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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sophia Aug 11. 2019

3. 좀솜, 지구의 한쪽 끝 모퉁이

언젠가 꼭 다시 한번-



해발 3580미터에 위치한 마을은 산 아래 그 어느 관광지와 다름없었다. 상인들은 저마다 조개껍데기나 암모나이트 화석 그리고 티베트 장신구를 팔기 바빴다. 학창 시절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판 그리고 유라시아 판의 충돌로 만들어졌다고 배웠던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쌀쌀한 날씨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두통 - 고산병-에 조금은 멍하고 또 먹먹한 채로 터벅터벅 힌두교의 성지 묵디나트 사원으로 올라갔다. 분명 내 인생 통틀어 이토록 외딴곳, 이질적인 곳에 존재하는 순간은 손꼽힐 것이라고 직감했다. 틀림없이 그곳은 우리 지구의 한쪽 끝 귀퉁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었다.




트레킹에는 취미가 없어서, 네팔에 그렇게 오랫동안 살면서 한 번을 포터 그리고 가이드를 동원한 트레킹을 하지 않았다. 남들은 주말 산책쯤으로 여기는 합티반 등산도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어서 차마 몇 날 며칠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는 트레킹 여행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코이카 영 프로페셔널 계약 연장 전 (4일 인가 5일 되는 휴가도 제대로 쓰질 않아 공휴일을 끼어 쓰니 꽤 긴 휴가가 되었다. 이번에 다시 유쓰 유엔비를 가게 되어 온라인으로 안전 교육을 받는데, 스트레스 조절도 중요한 성과 요소로 보고 있고, 이에 휴가를 잘 분배하여 쓰는 것도 안전 그리고 근무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새롭고 놀라웠다) 남은 휴일을 한 번에 정리할 요량으로 좀솜 - 묵디나트 트레킹 일정에 따라나섰다. 눈앞에서 마주하는 설산, 산꼭대기에서만 비로소 온전히 마주하는 티베트 전통문화. 그리고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장엄한 광경은 네팔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데 충분했다.





8시간 지프차 강행군은 분명 그 이상으로 보상해 주었다(좀솜에도 공항이 있지만, 특히 협곡에서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결항이 되기 일쑤다. 우리는 재미 삼아 어찌 되었건 고통 총량의 법칙이라면서, 20분 비행기를 타고 가던 8시간 지프차를 타고 가던 몸이 괴롭거나 정신이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농담하곤 했다). 그런 오지에서도 따뜻한 물 그리고 전기가 있고 커피도 마시고 깨끗하고 따뜻한 숙소에서 묵을 수 있음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고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 한잔 마신다는 것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나도 꽤나 많은 곳을 여행 다녔지만, 분명 다른 유명 관광지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뿌듯함이고 감사함이며 행복감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마셔대던 찌야 너머로 나눈 대화들 덕분이었을 테고, 그 산꼭대기까지 편하게 여행하도록 마련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었을 테고, 거대한 산맥들 자연경관이 가져다주는 겸손한 마음 덕분이었을 테다. 몇 달 후 다녀온 방콕마저 시들하게 느껴졌으니, 말 다 했지 뭐.



쓸데없이 왜 같이 가자는 그 제안에 오랫동안 고민했는가 후회가 될 정도로 좀솜은 Mustang에 대한 나의 환상을 완벽 그 이상으로 충족시켜 시켰다(Upper Mustang의 경우 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고는 하나, 매일 부과되는 입장료와 긴 트레킹 일정이 부담스러워 나는 Lower Mustang에 다녀왔지만 여전히 멋졌다..!). 설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쌀쌀했고, 황량한 광야에선 멸종된 줄 알았던 공룡과 마주하더라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티베트 스타일의 깔끔한 식당 그리고 사원들에 마음이 빼앗기면서도, 관광지화 되는 바람에 많은 자연경관이 훼손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얼마 전 두 번째 히말라야 서킷 완주에 성공한 이탈리아 친구는 몇 년 사이에 정말 많이 훼손되었고 관광지화 되었으며 숙소는 현대화되고 사람들은 많아졌다고 했다. 그만큼 히말라야가 우리와 가까워졌다는 것, 히말라야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도 현대 문명에 가까워졌다는 점에는 감사하지만, 분명 문제점도 많다). 시간이 충분하지만은 않아서 많이 걷지는 못했지만 차를 렌트해 좀솜 – 묵디나트를 정복하고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니는 식의 짧은 트레킹을 즐길 수 있었다. 마주하는 자연 관경 그리고 티베트 문화에 매료되었다. 오래된 마을에서 먹는 아침식사, 짧은 트레킹 후 먹는 뚝바 (티베트식 수제비)가 카트만두에 내려온 후에도 한동안 아른거렸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네팔 생활, 점점 야근이나 잔여일에 정신없던 네팔 생활에 그래도 또 다른 긍정의 의미를 더해준 여행이었다.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종교적에 기반한 삶을 살게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의 위대함 장엄함 그리고 불확실함에 가까운 일상이라면 초월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 보다 당연시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이전 시대를 고수하고 방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분명 그 외진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오고 주민들은 전자기기를 가지고 있는 등 현대와 전통이 혼합된 생활이 일반적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현실감 제로인 그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만 너무나도 단호하게 재단하는 마음가짐은 어쩌면 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한 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이 보고 경험할수록 점점 확신보다 겸손한 마음이 가득 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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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로 돌아와서는 티베트이나 부탄, 등의 티베트 문화권 여행지를 버킷 리스트 안에 소중히 넣었다. 티베트 문화권을 방문하게 되는 날이 또 올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브래드 피트 출현 <티베트에서의 7년>을 꽤 흥미롭게 봤었던 기억이 난다. 분명 지금 보면 영화의 편견 가득한 설정에 화가 치밀 테지만,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으니 요르단으로 가기 전 다시 한번 꺼내보고 네팔에서의 기억을 다시 한번 소중히 넣어두고 정리해 둬야겠다.


인생에서 중요했던 터닝포인트는 언제나 소리 소문 없이 왔다가 뒤돌아보면 아득하다던데. 조금이나마 네팔의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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