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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May 12. 2024

피드백을 바라지 말지어다 1

피드백 걸러듣고 자기확신을 가지자

나는 피드백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사람인 이상 스스로는 알기 힘든 문제가 많을 것이므로, 이를 고쳐서 성장하기 위해선 피드백을 청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웬만한 피드백은 나한테 타격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먼저 요청한 적이 많았다.


러나 피드백의 모순을 깨달아버렸다.

나는 이제 무분별한 피드백이 불편하다.




피드백의 진실


사람들은 나의 결함만을 말해주지 않는다. 자기 시선에서 불편한 것을 얘기할 때도 많다.


나는 사람들이 준 피드백을 무슨 대단한 진실처럼 여겼다. 내가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지침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객관적이지도, 신중하지도 않다.

왜냐고? 그들이 내게 준 피드백을 역추적하면, 그들의 성향이나 가치관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한 것처럼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사회성의 정점에 이르러 있지는 않다.

나는 그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떤 미시적인 규율을 꽤나 훌륭하게 체화한 존재들인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특이해버린 나는, 그들에게서 정상성을 필사적으로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사람은 모두 각자 부여받은 기질을 부딪쳐가며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개체들이었을 뿐이다.

모두 모자란 점이 있고 과오를 저지른다. 어떤 이는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지만, 어떤 이는 여전히 저지르며, 어떤 이는 모르고 지나간다. 심지어는 자기가 저지른 과오 중 대다수를 직면하지 않은 채 지나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보인다.

반성 중독자, 반성 머신, 반성 천재, 반성 전문가, 근본적 죄책감에 초년기 우울을 저당잡혔던 이, 오바 요조 동족 혐오자, 동화 [모모]의 배관공 배포 닮은 자로써 반성할줄 모르는 이를 경멸하지만 그렇다고 탓할 수도 없다. 그게 바로 기질의 다양성이니까! 유전자가 택한 전략이니까! 대체로는 그의 기질도 인류 사회의 생존에 어떤 부분으로 기여를 할테니까!


즉 사회적 정상인이라는 한가지 길이 딱 정해진 게 아니었다. 그냥 ㄱ 기질을 가진 사람은 특정 종류의 갈등을 겪을 확률이 높고, ㄴ 기질을 가진 사람은 ㄷ 기질 사람과 부딪힐 확률이 높고, ㄹ 기질인 사람은 특정 장점을 가진 대신 특정 단점을 가질 확률이 높을 뿐이다.


정상과 비정상, 우월과 열등으로 나누어 사고하는 이데올로기가 이런 인식에도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현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한국인들이라면 대체로 이런 이데올로기를 깊이 체화했을 것이다. 사실은 되게 많은 분야에 다양성이 관련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모순된 평가



사람들이 내게 준 피드백을 종합해보면 또는 고치라는 건지 유지하라는 건지 혼란을 주는 것들이 있었다.

그 중에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러하다.


[1] 말투

A는 내 목소리 톤에 변화가 적고 차분하고 조곤조곤해서 마음이 편해진다고, 좋다고 했다.

B는 내 목소리 톤이 딱딱하고, 리액션이 적고, 무뚝뚝해서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C의 말투는 나보다 더 무뚝뚝하고 무미건조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내 목소리 톤이 오히려 높다고도 하고, 평범하디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말투와 어조, 목소리 따위에 별 생각이 없다.



[2] 리액션

A는 나보고 안웃긴데 웃는 척 하기 장인이라고 했다.

B는 반응이 약해서 진짜 재밌어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반응해주는 것은 타인을 배려해서 그런 것이므로 나쁘게 볼 일은 아닌 거 같다고 했다.

C는 나보다 더 무뚝뚝해보였다. 웃을 때도 가끔씩 씨익 하고 웃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전혀 로봇 같지 않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가끔 살짝 덤덤해보일 뿐 대부분은 평범하고 적당하다고 했던 거 같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내 리액션을 그다지 감시하지 않는다.



일단 더 기억안나는데 대충 이런 식이었다 늘.

 


중요한 포인트는 나의 특성이 누군가에겐 장점, 누군가에겐 단점으로 비쳐진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나와 비슷하거나 더 강한 농도로 그 특성을 보여줬고, 사실 대부분 이들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피드백 구별하기 -1

: 수용할지 말지 따져야 하는 경우 4가지 / 사람들이 '피드백'을 주지 않는 경우 6가지





저런 모순된 평가가 계속 되자 나는 사람들의 피드백은 정답이 아니라 그냥 자기 성향과 가치관에 맞춰서 바라본 시선일 뿐이라는 학습했다.

당연히 어떤 피드백은 나를 생각해서 해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일 것이다. 발화자 외의 사람들도 동감할만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이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피드백이라면 정말 잘못된 행동이었느냐를 떠나서 고려해볼만 하다.


그러나 내 경험 상 어떤 피드백은 입맛대로 바꾸려는 시도, 노골적이고 지리멸렬한 편견, 신중치 못한 불쾌한 내색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피드백을 받으면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기보다는 우선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특히 아래 3가지 경우에서 말이다.

1. 도덕적으로 따질 수 없는 것

: 이런 경우 확실한 피해자도 없기 때문이다.

2. 구체적인 이유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

: 생각해서 해준 조언인지, 조언의 탈을 쓴 싫증 표출인지는 모를 노릇이다. 나름의 근거와 해결책을 갖춘 피드백이라면 적어도 듣는 이의 개선을 위해 조금 더 고민하고 설득하려고 했기 때문에 들을만 하지 않나? 후자라면 들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독사과를 영양소 풍부하다고 굳이 삼켜야 할까? 악담에도 반성할 점을 찾는다면 그게 성인군자인 거지, 안한다고 해서 잘못한 건 아니다. (내가 들은 어떤 말들이 피드백인지 가스라이팅인지 구분하는 과정에서 이걸 배웠다.)

3. 과반수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 단순히 성향, 사고방식, 상황이 다른 걸지도 모른다. 여기에 깜빡 속으면 가스라이팅에 당해버리는 거다!

4. 자기 딴엔 이유가 있었던 것 

: 가치관, 신념 등 자기 딴에는 그렇게 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또 다르다. 물론 자기변명에 갇히지 않도록 네 가지 경우 중에는 특히나 판단에 주의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우선 내 특성을 좋아하거나 별 생각 없어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다. 당연한 소리지만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성이란 언행, 가치관 등 다른 사람과 구별되어 보이는 어떤 것을 총칭한다. 걍 뭐, 피드백백을 유발할만한 무언가란 뜻이다.


내 특성과 유사한 (동족혐오를 하지 않는) 사람

내 특성을 가지진 않았지만 그런 특성을 가진 다른 사람 또는 환경에 익숙해서 별 유감이 없는 사람

내 특성이 자기 기질이나 가치관에 맞아서 오히려 좋게 바라보는 사람

내 특성에 대한 반감보다 나 자체 또는 나의 또다른 특성 등에 호감이 높아 반감이 상쇄된 사람  


쉽게 말해서 나랑 비슷한 성격이거나, 나랑 비슷한 성격인 사람이랑 이미 친구해봤거나, 내 특성이 자신의 단점을 상쇄하거나 요구를 충족하는 것 같아서 좋게 보는 사람. 그리고 그런 것 쯤은 눈 감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네 가지 경우는 내 특성을 그 사람이 인식했을 때의 경우다.




내 특성이 평가를 부를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크게 관심(또는 같이 보낸 시간 등)이 적어서 내가 그런 특성을 가졌던 말던 신경 안쓰고 지내는 경우 (나에게 실제로 가진 관심 < 나의 특성을 발견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관심의 크기)

그 특성이 관심사(의식이 포커스하는 분야)가 아닌 경우


쉽게 말해서 나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거나, 내 특성을 신경써서 피드백하기에는 너무 가끔 만난다거나, 내 특성을 알긴 하지만 다른 부분에 더 관심 있어서 흘려넘기는 경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면 이렇다. (내 실제 사례가 아님)

나는 어조가 단조롭고 말투가 차분하다. (단순한 특징)
절친1은 나처럼 느긋하고 나긋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절친2는 비교적 밝게 말하는 친구인데, 오랜 기간 우리의 텐션에 적응해서 별 생각이 없어보인다.
후배1은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무리에 속해있는데, 나랑 있으면 힐링하는 느낌이라 편안하다고 했다.
후배1의 친구들은 나랑 1:1로 논 적은 없어서 별 생각 없을 것 같다.
후배2는 처음에는 날 노잼이라 했지만, 여러 번 도움을 준 이후로 점차 개성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패션에 관심많은 선배는 내 목소리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며, 사람들의 옷차림과 패션 스타일은 관심갖고 유심히 봐서 기억에 남지만 목소리는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 글에서 이어서...)




다음 글에서는 피드백을 주는 경우와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고찰을 써보도록 하겠다. 쓰다가 지쳐서 나누는 것일 뿐이라 다음 글은 깊이가 얄팍할 수도 있다. (2탄 자체를 안쓰고 다른 거 쓸 수도)



그리고 또, 피드백 토템으로써의 고충도 써야겠다.

나는 어째선지 피드백을 주기 쉬운 사람인 거 같다. 뭔가 다른 사람에 비해 피드백을 많이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좋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치기도 한다. 사람들이 내게 준 피드백을 종합해보면 어느새 나는 골치 아픈 문제덩어리였다. 예쁜 조언만 있었던 게 아니니까 이러는 거다.

사람들로 하여금 피드백을 주게 만드는 마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정말 모난 문제덩어리라서 그런걸까? 왜 나한테 훈수 두는 사람들이 많을까? 어쩌면 다들 이 정도 피드백은 받고 사는데 (인정욕 등의 원인으로 인해) 나만 과민반응하는 건 아닐까?

이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해봤다. 요컨대 인구학적 특성이 만만함 요소 집합체, 뭔가 특이한 점 있어보임, 순하고 기가 약해서 말하기 쉬움, 자기 확신이 없음, 직설적으로 어땠느냐고 물어봄(유도 효과), 나의 것을 제대로 영업할줄 모름 등의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피드백의 빈도와 강도, 허락없이 주는지 아닌지 여부는 나를 어떻게 보는지와 관련 있었다. 끄DUCK.

이런 부분도 풀어써보면 좋을 것이다.  



난 반대로 남들한테는 함부로 피드백을 주지 않는 놈이었다. 자기 자신은 함부로 꾸짖되 남은 이것저것을 참작하여 판단하라. 블루오션 내부 헌법 3조 13항에 쓰여있는 구절이다. 전에도 이런 지침에 의하여 마음 재판을 받았다. (정치질이 징그럽다는 이유로 과거 동기의 다른 언행까지 경멸해버린 죄목 때문이었다. 그치만 1n살 어린 성인도 연애 가능한 범위에 넣는건 징그럽다고요. 중년 간의 만남도 아니고.)

성격 상 신중하게 구느라 앞으로도 내 잣대를 들이미는 일은 적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스스로를 변호해야 한다. 안그러면 일방적인 관계가 잡혀버리고 만다. 이 관계가 심화되기까지 하면....? 끼앾!!





아무튼 이런 점으로 인해 피드백을 이제는 걸러들을 것이다. 그리고 특성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쩌면 이것이 도태되는 시작점, 변변치않은 자기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나를 보호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무례한 말은 애진작에 걸렀으면 좋았을 일이 너무 많다.

이런 결론을 밝히면 어떤 사람들(이라 쓰고 슈퍼 에고라 읽는다)은 이렇게 말한다.

"피드백을 적극 수용하지 않으면 너의 그 문제투성이 상태를 어떻게 고치려고 그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난 지금 상태로도 장점 많고 괜찮 놈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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