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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Aug 03. 2023

젤라또 와플에겐 시간이 필요해요.

-사소하지만 확실한 노력.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와플 뭐예요?"

  한참 메뉴판을 보던 남자 손님이 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물었다.


 ' '요즘'이라는 단어에 힘이 실린 이 질문의 의도는 무더운 이 여름에 먹기 딱 좋은 와플을 추천해 달라는 것일 테지. 그렇다면!!! 이 메뉴지!!! 앗... 하지만...'


 몇 초동안 생각이 많아진 탓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 아이스크림 들어간 와플도 있다던데, 그거 맛있어요?"


 '맞아요! 제가 추천하려던 메뉴가 바로 그 젤라또 와플이었어요!'

 그렇다.

 6월 말부터 우리 가게의 인기 메뉴는 이 여름 아이스크림의 시원함과 와플의 바삭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바로 젤라또 와플이다.


 "네, 젤라또 와플 요즘 잘 나가요. 키오스크 상단에 '아이스크림 와플'에 보시면 맛과 토핑 선택하실 수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그걸로 포장해서 가야겠네요."


 "아, 손님. 아무래도 아이스크림이다 보니 가다 보면 좀 녹거든요. 멀리 가시는 건 아니시죠?"


 "아 녹아요? 차로 한 30분 가야 하는데... 그럼 일반 생크림 와플 중에 제일 잘 나가는 건 뭐예요?"


 '아... 보냉팩 포장이라도 30분은 무리일 텐데...'

 더 이상 젤라또 와플을 권하지 않고 바로 다른 와플들을 추천했다.


 "생크림 들어가는 애플시나몬 와플이랑 누텔라오레오와플이 꾸준히 제일 잘 나가요."


 "그럼, 그냥 생크림 와플들로 주문해야겠네요."


 여름에 딱이지만 자신 있게 젤라또 와플을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금방 녹아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가 방학에 들어간 7월 유독 배달 주문이 많아졌다.

 몇 개월 전부터 방학 기간이 매출 대박 기간이라 엄청 바쁠 거라며 성실한 점장님이 겁 줬었는데 사실이었다.

 잠시 숨 돌림 틈이라도 있다면 살짝의 성취감을 곁들이며 열심히 와플을 구워댔을 텐데, 이상하게 손님은 5~6팀씩 휘몰아서 왔다.


 포스기에서 딩동딩동 울려대는 배달 주문접수 소리와 밀려오는 매장 손님들의 주문에 잠시 이성의 끈을 놓을 뻔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땐 그저 '아.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뿐이다.


 녹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확실히 여름은 여름인지 배달 주문 80%가 젤라또 와플이었다.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제공되었던 보냉팩과 아이스팩을 배달 주문에 한정하여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여름 매출 효자템이 될 젤라또 와플의 주문량을 더 늘리기 위한 사장님의 결정이었다.


 보냉팩 포장이 젤라또가 녹아내리는 시간을 지연시켜 주는 데 탁월하긴 하지만, 우리 직원들 사이에선 보냉팩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젤라또 와플에게 냉동고에서 20분 동안 얼려질 시간을 주는 것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어떤 메뉴들이 있는지 확인한 뒤, 젤라또 메뉴가 있다면 가장 먼저 젤라또 와플을 만들어야 해요.  왜냐하면 젤라또 와플을 냉동고에 20분 정도 넣어두는 작업이 필요하거든요."


 업무 교육을 받을 때 성실한 점장님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강조했던 부분은 만드는 순서였다.


 "젤라또 와플을 냉동고에 넣어두고 20분이 지나면 그때 일반 크림 와플을 만들면 되요. 마지막으로 만들어야 될  음료 메뉴예요."


 "젤라또 와플을 왜 냉동고에 20분이나 넣어두는 거예요?"

 냉동고에 들어간 와플 빵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맛이 없어지진 않을까 걱정되어 물어보았다.


 "젤라또가 찰기가 있어서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녹는 속도가 조금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기계에서 뽑아낸 뒤 상온에 두면 바로 녹기 시작하긴 하거든요.
 
하지만, 냉동고에서 한번 더 얼리고 보냉팩에 넣으면 녹는 속도가 확실히 더뎌지기 때문이에요."

 "와플 빵은요? 괜찮아요? 눅눅해지지 않아요?"


 "네! 괜찮아요.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하나 만들어서 먹어볼까요?"

 오~ MZ의 입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더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녹차 젤라또에 초코칩 토핑을 올렸다.

 초코칩 토핑을 올리기 위해 상온에 나와있는 짧은 시간에 벌써 스멀스멀 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빠르게 토핑을 올린 후, 냉동고에 집어넣고 타이머를 20분에 맞췄다.


냉동고 얼리기 전(왼쪽) 후(오른쪽), 젤라또가 전반적으로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20분 후 냉동고에서 꺼낸 와플은 이전보다 뭔가 더 촘촘하게 단단해져 있었다.

확실히 상온에 나온 젤라또의 녹는 속도가 이전보다 더디다.


 "오~ 아까는 초코칩 토핑 얹는 그 찰나에도 녹아버리더니 지금은 꽤 상온에 놔둬도 괜찮네요?"


 "그렇죠? 그래서 젤라또 메뉴의 경우 20~30분 안에 배달 보낼 수 있어도 40~50분으로 배달 도착 시간을 정하는 것도 이 '얼리는 시간'이 필요해서예요."




 사실 와플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기 전에는 이른 오전시간에 배달 주문했는데도 배달 도착까지 50~60분 걸린다는 알림을 받으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바쁘지 않은 시간일 텐데 가게 개인 사정으로 내 주문을 미루고 있는 건 아닌지, 수가지의 부정적 상상을 해대며 음식이 도착할 때까지 꾸역꾸역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가게 영업 시작을 위한 청소를 막 끝낸 여유로운 오전, 딩동딩동 울려대는 배달 주문 알림 소리에 포스기로 가서 주문 메뉴를 확인했다.


  - 젤라또 와플 3개, 애플시나몬 와플 1개, 아이스 아메리카노 2개

  배달 도착 시간을 50분으로 설정한 뒤 접수 버튼을 눌렀다.


 배달 접수를 받는 입장이 되어보니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꿀팁'이 있겠다라며 이해되었다.

 지금 이 순간 '기다리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참 아무리 나이 먹어도 여전히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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