날이니까 쉬어야 해."

 "평일에 거의 쉬잖아."

 "응, 그래도 빨간 날엔 무조건 안 되니까 다른 사람 알아봐."


 아직도 내 몸과 마음엔 직장인의 생활리듬이 박혀있는지 공휴일과 주말 출근이 싫고 낯설다.

 평일에 실컷 쉬지 않냐고 하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만 이상하게 공휴일과 주말엔 일이 하고 싶지 않은데, 하필이면 이번 추석 연휴가 딱 목요일부터 시작이었다.





 "연휴부터 아르바이트 가야 해서 서글프겠네."

 "무슨 회사가 쉬는 날도 일을 시키고 난리냐!"면서 정색할 엄마지만, 아들이 사장인 와플 가게에 출근하는 건 정색거리까진 되지 않나 보다. 목소리가 한결 부드럽다.


 "연휴랑 상관없이 출근해야 하는 날이니까... 어쩔 수 없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추석에 꼭 할머니댁은 가야 한다며 연휴기간에 출근하지 않는 남자 매니저 덕분에 업무 시간이 3시간 더 연장되어 버려 한숨이 나오긴 했다.

 출근 전부터 "연휴라 오늘 엄청 바쁠 거야, 각오 단단히 해."라며 겁주는 동생만 아니라면 매니저의 부재에 한숨까지 쉬어지진 않았을 텐데.


 바글바글 출근하는 승객들로 가득 찼던 버스 안이 한산했다.

 시간 맞춰 지하철을 타야 해 계단을 우르르 뛰어내려 가던 출근길 동료들도 보이지 않았다.

 비어있는 자리라면 아무 데나 몸을 구겨 넣어야 했던 것과 달리 지하철 안은 승객보다 빈 좌석이 더 많았다.

 도로도 어찌나 한산했는지 신호만 걸리지 않는다면 뻥뻥 뚫려있다.


 아, 이것이 남들 다 쉬는 날 출근하는 기분인가?


평소엔 차들로 꽉 찼던 도로가 이렇게나 헐빈하다니.




 원래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나 혼자 근무하지만, 연휴라 11시 30분부터 한 명 더 출근하기로 했다.

 '뭐 얼마나 바쁘다고 2명이나 필요할까?'라는 안일함을 비웃듯 10시 40분부터 미친 듯이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12시부터 1시간 동안 밥 먹고 와. 휴게시간이야.

 -이래서 가겠냐?

 -그냥 생까고 밥 먹고 와. 밥 안 먹고 5시까지 힘들어서 못 해.


 CCTV로 가게 상황을 보고 있던 동생이 12시가 넘어도 가게 안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밥 먹고 오라고 연락이 왔지만 갈 수 없었다. 


 온 가족이 다 모인 추석 연휴라 그런지 배달 주문 한 건당 와플 5개 이상에 음료 2~3개는 기본이었다.

 온 가족이 다 모인 추석 연휴라 그런지 다들 인심도 후해져 "먹고 싶은 거 다 시켜!"라며 조카들의 구매욕을 채워주려는 듯 평소 하루에 한 잔 주문받을까 말까 한 손 많이 가는 밀크 쉐이크와 각종 요거치노 주문도 꽤 많았다.


 배달 접수뿐 아니라, 매장 손님도 아이들 3~4명과 어른 2~3명이 한 무리로 들어와 와플과 음료를 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빠지게 되면 본인 근무일도 아닌데 대타하러 와 준 이 아르바이트생은 지옥을 맛보고 갈 것이었기에 도저히 생까고 갈 수 없었다.


 -됐어. 입 맛도 없어, 그냥 저녁에 집에 가서 미친 듯 먹을래.

 -아르바이트생은 3시 30분부터 1시간 식사시간이야. 그때 올케 보낼게.


 나는 사장 누나라 안 지켜도 되지만, 직원은 그렇지 않다. 바빠죽어도 우리 아르바이트생의 휴게시간은 무조건 시켜줘야 한다.


 손님이 빠지고 나간 순간의 여유시간엔 늘 가게 곳곳을 돌아다니며 찌든 때를 닦거나 재고를 채우거나 하며 바지런히 움직여댔지만, 연휴의 여유엔 그저 온몸에 힘을 빼고 멍 때리고 앉아있기 바빴다.  내 옆에 앉아있는 대타 아르바이트생도 '이 정도라고?'라며 처음엔 놀라서 허둥대더니 휘몰아쳐대는 주문들에 동공의 초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없이 멍 때리다 배달 접수 알림음이 울려대면 몸이부터 반응해 기계처럼 벌떡 일어나 와플을 구워댔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24분이었다.

 "지금 들어온 와플 6개짜리 주문만 도와주고 식사하러 다녀와요."

 "네."

 

 다시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35분이었다. 배달 주문이 연달아 4개가 들어왔다. 미룬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아이고 30분 지났네, 얼른 식사하러 다녀와요."


 나의 말에 벽에 붙은 주문서를 힐끔힐끔 보며 머뭇대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다시 말했다.

 "괜찮으니까 맛있게 밥 먹고 와요."

 "네... 다녀올게요."


 와플 굽기만 가능한 올케는 와플 기계 앞에서 미친 듯 와플을 구워댔다.

 주문 순서대로 와플에 토핑을 얹다가 배달기사님이 오시면 주소 확인을 단디하고 전달해 드렸다. 

 동지가 식사하러 떠나고 혼자서 어떻게 한 시간을 견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만들 뿐.


 정신 차리고 보니 1시간의 휴게시간을 보내고 온 아르바이트생이 내 옆에 와있었다. 

 그렇게 30분 동안 서로 합을 맞추며 주문을 쳐내다 오후 5시 마감 아르바이트생이 출근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주문서를 확인하며 업무태세에 들어간 마감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바로 앞치마를 벗어던지며 말했다.


 "올케, 집에 가자 이제. 얼른."


 지은 죄도 없는데 그렇게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추석연휴에 출근하는 기분이라... 

 미혼인 내게 반드시 가야 할 시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 1층에 할머니가 살고 계시기도 해 긴 이동시간을 들여 방문해야 하는 친척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연휴엔 나름의 루틴으로 분주히 움직여대는 평일보다 더한 한량이라는 뜻이다.

 평일 루틴도 내가 감내할 만큼의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힘들다거나 피곤함을 느낄 정도가 아니다.

 잠자리에 들 때 '아~ 오늘도 돈만 안 벌었지 알차게 보냈다.'라며 꿀잠모드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랄까?

 그래서 그런지 '왜 나만 출근해야 하는 거지?'라는 억울함이나 우울감은 전혀 없었다.


 빨간 날의 출근이 영원히 적응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혼이 나갈 만큼 바빴다는 것 외엔 여느 출근날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조건 남들 놀 때 나도 놀아야 된다는 마음가짐이 절대 바뀌지 않을 줄 알았는데, 직장인이 아닌 신분으로 1년 6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이전과 달라진 내 일상에 서서히 적응이 된 것일까?


 오히려 여유로운 버스 안과 한산한 도로의 출근길이 내 마음을 더 여유롭게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말에는 힘이 있으니 긍정적인 말과 생각을 많이 하자.'

 '무엇이든 배워두면 언젠가 쓰일 때가 온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세 가지는 괜히 초조하고 불안해지거나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속으로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확신과 용기를 줄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당연한 말들이지만 생각처럼 쉽게 행해지진 않는 것들이다.

 남들이 백날 말해줘도 콧방귀도 뀌지 않다가 꼭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죽어도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빨간 날의 출근은 절대 금물'이라는 마음가짐이 추석연휴의 출근 이후 바뀌었다. 만약 동생이 매니저 일을 맡아해 줄 수 없느냐고 다시 나에게 묻는다면 이번엔 "해보겠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빨간 날이 뭐 대수라고, 그냥 출근하는 날인거지 뭐.'
 
역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인 것이었던 것이다.
다만 나란 인간은 조금 시간이 걸린다, 최대 1년 6개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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