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와 애연가 사이 찜찜한 7년의 기록
담배. 어릴 때는 내 인생에 절대 없을 두 글자라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때 담배 피우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백해무익한 걸 왜 필까?' 혼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만큼 멋지지도 않았고, 그만큼 경험해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킁킁 담배 냄새가 나면 코부터 시작해 전신에 빨간불이 울렸다. "해롭다, 해로워! 가까이하지도 마!"
시작은 대학에서부터 였다. 술을 마실 줄 알게 되면서 술자리에 가면 쉽게 보는 게 담배였다. 성별 구분 없이 자리에 함께한 무리 중 꼭 한 두 명이 흡연자였다. 그때 처음 담배를 피워봤다. 술김에 폈던 것 같다.
그 이후 거하게 취할 때면 종종 친구의 담배를 빌렸다. 새벽 길거리에서 몽롱한 정신에 기대 담배를 피우면 술기운 위에 담배 연기가 덮혀졌다. 정신은 한 단계 더 아득해졌고, 그렇게 담배와 나 사이에 놓여 있던 구분선이 스르르 연기처럼 사라졌다.
더 이상 담배를 빌려서 필 수 없을 만큼, 일정 주량 이상 넘으면 습관적으로 담배가 생각날 때쯤 직접 구매를 하기 시작했다. 술 마실 때만 폈다. 맨 정신엔 생각도 안 났다. 술자리 횟수만큼 새 라이터가 생겼지만 담배 한 곽은 몇 달에 걸쳐 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흡연자'라는 자각이 없었다.
그 이상한 경계에 놓여 있을 때, X를 만났다.
X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펴셔 나를 만났을 당시 거의 10년 차 흡연자였다. 나와 만날 때 수시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는데 그때 담배 없이 살 수 없는 애연자를 처음 만났던 것 같다. 대학 때 만났던 흡연자들은 나처럼 중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는 입에 대본적도 없는 모범생들이 대다수였고, 방황하는 20대를 더욱 가열하게 방황하고자 담배를 시작한 이들이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그들처럼 내게 담배는 '하루 밤의 일탈, 술김에 저지르는 또 다른 멍청한 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X를 만나면서 담배를 누군가에게 명백한 '호'가 될 수 있는 기호식품으로 보게 된 것 같다.
X는 담배를 필터 끝까지 다 폈다. 폐 끝까지 주입하듯이 담배를 아주 길게 폈다. 뻐끔 거리며 짧게 끊어 피는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명이 다한 필터는 길에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고 꼭 휴지통을 찾아 버렸다. 휴지통이 없으면 따로 가져가서 버렸다. 담배를 피우고 나선 화장실에 들러서 손을 깨끗이 씻었다. 하루 중 일정 시간 이상을 담배 피우는 일에 쏟았고 그 과정에 감정 따위는 크게 섞이지 않았다. 그만큼 X에겐 담배란 하루의 당연한 일과였다.
X는 혼자 담배 피우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담배 피우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평소 미스터리 같은 구석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 고독해 보였다. 언젠가 X가 군 복무하던 시절 추운 겨울에 근무를 서면서 담배를 폈던 기억을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그때를 마치 사랑했던 옛 연인과의 추억처럼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이야기하는 X를 보면서 생각했다. '얘는 담배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그런 X가 X가 되었을 때, 내 곁에 담배가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X가 생각나서 폈던 것 같다. 퇴근 후 집 앞에서 혼자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담배를 찾았다. 하루에 딱 한 대였는데 그 시간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조용한 하늘을 바라보며 길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 시간이 마치 멈춰진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
그 후로 '퇴근 후 한 개비' 루틴이 시작했다. 매일은 아니고 하루의 마침표가 필요할 때나 멈춰진 시간 속으로 잠깐 들어가고 싶을 때 폈다. 한 개비 정도는 술 한 잔처럼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혼자 + 담배 =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과 안정감. 내 일상에 작은 공식이 세워진 시간이었다.
그 공식이 한 2년 정도 이어졌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 조용하게 혼자 하늘을 보며 피는 담배 한 대가 주는 위로가 좋았다. 특히 여행지에서 피는 담배는 더욱 특별했다. 담배만 있으면 어느 공간에서든 그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역한 담배 냄새가 손과 옷에 배어드는 건 싫었지만.
담배를 피우면서도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순 없었다. 내 몸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죄의식이 머리 한 구석에 명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는 타협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몇 살까지만 피기로 자체 합의를 한 상황이다. '담배를 포기하기 싫으면 그냥 계속 피지 그래?' 누군가 물어오면 '아냐, 끊긴 할 거야' 대답은 곧잘 했지만 정말로 왜 끊어야 하는지 납득을 못해서 한계점을 만들었다. 그전까지 '끊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 않을까 해서.
이런 정신승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정량적으로 하루 한 대란 흡연자 대비 적은 양, 두 번째는 의지적으로 피지 않는다면 계속 안 필수 있을 것이란 체득적 자신감이다. 중독에 대해 낮아진 감수성만큼 담배가 주는 위안과 안정감이 그만큼 컸다.
예전에 한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해준 적이 있다.
생각이 많은 친구들은 낮 산책을 자주 하세요. 요즘 같이 날씨가 좋은 날에 가까운 곳 어디든 가서 산책을 하는 게 참 좋습니다.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단순해져요.
인생을 살다 보니 밤보다 낮을 사랑할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비단 정신 건강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에요. 자신의 삶과 일상을 긍정할 줄 아는 사람에겐 낮 시간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져요. 밤에 즐길 수 있는 것들보다 낮에 즐길 수 있는 것들로 본인들의 일상을 채워나가 보세요. 그 과정에서 당신을 괴롭히는 고민과 걱정들이 사라지는 걸 경험할 수 있어요.
대충 이런 이야기였는데 뇌리에 깊게 남을만한 인생의 조언이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피는 담배 대신 쨍쨍한 햇볕 아래서 즐기는 세상의 모습. 그 속에 나만의 또 다른 멈춰진 시간이 생겨나길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