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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Aug 29. 2023

'착하면 손해' 이 말이 제일 싫다.

-동생과의 짧은 여담, 긴 여운.

 성실한 점장이 퇴사한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성실한 점장은 잘 지내고 있나 몰라... 얼른 나았으면 좋겠는데..."


 "아... 저는 지금 가게 일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어서 퇴사한 점장 걱정까지 할 여유가 없어요."


 상체를 냉동고에 밀어 넣고 젤라또와 과일 토핑 재고를 확인하던 올케가 시크하게 대답했다.

 하긴, 성실한 점장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2시간의 짧은 인수인계만 받고 가게 전반적인 운영을 맡게 된 올케 입장에선 나만큼 성실한 점장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155Cm의 말 많은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방긋방긋 웃어대던 170Cm의 성실한 점장이 그립다, 보고 싶다.




 "저 내일은 휴무예요. 여자 매니저님이랑 근무시간 바꿨어요. 여자친구 생일이라..."


 "오~ 좋겠네~ 그래, 알겠어. 그럼 다음 주에 보자고~"


 늘 교대하던 남자 매니저의 휴무로 처음으로 여자 매니저를 만난 날이었다.

 첫인상은 '이 아이도 참 키가 크네, 나만 땅에 붙어 다니는구만.'


 성실한 점장이 퇴사한 후 직원들 근무 일정 관리는 여자 매니저가 하고 있다.

 여자 매니저는 원래 평일 오후 아르바이트 생이었는데 매니저 자리 구인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본인이 하고 싶다고 했단다. 

 사장 입장에선 장기근속 아르바이트생이고 근태 기록도 좋았던 아르바이트 생이 나서서 하고 싶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네,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굴 보자마자 재잘대던 성실한 점장님, 남자 매니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일단 말이 없었다. 


 "냉동고에 젤라또 저거 뭐예요?"


 "아 젤라또 와플을 시켰는데, 따로 포장해서 보내달라는 배달 주문을 받아서요."


 "저희 생크림이나 젤라또 별도 포장 안 되는대요."


 "아?"

아차차, 그제야 기억났다.

성실한 점장이 가끔 와플에 올라갈 생크림을 따로 포장해 달라고 하시는 손님이 있는데, 우리는 모든 토핑과 크림의 별도 포장이 안된다고 말했었다.

 아... 생크림이나 크림이 아니라 '젤라또'여서 순간 응용이 안된 내 탓이다.


 "이거 이렇게 나가면 안 돼요."

처음 봤는데 단호하게 얘기하는 여자 매니저에게 왠지 모를 서운함이 밀려왔다.

잘못은 네가 해놓고, 서운한 건 뭐냐! 아직 애다 애야.


 그러고 우리는 아무 대화 없이 각자의 일을 했다.

나는 냉동고 정리를, 여자 매니저는 주문 접수 및 와플 굽기를 하며 작디작은 가게 안에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각자의 은신처를 마련했다.

 처음으로 분 단위로 시계를 쳐다보며 퇴근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지난주 금요일 출근하니 커피 머신기계의 호스가 빠져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기계를 들어 올려 호스를 다시 연결해야 하는데, 도저히 혼자선 할 수 없어 올케에게 연락했다.

 올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동생이 왔다.


 "너 오늘 회사 안 갔어?"


 "어, 광복절에 근무해서 오늘 대체 휴일이야."

 

 "아샷추 하나 만들어 줘."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남동생은 이상하게 아샷추(아이스티 샷 추가)를 좋아한다.

 음료를 마시며 벽에 붙은 근무일정표를 유심히 보던 남동생이 흡족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요즘엔 대타 구해달라고 하는 아르바이트 생이 없어서 좋네, 좋아."


 "아예 없어?"


 "어, 여자 매니저가 일정관리 맡은 후로는 한 명도 없어. 점장 있을 땐 한 주에 2~3명은 있었는데."


 "희한하네, 왜 그런 거지?"


 "보니까 여자 매니저가 강단 있어, 잘해 잘해.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똑 부러지게 스파르타로 관리하나 봐."


 "설마 뭐 그래서 없는 거겠냐? 시기가 시기라서 그런 거지."


 "8월 한창 휴가 기간인데도 대타 구해야 하는 일이 없었다니까~"


 누가 일을 잘하네 못하네를 논리적으로 따지고 싶다기보다, 그냥 성실한 점장 편을 들고 싶었다.


 "개인 사정이 6,7월에 몰렸나 보지 뭐! 점장도 일 잘했어!"


 "점장이 착해서 그래."


 "거기서 착한 게 왜 나와?"


 "누울 자리 보고 뻗는다고, 다 들어줄 것 같으니까 얘들도 대타 구해달라고 얘기하는 거야."


 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논리다.




 안 봐도 뻔하다.

 각종 자격증 시험, 경조사, 개인사정, 휴가 계획으로 본인의 근무일에 출근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아르바이트 생에게 "꼭 그날 빠져야겠니?"라며 한 두 번 개인 일정을 바꿀 순 없냐며 권유를 해보았겠지만, 대타를 구할 수 없어 본인의 휴일에 대신 나와 근무했을 성실한 점장님, 안 봐도 뻔하다.


 사수와 상사의 성격과 성질에 따라 마음가짐이 다를 순 있다. 

 나 또한 깐깐한 상사에게 기안서를 승인받아야 할 때는 오타는 없는지, 그가 원하는 글자체가 맞는지, 글의 간격은 균일한지, 어법에 맞는 문장들로 잘 이루어졌는지, 기안의 사유가 타당은 한 지 등등 유난히 확인의 확인의 확인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해야 할 일을 지나치진 않았다.

 확인의 확인의 확인을 거듭했다는 것이지, '확인'이라는 절차를 아예 무시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일은 '나의 일'이고 '나의 일'에서 발생하는 '실수와 오타'는 '나의 업무 능력'이라 여겼기 때문에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내 태도가 극과 극으로 바뀌진 않았다 자부한다. 

 

 "성실한 점장이 착해서 그런 게 아니야."

 배달 주문이 몇 개 들어오자 일에 방해되지 않도록 사장은 빠져주겠다며 가게문을 나서던 동생의 뒤통수에 대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 소리야?"


 "각자의 업무 스타일이 있는 거야. 착해서 대타를 해준 게 아니라, 그냥 그게 점장의 스타일이었던 것뿐이야.
 
공감능력이 뛰어난 거고, 직원들과의 긍정적 유대관계를 가지려고 한 점장의 업무 스타일일 거라고!"

 "네네~"

대수롭지 않아 하는 동생이 밉다.

복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와플 한 개를 먹으며 아침 식사를 대신했는데 이 날은 와플 2개를 먹어치웠다.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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