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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Feb 21. 2024

원치 않던 한 가지 행동이 불러온 참사.

-그렇지만 고... 고... 고마... 고마워.

 최종 면접을 보고 온 일주일 뒤 '불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서류전형 합격'이라는 좋은 스타트로 시작한 2024년은 왠지 까이기만 했던 2023년과는 다를 같은 기대감에 살짝 들떴었다. 

 결과는 무참했고 다소 예의 없던 면접관의 태도에 비참했던 당시의 감정이 잊히지 않아 한없이 쳐지기만 한 날이었다.


-오늘 노래방 갈까? 너 노래방 가는 거 좋아하잖아.

-아니야, 괜찮아. 

금요일도 아니고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노래방을 가기엔 늙은 남친의 다음 날 출근이 걱정되었다.

-괜히 내 마음이 더 아프네. 오늘 맛있는 거 먹자.

-그러자.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 서툴러 구박받기 일쑤였던 J가 '위로'라는 걸 하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였다.

먹고 싶은 걸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입맛이 없었다.


우울한 일이 있을 때 기분을 올리거나 스트레스를 푸는 각자의 방법이 있다. 

나에게 '맛있는 음식'은 극복 방법이 아니지만, J에겐 지구상 최고의 극복 방법이다. 먹는 것조차 귀찮은 그런 날이었어서 메뉴를 J가 정해 와주길 바랐다. 


 "뭐 먹을래? 생각해 봤어?"

 "아니, 생각나는 게 없어서. 오빠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뭐 먹을까, 뭘 먹어야 기분이 좋아질까를 생각하며 같은 곳을 몇 바퀴 돌며 속절없이 시간을 보냈다.

 "자주 가던 감자탕 집 갈까?"

 "지겹지 않아?"

 "아니, 안 지겨운데?"

 "난 좀 지겨운데... 그래! 뭐 우울한 네가 먹고 싶다면 가자!"

 꼭 말 앞에 '지겹다'라는 한 마디를 붙여야 후련한 것인지 J가 얄미웠다. 


 '그럼 뭐 먹을지 맛집 후보라도 좀 생각해 오던가.'

연애 초기엔 만나기 전 네이버며 구글이며 맛집을 검색해 몇 군데 추천후보들을 가지고 왔었다. 

매일 그래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울한 날 위해 그 정도의 '노력'을 해주길 바랐다.

아, 욕심이었구나.   


 "저번에 내가 친구들이랑 카페 갔다가 사 왔던 아인슈페너 기억나?"

 "아~ 어어, 기억나. 맛있었어."

 "그 카페 이 근처인데 테이크 아웃해서 올까?"

 "가까운 곳에 스타벅스 있는데, 그냥 스타벅스 가도 되는데?"

 "이까지 온 김에, 가보자. 차로 5분이면 돼."

 어느 날 친구들과의 망년회 모임에 갔다가 맛있었다며 J가 커피를 사 온 적 있다. 

 친구들은 "이런 로맨티시스트를 봤나!"라며 놀려댔다고 했다.


 2층짜리 꽤 큰 규모의 카페는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주문 마감을 준비 중이었다. 간신히 아인슈페너 하나를 주문하고 화장실도 다녀올 겸 J와 2층으로 올라갔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힙한 전신 거울이 있었는데 여기가 포토존이란다.

 "서 봐. 찍어 줄게."

 "아... 츄리닝 입고 와서 찍기 싫은데... 안 찍으면 안 돼?"

 "서 봐! 찍어 줄게!"

 고집 센 J를 이길 자신이 없어, 찍고 말자 싶어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어색하게 웃으며 손은 V를 해 보였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받아 들어 다시 차로 이동했다.

 한 모금 마셨는데, 그때와 달리 밍밍하고 크림의 달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 반, 우유 반의 어떤 밍밍한 음료를 마시는 듯 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J에게 말하진 않았다. 분명 J는 핸들을 돌려 다시 카페로 가서 "커피 맛이 왜 이래요? 다시 만들어 주세요."라고 컴플레인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이 나쁘다는 아니지만, 그날만은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J와 몇 번의 감정적 고비가 있었지만 어쨋든 조용히, 무사히, 고요하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커피 줘 봐. 나도 마셔보자."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J지만, 본인이 발견한 커피 맛집이라는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오른손을 나에게 뻗었다. 맛본다면 분명 커피맛이 이상하다고 느낄 텐데, 그렇다고 안 줄수도 없고... 잠시 고민하다 커피를 건넸다.

 "커피 맛이 왜 이래?"

 "커피 맛이 왜?"

모르는 척 시치미 뗐다.

 "밍밍한 게 아무 맛도 안나잖아. 우유인지 물인지, 희한하노."

 커피는 싫어하지만, 커피 맛은 기똥차게 잘 맞추는 J다.

 "...... 난 괜찮은데? 그냥 마시자. 마감하고 있던 거 같은데."

 "아니, 가격이나 싸? 6천 원짜리 커피 맛이 왜 이래? 안 되겠다.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자."

 "하..... 그냥 가."

 "한숨은 왜 쉬어? 지금 다시 가자는 내가 잘 못한 거야? 맛이 없잖아. 일부러 찾아간 건데!"

 "그래서 내가 그냥 스타벅스 가자고 했잖아."

 "지금 이게 내 탓이라는 거야?"

 "아니, 난 괜찮다는데 왜 그래? 그냥 먹으면 되잖아."

 "커피가 맛이 없잖아!"

 "그냥 오늘은 넘어가자. 조용히 집에 가고 싶어. 괜찮다니까. 먹을 만 해."

 "내가 6천 원이나 내고 왜 이런 걸 마셔야 해!"

 "아 쫌!! 괜찮다잖아!"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내내 한바탕 말싸움을 하고 말았다.

 소란 없이 조용히 고요히 보내고 싶던 내 마음과 다르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싫어하는 거.

J가 좋아하는 거, J가 싫어하는 거.

상대방이 좋아하는 행동 9가지를 행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행동 한 가지를 안 하는 게 싸우지 않고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들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행하기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내가 원치 않는 '소란함'을 기어코 행하려던 J의 단 한 번의 시도는,

 속상한 나를 위로하려 노력했던 J의 몇 가지 고마운 행동을 잊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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