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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Oct 03. 2022

우산 없이 비를 기다리는 마음

열여섯 번째 이야기

요새는 비 오는 날이 좋다.

유독 비 오는 날이 적은 한 해여서 그런지, 아님 지난 물난리를 벌써 잊은 것인지 몰라도

지금 내 눈앞을 그리고 있는 이 창 밖의 흐릿한 풍경만큼은 좋다.


생각해보면 나는 눈 오는 것을 퍽 좋아했는데, 그것이 눈 자체를 좋아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눈 오는 날의 그 고요함과 겨울의 건조함, 크리스마스의 설렘 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의 부산물이었달까. 내게 늘 행복을 줬던 눈 오던 나날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생각해보니 하얀 눈 자체를 흠모해 사진 속에 담아둔 기억이 많지 않다.


그런가 하면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그 어떤 외부적인 요인도 없었다. 지금도 나는 빗방울이 맺힌 저 넓은 창문에 그저 텅 빈 시선을 둔 채,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고 있다.


오래간 내린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물 웅덩이 위로 가느다란 빗방울들이 하나둘 떨어지며 파원이 되고,

그렇게 흩어지는 파동으로 이내 정적이 떨려오는 것이 퍽 나쁘지 않다.


시시각각 어딘가에 부딪히며 후두둑, 제법 요란한 빗소리도 반갑다.


하늘은 무겁고 둔탁한 저 안개구름으로 뒤덮여 어떤 햇빛도 담아내지 못하는데,

그 아래로는 한 움큼 물을 먹고 젖어 더 도드라지게 선명한 옆집 빌라의 빨간 지붕과 길 건너 초고층 아파트의 갈색 외벽들이 그리는 도시의 수채화가 나를 개안하게 한다.


비가 올 때마다 듣는 노래에선,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한다고 한다.

음악은 매일 같이 흐르고 어쩌면 매일 당신을 조용하게 생각하면서도 저 비를 핑계와 변명으로 삼는다.


그래서 늘 비 오는 날이 좋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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