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필요한 건 배려.
물론 가끔 아주 가끔 진상 손님까진 아니지만,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이상한 손님이 몇 명 있긴 하다.
이발사가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임을 외칠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 대나무 숲이었던 것처럼, 브런치에만 살짝 '내가 만난 이상한 손님 썰'을 풀어 체한 듯 걸려있는 작은 응어리들을 풀고자 한다.
"에어컨 좀 꺼주실래요? 여기 왜 이렇게 가게를 춥게 해 놔요?"
개인 취향대로 고른 메뉴를 내가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아이스'메뉴만 먹고 있으면서 추워 죽겠다고 하는 그녀들은 내게 '이상한 손님들'이었다.
배달 주문 4건과 포장을 기다리는 대기 손님이 3명 정도 있는 바쁜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일하던 중 나만큼이나 다급한 목소리가 매장 쪽에서 들려왔다.
"아가씨! 여기 와플 주문할게요. 크림와플이랑 그림에 있는 이거 이거!"
"죄송하지만, 뒤편에 있는 키오스크로 주문 부탁드릴게요."
바쁘지 않은 날엔 직접 주문을 받거나 키오스크가 있는 곳으로 나가 주문을 도와드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정신이 없었다.
"아니! 내가 지금 바빠서 그래.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왔거든. 그러니까 크림 와플 그냥 줘요."
"손님, 앞에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손님 것부터 먼저 드릴 수는 없고요. 크림도 종류가 다양해서 골라주셔야 해요. 키오스크에 보시면 선택하셔야 하는 부분들 다 나오니까 주문 부탁드릴게요."
"아니~ 내가 지금 바쁘다고~ 차를 밖에 세워두고 왔다니까요."
키오스크로 주문할 생각은 1도 없다는 듯, 단속에 걸려 차가 견인되진 않는지 계속 도로변을 주시하며 "그냥 크림와플 줘, 크림와플"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마치 단속 걸리면 빨리 와플을 내어주지 못한 내 탓이 될 것만 같은 기분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급해진 건 마음뿐, 계속 말을 걸어대는 바람에 와플 만드는 속도는 현저히 줄어들어버렸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고 무작정 요구만 해대는 이상한 손님에게 짜증이 났다.
"손님,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주문을 하신대도 앞에 대기하시는 손님들이 계세요. 그리고 제가 지금 주문이 밀려서 정신이 없어 도와드릴 수 없을 것 같으니, 키오스크로 주문이 어려우시면 주차를 다른 곳에 하고 오셔서 천천히 메뉴를 고르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아무거나 달라니까. 거참 나 유도리 없네!"
중년 아주머니는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신경질을 내며 가게를 나갔다.
온몸에 힘이 쫙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어, 들고 있던 와플을 잠시 내려놓았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듯했다.
매장 안에 있던 손님들도 나도 뭔가 기 빨린 듯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포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의 와플을 만들어 곱게 포장했다.
"1018번 손님, 주문하신 와플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1019번 손님, 주문하신 와플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네, 수고해요."
"1020번 손님, 주문하신 와플 나왔습니다. 맛있게 먹어요~"
"안녕히 계세요."
기분 탓인지 와플을 전해받아가는 매장 안 손님들의 인사가 평소보다 더 다정하게 느껴졌다.
"저, 가지러 갈 건대요. 주문하려고요. 사과잼 들어가는 와플이... 이름이 뭐죠?"
"아. 애플시나몬 와플이요."
"그럼 그거 하나랑 초코 젤라또 와플 하나 포장해 주세요."
"언제쯤 도착하시나요?"
"지금 출발하니까 10분 정도 걸려요."
"봉투값 100원인데, 봉투 필요하신가요?"
"네, 봉투도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가끔 가게로 전화해 포장 주문하는 손님들이 있었어서,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메뉴와 가게 도착 시간을 물어보고 전화를 끊었다.
손님이 오면 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포스기에 주문한 메뉴와 결제할 금액 창도 열어두고, 빠르게 와플을 만들어 예쁘게 포장한 뒤 냉동고에 넣어두었다.
약속한 10분이 지났는데 오지 않는다.
'뭐, 조금 늦겠지."
20분이 지나니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안오진 않겠지?"
기다린 지 30분이 지나자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가게 문만 하염없이 쳐다보게 되었다.
결국 10분 안에 온다던 그 이상한 손님은 결국 오지 않았다.
'사장인 동생이 이 사실을 알면, 내가 얼마나 멍청해 보일까?'
'계좌이체로 결제를 먼저 할 걸 그랬나?'
'아냐! 내 탓이냐! 전화 주문해 놓고 오지 않은 그 사람이 이상한 거야!'
"제가 늦었죠? 죄송해요. 오다가 글쎄...." 라며 헐레벌떡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 채, '무작정 믿어버린' 나를 자책했다가 '약속을 어긴' 그 사람을 원망했다가를 반복했다.
"다음부터는 미리 결제를 하던가 해야겠어요.
저도 전화 주문 몇 번 받아봤었는데 이번처럼 안 오시는 손님은 없었거든요.
저 같아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너무 상심 마세요."
오후 근무시간에 출근한 성실한 점장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내가 진짜 '언니'가 맞는지, '이모'라 할 걸 그랬나 싶었지만, 아직 나는 '언니'이고 싶은 마흔이다.
인사에 인색하지 않은 손님을 마주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니! 기분이 좋아진다의 수준을 넘어 들떠버린다.
난 참 이렇게 쉬운 사람이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를 깨닫는 요즘이다.
'유익한 사람만 만나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유해한 사람까지 만나게 해 주시진 마시길.', 하루를 시작하며 마음속으로 어느 신이든 상관없으니 내 기도를 들어주기를 바라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