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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Sep 20. 2023

실수한 매니저의 허밍, 올케의 눈빛 그리고 나.

-그 허밍을 제발 멈춰줘!

 성실한 점장의 퇴사 후 들어온 지 한 달 조금 지난 남자 매니저가 '점장'을 해보겠다고 했단다.

성실한 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인수인계 없이 갑작스럽게 퇴사했기 때문에 막상 '점장 직급'의 새로운 사람을 뽑아도 걱정이었는데, 그나마 한 달 동안 성실한 점장과 마감 근무시간에 같이 일해 본 남자 매니저가 해보겠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었단다.


 "사장님, 저 못하겠어요. 점장 업무가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어요."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어버린 남자 매니저는 다시 '매니저' 신분으로 돌아갔다.

 결국 근무 스케줄 관리 및 아르바이트생 관리 업무는 '매니저'업무를 해보겠다며 자진한 평일 월화 오후 아르바이트 생이었던 '김 아르바이트생'이, 매장 관리 및 재고/발주 관리는 올케가 맡게 되었다.


 "올케 9월에 복직한다며? 회사 업무에 육아에 가게 발주 업무까지 너무 벅찬 거 아냐?"


 "본인이 해보겠대. 안 그래도 가게에 '사장'이 없어서인지 엉망이라 계속 신경 쓰였는데, 이참에 잘됐지 뭐."


 올케는 정말 대단하다.

 나와 3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저런 체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놀라울 뿐이다.

 무용을 해서 체력이 저리도 좋은 건가?


 그렇게 자주 가게를 오고 가며 열심히 청소하고 관리하고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해댄 덕에, 2주 만에 가게가 놀라울 정도로 깔끔해졌다.

 깔끔해진 가게 안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더 쓸고 닦게 된 건 나뿐일까?


 "형님, 저 왔어요."

 고요한 아침, 영업 10분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손에 들고 음악을 듣으며 나만의 시간에 빠져있으면 어김없이 올케가 뒷문으로 출근했다.

 처음엔 묻지도 않은 말 주저리 해대기, 관심없음서 재고에 관심 있는 척 하기, 원래 깔끔 떨었던 것처럼 덩달아 바닥 청소하기 등 부자연스러운 행동들이 저절로 나올 만큼 올케와 단둘만 있는 시간이 어색하기만 했는데, 어느새 '오늘 가게 오니?'라며 문자를 보낼 만큼 올케가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영업 시작 전 무도 없는 오전 10시를 '평온한 아침'이라 생각했는데, 올케가 다녀간 뒤로는 '심심한 아침'으로 변해버렸다.




 오후 1시 40분경, 배민으로 주문이 5개가 연달아 들어왔다.

 올케는 와플빵만 구울 줄 알기 때문에 정신없이 완제품을 만들어대는 내 옆에서 와플빵이 떨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구워댔다.


 1시 57분경, 나와 교대 근무자인 남자 매니저가 출근했다.

 환복 후 밀려있는 주문서를 유심히 보고 있는 남자 매니저에게 말했다.

 "매니저님 1089번 주문 와플은 다 만들었고, 주문한 음료 확인하고 만들어서 배달 접수해 주겠어요?"


 "넵"

 가끔 메뉴명만 확인하고 주문개수와 추가토핑은 확인하지 않던 남자 매니저라 "아이스 초코라떼 2잔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알아서 확인하겠거니 싶어 굳이 알려주지 않았다.


 "형님, 이제 퇴근하셔야 되는 거 아녜요?"


 그러고 보니 퇴근시간에서 20분 정도 지나있었다.

나의 퇴근 시간은 오후 2시지만, 올케는 첫째 조카의 하원 시간에 에맞춰 3시쯤 퇴근할 생각이라고 했다.


 "아~ 그럼 웬만큼 배달도 다 보냈으니, 이만 퇴근 준비 할게."

 앞치마를 벗으려는데 가게 전화가 울렸다. 마침 전화기 근처에 있었던 터라 남자 매니저에게 내가 받겠노라 손동작을 해 보였다.


 "네? 초코라떼가 한 잔 덜 왔다고요?"

 아뿔싸. 남자 매니저가 또 개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나 보다.


 "죄송합니다. 만들어서 금방 다시 보내드릴게요. 진짜 죄송합니다. 매니저님, 아까 초코라떼 한 잔만 보냈어?"


 "아, 네."

 전혀 죄송한 표정이 아닌 남자 매니저의 대답과 표정이 오히려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개수를 확인해야지, 2개라고 적혀있었는데. 얼른 만들어서 다시 보내요."


 "넵."

 넵? 네에엡? 하... 한마디 할까 잠시 고민하던 찰나, 플빵을 굽고 있던 올케가 "무슨 일이에요? 뭐 잘못됐어요?"라며 물었다.


 "아, 초코라떼 하나 덜 왔다고 해서."


 "다시 보내달래요?"


 "어, 다시 보내달래."


 가게 안엔 god의 '촛불하나'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경쾌한 허밍이 들려왔다.

 남자 매니저였다.





 "그럼 배달비는 우리가 부담해야 되는 거죠?"라는 올케의 물음에 "그렇지, 우리가 잘못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이런 적 자주 있었어요?"라는 올케의 물음에 "아니, 나도 처음이라..."라고 대답했다.


 이런 대화를 오고 가게 만든 장본인은 여전히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아이스 초코라떼를 만들었고, 올케는 그런 매니저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봐, 작작하지? 그만!.'

 눈치가 있다면, 허밍은 멈췄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도 쳐다보았지만 남자 매니저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듯 주위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슬쩍 올케의 표정을 보니 살짝 썩어있었다.

 

 "매니저님, 주문 잘못 나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고 싶으니까, 조금 있다가 포스기에서 주소 찾는 거랑 배달 접수하는 법 좀 알려줘."


 "넵"

이라고 방금 전에 대답해놓고, 언제 다시 접수할 거냐는 나의 재촉에 "아, 배달 이미 불렀는대요?"라고 하는 남자 매니저를 뒤에서 올케가 살짝 더 썩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그래, 얼른 보내야지. 배울 시간이 어딨어. 괜찮아 됐어."

 나만 치챈 올케의 썩은 표정을 보니 나의 짜증 따위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둘 사이의 극심한 감정 온도차이에서 눈치만 보일 뿐이었다.


 "올케 나 퇴근할 건데, 안 가?"

아까 분명 3시에 갈 거라고 얘기 들어놓고는 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또 질문해 버렸다.


 "저는 조금 있다 갈게요."


 "어어, 그래 나 퇴근할게."

 그렇게 나는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메뉴 잘못 나가서 배달 추가로 부른 적 있어?


다음 날 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없는데... 잘 모르겠네.


 어제의 일을 올케에게 전해 들었나 보다.


 -잘못 만들어서 다시 만든 적 많아?

 -나는... 한두 번 정도? 왜?

 -아니, 그냥... 아르바이트생들한테 주문서 꼼꼼하게 보라고 얘기할까 싶어서.


 가끔 출근해서 냉동고를 열잘못 만들어 반품당한 듯한 젤라또가 몇 개씩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차마 동생에게 이 얘기까진 할 수 없었다.

 젤라또 단가가 비싸서 동생이 다른 건 몰라도 젤라또엔 민감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 얘기하는 게 좋겠다.

 -알겠어.


 성실한 점장님은 주문서가 접수되면 주황색 형광펜으로 추가토핑과 개수를 표시해두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가르쳐 주었었다.

 표시를 해두면 실수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남자 매니저가 추가토핑을 넣지 않는 것을  번 목격했던 나는 "매니저님, 추가토핑엔 이렇게 형광펜으로 동그라미를 먼저 쳐두면 안 잊어버릴 거예요."라고 알려줬지만, "넵"이라 대답만 할 뿐 표시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매니저님, 초코칩 안 넣었어. 여기 추가토핑에 초코칩 추가라고 적혀있잖아."


 "아, 넵. 여행을 가도 다~ 거기서 거기~"

 흘러나오는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대답만 할 뿐이다.


 실수한 스스로가 창피해서 저렇게 노래를 부르는 건가?

 아님 정말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하지?

 한 마디 할까? 상황 봐가며 노래를 부르든 허밍을 하라고? 지금 노래 부를 타이밍이냐고 정색할까?

 그러다 그만두겠다고 하면? 사람 구하기도 힘든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다가도, 나 또한 한낮 아르바이트생인 주제에 누가 누굴 지적하나 싶어 입을 닫기로 결론 내 버렸다.


 그 뒤로 출근하면 미주알고주알 자기 얘기 떠들어대던 남자 매니저의 대화에 예전처럼 호응해주고 싶지 않아 졌다.

 '자기 일은 제대로 하면서 떠들지?'라는 생각에 예전의 그 리액션이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고작 24살 밖에 되지 않은 남자애한테 너무 높은 식견(識見)을 바란 건까?

 나는, 라떼는 저러진 않았는데...


 "너는 안 그랬다고 장담할 수 있어? 그건 모르는 거야. 너의 윗사람들도 너한테 당황한 적 분명 있을 거야."


 J는 어느 시대든 세대 간의 차이는 있었다며, 인정하고 이해하라 했다. 이해가 어렵다면 생까버리라 했다.


 "그래도 자기가 잘못해 놓고 허밍이나 노래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아니지. 아니긴 한데 뭐라고 한들 걔가 고치겠어? 내가 보니 습관인 듯하고만."


 모르겠다. 아~ 진짜 모르겠다.

 여전히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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