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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Aug 22. 2023

공황장애 때문에 성실한 점장님이 결국 퇴사했다.

-그녀의 꿈인 '카페 개업'을 응원합니다.

 포항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던 8월 첫째 , 2시간 동안의 바다 수영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뭐 해?"


 "내일? 나 지금 포항인데?"


 "아? 휴가 간댔던가?"


 "어... 그래서 이번 주 아르바이트도 한 달 전에 점장님한테 말해서 대타 구해놨었지."


 "하... 점장이 공황장애로 또 쓰러졌대."


 "어? 왜? 언제?"


 "지금. 그래서 아무래도 그만둬야 될 것 같다고 전화 오곤 그 뒤론 통화가 안되네."


 "점장님 괜찮은가... 많이 힘들었나 보네... 오래 다니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럼 언제 그만둔대?"


 "내일부터 못 나오겠대. 그래서 당장 큰일이야..."


 7월 31일인 어제까지만 해도 8월부터 가게 오픈시간이 변경되었으니 9시 30분이 아닌 10시까지 출근하면 된다는 카톡을 주고받으며 다음 주에 보자는 인사도 나눴었는데, 하루 만에 점장님의 퇴사 소식을 접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발주와 월 마감, 직원 일정 관리를 두루두루 해 온 점장이었기에 동생에게 갑작스러운 점장의 퇴사는 더욱 크게 와닿았을 것이다.


 동생과의 통화를 끝내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의 퇴사가 짐작되는 사건이 최근 있긴 있었다.




-얘들아 내가 할 말이 있어.


7월 마지막 주, 낯선 이름들이 수두룩한 단톡방으로 누가 날 초대했나 봤더니 '성실한 점장님'이었다.

아르바이트생 총 10명이 초대된 단톡방으로 참고 참던 감정이 터진 듯 점장님이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못 나오는 날 있으면 일주일 전에 말해 달라 했는데, 이번 달 대타 구한 것만 벌써 8번째야.

 내 일 다 하면서 대타까지 하니깐 너무 지친다. 웬만하면 본인 근무 날 근무 하도록 하자. 또 진짜 너희한테 정말 중요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그런 날이 있으면, 대타가 안 구해질 수도 있으니 한 달 전엔 말해서 그때부터 같이 찾아보자. 갑자기 말하면 진짜 나 너무 힘들다.



 가게 냉동고 옆에 붙어있는 직원 일정표에 점장님의 고정 휴무일인데도 '점장 오픈 4시간, 점장 16시 30분~22시 30분'이라며 근무가 계획된 날들이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번 달만 대타근무를 8번이나 했다니... 힘들었겠다 싶었다.


 나는 일개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점장님에게 이곳은 직장이다.

갑작스러운 이전 점장의 퇴사로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점장으로 승진한 뒤 그녀가 가장 힘들었을 일은 아무래도 '인재 관리'였을 것이다.

 

 "점점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보다는 '인재 관리'가 더 중요하지."

김 부장님도 그랬다.
부장으로 승진하고 가장 신경 쓰이고 힘들었던 게 '팀원 관리'였다고.



 8월 첫째 주 휴가를 계획했던 7월 초, 점장님께 조심스레 물어봤었다.


 "혹시 8월 3일이랑 4일 이틀 정도 대타 구할 수 있을까요? 휴가를 계획하고 있어서요."


 "아. 휴가 가세요? 음... 알겠어요. 일단 제가 최대한 대타 구해볼게요."


 "혹시 대타 구하기 힘들면 제가 그냥 나와도 되니까 너무 무리하진 말고요."


 "아니에요. 저 아파서 일주일 쉴 때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제가 꼭 시간 빼드릴게요."


 물론 한 달 전에 미리 얘기한 나의 휴가 일정이었지만, 나처럼 대타를 요청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유독 많은 7월이 고단했을 점장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성실한 점장님은 나에겐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괜찮은 게 아니었나 보다.

밝은 카톡 속 숨겨진 그녀의 고단함이 결국 그녀를 다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이끈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본인이 못 하겠다고도 하고, 우리도 갑작스러운 점장 부재로 가게가 제대로 운영이 안되니까... 새로 사람을 구하는 수밖엔 없을 것 같아."


 "점장 직급으로 구할 거야?"


 "아니, 매니저 직급으로 구하려고. 그럼 매니저가 총 두 명이 되니까 한 명은 '아르바이트생 관리'를 전담 업무로 시키려고. 그리고 발주나 전반적 가게 관리는 이제 와이프가 직접 할까 해."


 "올케가? 9월에 복직한다며?"


 "복직을 할지, 가게 일을 맡아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거든. 이 참에 잘됐지 뭐..."


 "하긴, 가게에 사장이 출근하긴 해야 돼."


 "맞아.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


 매니저를 해 볼 생각은 없냐며 동생이 몇 번 물었었다. 

그때마다 나는 마흔 먹고 시작된 진로 고민에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성격 탓에, 와플 가게 일의 비중을 지금의 몇 배로 늘리게 되면 나름의 인생 계획들이 흐트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 난 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못하는 걸까? N잡러들이 부러울 뿐이다.




 성실한 점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주말이라 꾹꾹 참았다. 주말 개인 시간을 괜히 방해하는 건 아닌지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책 읽으러 들른 카페에서 책장을 펼치기 전 카톡앱을 열어 점장님께 하고 싶었던 말을 썼다.




 어떤 위로와 용기의 말을 해줄지 한참 고민했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고리타분한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나 또한 번아웃으로 힘들어했던 순간들을 떨쳐내는 데에는 '시간이 약'이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녀의 퇴사로 연결되어 있던 인연의 끈은 사라졌지만, 좋은 인연이었기에 '나이 많은 유세'로 언제든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말이다.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 것을.


 점장님의 꿈은 쌀 베이킹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를 개업하는 것이라 했다. 

내가 아는 성실한 점장님이라면 분명 그 꿈을 이룰 것이다. 

고맙게 나를 잊지 않고 '카페 개업'을 알려와 준다면, '금전수'를 오른쪽 가슴에 끼고 웃으며 그녀의 카페에 가겠다. 그게 언제가 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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