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jin sophia Jul 26. 2019

2. 포카라, 힙스터들의 숨은 성지

히말라야 설산으로 가는 바로 길목 -


매번 들릴 때마다 이번 생에 포카라는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에 신나게 돌아다녔던 게 지금 세어보니 자그마치 다섯 번이다. 그중 두 번은 출장 차 들렸던 터라 맘 놓고 돌아다니진 못했지만, 네팔 설날에 한번, (네팔은 Magh라는 고유 달력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고 매년 4월 초중순이 새해가 된다. 내가 일했던 기관들에서는 한국에서도 사용하는 양력 달력으로  공식 일정을 표기하고 사용하였지만, 특히 네팔인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공휴일이나 축제 등은 여전히 네팔력을 따르기에 오피스에서도 고유 달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네팔어로 쓰여 있어서 읽지는 못했지만-) 좀솜 트레킹 후에 한번, 우기 때 한번. 들릴 때마다 정신없는 카트만두에서 벗어나 참 여유로운 일정을 즐겼다. 그중 두 번은 버스를 이용했는데 지금 보면 그것도 다 추억이고 불만 없이 잘 다녔지만 이제는 그 꼬불꼬불 울퉁불퉁한 길을 여덟 시간 내리 버스 타고 가는 건 조금 무리이지 싶다 (다행히 휴게소에서 몇 번을 쉬어가긴 한다. 나는 별 탈 없이 다녀서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지만, 배탈에 멀미에 장난이 아닌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화장실은… 아무리 다녀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비행기를 탄다면 눈앞에 펼쳐지는 설산에 네팔에 올 기회가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감사하고 또 감사할 테다 –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가는 출근길



카트만두 - 포카라를 연결하는 비행기


페와 호수를 둘러싼 관광 지역의 포카라 (레이크 사이트)는 여유롭게 노닥거리기 딱이다. 트레킹을 위해 찾는 한국인들이 꽤나 되는 터라, 한국 식당도 많고, 전 세계에서 몰린 등산객들이 마지막으로 각오를 다지도록, 혹은 그동안의 피로를 풀기 위한 식당, 스파, 숙소, 카페가 즐비해있다. 특히 카트만두에서 오랫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하루 종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면서 잠사 쉬었다가 책 읽고, 구경 다니다가 수영 가고, 마사지나 네일까지 받으며 풀 수도 있다. 좀 더 활동적인 것을 원할 경우 패러 글라이딩이 제격이다. 트레킹을 목적으로 네팔에 오신 분들은 분명 포카라에서의 일분일초라도 허투루 보내는 것을 아까워하실 테지만, 포카라에서는 그냥 쉬면서 여기저기 보이는 '히피'들처럼, 호숫가에서 찌아 (밀크티) 혹은  커피 한잔 마시며, 어쩌다 이런 외진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쭉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참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마음속에 기억 속에 남을 설산 트레킹을 마치고 몸을 풀면서 호숫가에서 여유까지 부리는 일정이 하루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코이카 영 프로프셔널로 출장 보조 차 정신없던 포카라, 좀솜에서 카트만두로 다시 돌아가기 전 잠시 노닥거렸던 포카라도 너무 좋았지만 아무래도 네팔 설날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포카라에 와서는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 쏘아 다녔던 기억 그리고 유엔비 재계약 문제가 골치 아프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도피해서는 혼자 8시간 버스를 타고 가서, 삼 박 사일을 꼬박 책 읽고 일기 쓰는 데만 보냈던 보냈던 우기의 포카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New Year 휴일이라고 휴가를 내고 겨우 로컬 버스 표를 구해서는 처음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넓은 들판을 쏘 아다니 기도 하고, 여러 맛집을 돌아다니고 수영하던 기억은 아마 나이가 들수록 치열하고 자유로웠던 젊음의 한 조각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후에 출장차 현지 마을에 많이 들렸지만, 아무래도 편안한 마음으로 스치듯 지나갔던 현지 생활 모습 그리고 우릴 구경하던 아이들 모습은 또 다른 느낌으로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계약 연장 건은 물 건너갔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에 포카라의 한 카페에서 페와 호수 그리고 패러 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몇 시간 꾹꾹 눌러 네팔에서의 기억, 앞으로의 다짐을 혼자 일기장에 정리했던, 두꺼운 원서를 나작 나작 호숫가에서 읽어가던 그때는 분명 앞으로도 치열했던 20대의 기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나작나작 포카라


요즘은 한국 방송에서도 종종 포카라가 등장하여 참 반갑다. 포카라 가시는 분들이라면 한국 식당만 찾아다니시는 것보다 여기저기서 뿜어 나오는 히피스러운 분위기를 적극 즐기시어 여기저기 숨은 식당과 가게를 구경 다니실 것, 페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혹은 호숫가의)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 보실 것, 무엇보다 해질녘 페와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볼 것을 추천드린다.




포카라는 다시 갈 기회가 없다고 단정 짓던 마음을 언젠간 또 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채웠다. 네팔에서 언제나 무언가를 단정 짓는 것은 오만일뿐이라는 것을 누누이 배워왔던 탓이다. 좋은 곳 두고 왜 네팔 같은 곳에 굳이 비싼 비행기 표를 주고 (실제로 직항의 경우 시즌에 따라 100만이 훌쩍 넘기도 하기에) 가냐는 사람들도 만났다. (물론 아주 다른 분야 사람이긴 하지만-. 그러고 보면 국제기구나 개발협력에서 일할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본인이 감수하고 인내한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나아가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 일이라고 참아야 한다고 몇 년이고 참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물론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추억을 쌓고, 좋은 분들 덕분에 많이 배운 탓에 포카라 그리고 네팔을 편애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분명 네팔은 내게 반짝반짝한 이십 대 중반의 추억을 제공해 준 곳이기에, 어디에서도 못 할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성장케 해 준 곳이기에, 난 언제든 누구에게나 네팔, 특히 포카라를, 살면서 꼭 한 번은 방문해야 할 곳으로 언급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1. 어쩌다 카트만두에서 일 년 넘게 살았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