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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로 Nov 04. 2021

점점 말 수가 적어진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요즘 왜 말하다 중간에 길을 잃을까?


며칠 전 친한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가 문득 스스로 '나 왜 이렇게 말을 못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워낙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해서 말수가 많은 편인데 요즘에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자꾸 길을 잃는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야기의 주제와 의도가 적절한지, 안 해도 될 이야기 같고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말머리를 놓치고 만다. '아 그러니까... 뭐 그랬어요.'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지인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원인을 생각해봤다. 독립한 지 거의 6년이 넘어가는데, 최근 2년 정도 코로나 덕분에 재택근무는 늘고 사적인 만남이 줄었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취미 겸 여가생활이 고작 헬스, 독서, 영화감상 정도니까 자기 전에 '오늘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안 한 것 같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늘었다. 매일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도 요새는 이유 없이 받고 싶지 않아 문자로 대신하다 보니 일주일 중 3~4일 타인과의 대화나 교류가 없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렇게 점점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말수가 줄면서 이유 없이 우울해졌다. 굳이 말하지 않고 혼자 생각하고 끝나는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그렇다고 단정 짓기에는 아직 난 하고 싶은 말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참 많은 수다쟁이였다.


자려고 누웠는데 공허해


말 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생각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고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줄어든 말수와 대화 대신에 매일 끊임없이 새로운 뉴스와 콘텐츠를 소비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체된 고민과 생각들은 누적됐고, 나의 좁은 세계는 자기 고립에 빠진 채 더 더 작은 우물이 되어 갔다.


친구한테 고민을 털어놓으니까 연애를 권했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내게 필요한 건 '연애나 타인의 애정' 따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신 지금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런데 우습게도 정말로 내게 필요했던 건 '사회적 교류'였다.  


취미 부자도 고립에 빠질 수 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취미가 없어서 이런 교착 상태에 빠진 줄 알았다. 내 삶에 깊이 몰두하지 못한 나의 탓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취미를 해도 이유 없이 우울했다.


실제로 요즘 사회적 단절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고립된 상황으로 우울감과 고립감에 빠진다고 한다. 코로나 블루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아무리 자기만의 세계가 단단하고 견고한 이들이라도 타인으로부터 단절된 일상이 지속될수록 이유 없는 무기력, 우울감을 느낀다.


원인을 알자마자 의도적으로 받지 않았던 전화도 다시 받고, 늘 대화하던 상대가 아닌 오래된 지인들과의 안부 연락도 서심 없이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늘리니까 정말로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이 확실했다.

불편한 소통보다 편리한 단절이 좋았는데


1인 가구로 혼자 산지 오래된 터라 처음에는 이 고립감과 이유 없는 우울감이 일상에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인 줄만 알았다.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내가 아니었다. 정말 코로나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일상의 변화가 내게도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불편한 소통을 할 바에는 '선택적인 만남', '편리한 단절'을 추구했다. 넘쳐나는 콘텐츠와 이야깃거리, 혼자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들만으로도 돈만 넘친다면 혼자 살기 참 좋은 세상이란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그런데 사람의 온기, 타인과의 교류 없이 인생을 살아가기에 인생은 너무 길었다.


고립과 고독의 차이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만큼 타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해졌다. 나를 돌보는 시간만큼 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니까. 고립과 고독의 차이를 느끼고 아는 사람으로서 내 세상이 단단한 벽돌로 지어진 완벽한 성이 아니라 아름다운 배경 위에 놓인 집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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