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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Sep 27. 2022

나의 가을은 이렇게 찬란하여

열네 번째 이야기

현관문을 나서는 데 바람이 꽤 서늘하다. 서늘하다는 표현은 꽤 긍정적이진 않다만, 지금의 온도를 그저 시원하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었다.


요새 하늘과 구름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구름은 때때로 수채화 같이 옅게 펼쳐졌다가,

또는 조소 작품처럼 단단하고 짙은 백색으로 내 시선을 앗아간다.


나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하늘과 구름이 만드는 날들을 조금 더 좋아하는 편인데, 하이얀 뭉게구름 위로 하늘빛 명암이 드리운 맑은 날엔 만사 제쳐두고 햇볕을 쬐러 나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긴팔을 입자니 아직 이른 듯하고, 반팔을 입자니 도통 서늘함에 적응이 되지 않아 걷는 내내 털이 쭈뼛쭈뼛 서는 그런 기분과 나날들. 이런 날의 구름은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주길 바라지만, 야속하게 보이지 않는 바람을 따라 구름은 가는 줄도 모르게 사라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곁에 남아주길 바라는 것들이 있다.


이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내 마음엔 벌써 늦가을을 보인다. 하늘은 저렇게도 맑고 높은데, 바람은 서늘한 소리를 내고 있다. 가을이 가는 게 벌써 아쉬워, 초입에 다다르기도 전에 이별을 준비해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을의 시간을 보내는 나는 이다지도 짧은 가을이 아쉬운 것일까, 아님 또 한 번 찾아올 길고 영원하게 시린 겨울을 못내 외면하는 것일까.


내 마음속 가을을 더 늘려보자. 가을을 늘린다기보다는 내 마음이 조금만 더 영원해지길 바래보자. 어제와 오늘의 구름을 꾹꾹 눌러 담고, 손을 뻗어 바람을 잡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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