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수련일지
2025.12.19.
올해가 가기 전에 그림명상 수업을 듣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이었다. 새해에 내가 걸어가야 할 길과 그 길에서 나를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시간.
내가 마주한 이 아이는 요가 수련 중이다.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을 정도로 열심이다. 그런데 어쩐지 슬퍼 보인다. 굽힌 무릎 위에 팔을 포개 웅크린 자세는 슬플 때만 하는 거였다. 어쩌면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리바운드 포즈에서 방금 마친 후굴 동작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잘해왔는데 왜 오늘은 안 되는 거야?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잠깐 쉬었다고 그새 감이 떨어졌나? 그새 근육이 빠졌구나. 이때까지 수련해온 시간이 이렇게 쉽게 증발해버리는 건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 자괴감이 뒤섞인 눈물이 발등 위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라? 근데 요가 동작을 못했다고 슬프지 않잖아? 나는 아비야사의 힘을 믿고 다음을 더 기대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곳은 요가원이 아니라 어느 차가운 무대 위였다. 따스한 햇살이 들어온다고 생각했던 창문의 커튼은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커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객석에서 무대 위에 홀로 선 이 아이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 잘하나 보자. 너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봐. 하지만 꼭 잘해야 할 거야. 전에 해왔던 것만큼, 아니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할 거야."
누군가는 이 아이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한다고, 마침내 홀로 무대를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으니 축복할 일 아니냐며 응원을 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이 아이는 그저 두려워서 떨고 있다. 혼자 무대를 감당하는 게 갑작스럽기도 하고, 기량을 제대로 발휘를 못해 늘 잘해왔던 것조차 실수할까 봐 겁이 난다. 기대만큼의 무대를 보여주지 못하면 "역시 너 혼자서는 무리였어"라는 차가운 평가를 받게 될까 봐 무서운 거다.
나는 이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지도, 쪼그려 웅크린 자세를 풀어 후굴 자세를 완성시켜주지도 못했다. 커튼을 쳐서 이 아이가 펑펑 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줄 에너지조차 없었다. 그저 무정하게 무대만을 완성시켰다.
'이건 네가 홀로 감당해야 할 일'이라며 아이를 밀어붙였다. "결국 넌 잘 해낼 거야, 난 널 믿어. 힘내!"라는 무거운 말만 던졌다.
나는 이 아이에게 왜 슬퍼하고 있는지부터 물었어야 했다. 그 마음을 다독여 눈물부터 닦아줘야 했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때로 그 말은 더 큰 힘을 쥐어짜내라는 채찍질로 들릴 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아이는 이미 수 차례 후굴을 완성해본 기억이 있다. 후굴을 위해 들였던 수많은 시간과 그 정직한 땀방울을 기억하는 이들이 곁에 있다. 무대 위에서 낙담했던 모습은 이 아이의 '걱정나무'가 그려낸 찰나의 장면이었을 뿐, 이 아이는 결국 멋지게 후굴을 해냈다.
그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후굴을 위해 묵묵히 들였던 그 '시간의 힘' 덕분이었다. 매트 위에서 보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이 아이의 몸과 마음의 근육 속에 고스란히 저장돼 있었다.
성과라는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보다 중요한 건, 내 안의 아이가 흘리는 눈물을 먼저 알아채줘야 함을 배웠다. 무대 위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아이가 쌓아온 시간은 결코 이 아이를 배신하지 않을 테다.
후굴은 가슴을 열고 취약한 앞부분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한 자세다. 어쩌면 이 아이가 후굴을 실패할까 봐 겁을 먹고 있는 건,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들킬까 봐 아닐까. 무대 위에서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에 겁내지 말자. 혼자서 무대에 올라와있는 게 아니라, 이 아이 주변엔 기꺼이 도움을 건넬 준비가 된 사람들이 무대에 같이 올라와있다. 그러니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힘내"라는 말 대신 "정말 고생했어. 힘들면 잠시 울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이 아이에게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