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의 정년퇴직 막기 대소동
1
행복한 가정은 한 가지 모습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무수한 모습을 가진다는 톨스토이의 유명한 금언이 있다.
이 금언을 변호사 업계에 적용시키면 어떨까?
변호사가 성공하는 이유는 하나고,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성공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의뢰인을 잘 고르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변호사라도 개떡 같은 사건을 갖다 주는 의뢰인을 만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다지 능력이 출중하지 않다 해도, 찰떡 같은 의뢰인을 만나면 실패할 사건도 성공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틀린 것 같다.
찾아오는 의뢰인이 전부 개떡처럼 보인다.
지금도 확실히 그렇다.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늑대인간’이 늑대로 변하는 건 타고난 거예요. 타고난 천부의 특성 때문에 차별을 받다니. 이런 게 인종차별 아닌가요?”
눈앞의 복슬복슬한 귀를 지닌 남자를 보다, 나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낀다.
하필 ‘수인족’ 의뢰인이라니 정말 골치 아프다.
왜냐하면 일은 복잡하고, 돈은 안 되는 데다, 비위 맞추기가 너무 까다롭다.
하지만 변호사 윤리강령에 따르면, 변호사는 의뢰인을 함부로 거절하지 못한다.
아무도 나서서 지키는 법 없는 법조윤리지만, 혹시 의뢰인이 신고할지도 모를 일이다.
유난히 까다로운 수인족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애써 설명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엄밀히 말해 한국에는 차별금지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비소르아지트 씨? 한국 이름이 뭐죠?”
“선철수요. 강철처럼 튼튼한 나무라는 뜻이지.”
“예, 강철나무 씨. 요컨대 주장하시는 바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채용에서야 출신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지만, 회사가 필요로 하는 바가 없는데 채용할 수는 없어요.”
그 순간 까다로운 의뢰인 비소르아지트, 아니 ‘선철수’ 씨가 외쳤다.
“그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나도 이제는 ‘난민’도 아니고, 엄연히 세금 내면서 이 땅에 사는 한국인인데!”
그게 오히려 더욱 큰 문제다.
차라리 난민이라면 속지주의 원칙에 따른 한국법도 적용되겠지만, 국제조약에 따라 예외적인 처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선철수 씨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다.
나는 과연 설득이 될지 알 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한국법을 따르셔야죠, 선철수 씨.”
수인족은 예민하고, 늑대인간은 더욱 그렇다.
어쩐지 말 안 듣는 개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종족차별의식일까?
의뢰인이 씩씩대며 나가고, 교차하듯 들어온 사무실 직원 ‘신 대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이 왜 이래요, 변호사님?”
사무용 책상, 의뢰인용 소파, 전시용 법률서적이 모두 찢어진 상태다.
책상조차 찢어버리는 의뢰인의 악력은 다행히 내게 가해지지는 않았다.
그 점에서는 선철수 씨는 충분히 폭행죄의 무서움을 아는 한국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손괴죄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다.
나는 신 대리에게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이봐, 신 대리. 의뢰인 똑바로 안 받아? 웬만하면 신 대리 선에서 자르라고 했잖아!”
“에이,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게다가 수인족 의뢰인이잖아요. 문제가 생기면 꼬장꼬장하게 원칙대로 가자고 한다구요. 혹시 변호사협회에 신고라도 하시면 어쩌려구요?”
“차라리 신고를 하면 인테리어가 부서지는 일은 없겠지!”
부서진 책상을 가리키며, 나는 신 대리에게 단단히 일렀다.
“주소 받아놨지? 이거 다 금전청구해.”
물론 신 대리는 웃기지 말라는 듯 콧방귀만 뀐다.
“포기하세요, 변호사님. 수인족 보호단체에서 시위하러 오면 우리 일 못해요.”
“그럼 검찰에 고소할까? 이거 엄연히 손괴죄인데.”
“그러다 ‘이계종족’ 차별 변호사로 미디어에 나오시면 어쩌려구요? 저 새로운 일자리 알아봐야 할 거 같은데요?”
사실 나도 전부 아는 얘기다.
오히려 신 대리가 화를 내면서 날뛰면 말려야 할 판이다.
그렇지만 부서진 책상을 보면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기가 편할 때만 한국인이고, 힘들 때는 한국인이 아니란 말인가?
법은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대체 이 땅의 주인이 누구야! 한국인 아닌가! 언제부터 ‘이계인’들이 설치고 다니게 됐어!”
그 순간, 아주 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여왔다.
“그거, 정말, 유감입니다. 저희도 원해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닙니다만.”
나는 눈을 깜박였다.
신 대리의 등 뒤로 뾰족한 귀가 살랑거리는 게 보인다.
겸연쩍은 웃음을 머금은 채, 신 대리가 짐짓 격식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새로운 의뢰인이 오셔서 모셔왔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저 분은.”
“맞아요.”
신 대리가 경외하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엘프예요.”
내 인생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의뢰인이 찾아온 것이다.
2
난생 처음 보는 엘프 의뢰인은 난생 처음 듣는 의뢰를 갖고 왔다.
“정년퇴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나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퇴직의 시간이 찾아온다.
자영업처럼 퇴직을 할 수 없는 직종이 아닌 한, 언젠가는 은퇴를 해야 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것은 일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기보다, 고령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산업혁명 시대에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소년부터 노인까지 모두 밤낮없이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제로 쫓겨나는 해고도 아니고, 취지는 자발적이지만 대체로 강제적인 명예퇴직도 아니고, 정년퇴직을 하기 싫다니 이게 웬 말일까?
무엇보다 상대방의 나이가 문제다.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뾰족한 귀, 검은 머리 파란 눈의 엘프가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26세입니다.”
“예? 아니, 그렇게 어리게 보이시지는 않는데요? 아, 물론 외모야 당연히 20대시겠지만.”
“지구에 온 지 26년 째입니다. 그러니 26세지요.”
이런 억지는 꽤 겪어봤다.
우리 법률사무소에는 이상하게 이종족들이 자주 찾아온다.
아마 성실하게 법률 상담을 해준다는 소문이나 혹은 겁먹어서 기물을 파손해도 아무런 클레임을 걸지 않는 호구라는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그러니 엘프의 당황스러운 말에도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응대할 수 있다.
“어, 그러니까, ‘에레쉬키갈’ 씨? 이름이 좀 어렵군요.”
“이영희입니다.”
“예?”
분명히 이영희라는 이름이 지닌 뉘앙스와는 거리가 먼 외모의 엘프가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했다.
“이영희라고 불러주십시오. 저는 한국인입니다. 변호사님.”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이종족들이 현지 국가의 국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인과 전혀 다르게 생긴 엘프가 이런 억지를 쓰면 참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방금 전 소파를 다 찢어버려서, 엘프를 밖에 있는 사무용 의자에 앉게 만든 장본인인 ‘선철수’ 씨가 더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다.
어쨌든 선철수 씨는 늑대로 변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 알겠습니다. 제 생각엔 원래 이름과 좀 비슷한 걸로 만드시는 게 좋았을 것 같은데요.”
“변호사님의 이름은 변호사님이 지으셨나요?”
“그렇지는 않죠. 부모님이 지어주셨습니다.”
엘프 ‘이영희’가 지극히 논리적으로 내게 반박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 처음 입국 신청을 받던 공무원이 추천해준 이름이죠. 하지만 마음에 듭니다. 정말 한국인 같은 이름이니까요.”
그렇다고 ‘이영희’ 씨가 공무원을 부모로 여기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쨌든 결국 엘프든 오크든 위어울프든, 개떡 같은 의뢰인이란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나는 친절한 변호사답게, 혹은 호구 변호사답게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근기법도 한국인에게 맞춰져 있죠. 한국인은 현재 60세가 법으로 정해진 정년이에요. 회사도 그때까지만 직원을 쓰기 마련이죠. 자, 에레쉬키갈, 아니 이영희 씨. 몇 살이시죠?”
엘프 ‘이영희’는 침묵을 지켰다.
인간과 다른 종족은 인간이 갖지 못한 여러가지 특성을 지닌다.
엘프의 경우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 수명, 마법과 같은 특성이 있지만 갖지 못한 면모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문득 옆에서 상담을 구경 중이던 신 대리가 속삭였다.
“와, 나이 든 사람 연령 묻는 변호사님, 매너 없다.”
“요새 그런 게 어딨어. 게다가 엘프에게 나이 묻는 게 무슨 무례야? 오히려 권위의 상징이라고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본인이 한국인이라잖아요. 한국인 기준으로 판단해야죠.”
그런데 엘프 이영희가 불쑥 입을 열었다.
“……626세입니다.”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626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엘프의 푸른 눈이 나를 정시한다.
“제 600살 생일을 맞이하는 해와 달이 만나던 날, 지구로 오는 ‘문’이 열렸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한국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변호사님, 정말 안 되겠습니까? 제 정년을 연장하는 일이?”
엘프가 거짓말만 못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 틀림없다.
어쩌면 엘프는 자신만 거짓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남도 거짓말을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
서양인도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은 있지만, 엘프의 눈은 전혀 다른 빛깔을 갖고 있다.
마치 심해의 검푸른 바다를 보는 듯, 깊다.
거짓말 따위 꿰뚫어 볼 것처럼.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영희 씨.”
결국 나는 내키지 않는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3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은 늘, 한밤중이 되어야 퇴근길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이색적인 의뢰인들이 마구 온 탓에 일단 일찍 퇴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와, 하늘 참 맑네요.”
문을 나서던 신 대리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그래, ‘게이트’를 빼면 말이지.”
나는 하늘을 힐끗 보다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창공은 구름 한 점 없어, 노을빛이 부채살처럼 펼쳐져 있다.
하지만 태양만 있어야 할 하늘에는 새카만 흑점이 엿보인다.
게이트.
26년 전 처음 창공에 나타난 기현상이다.
학자들은 시공간왜곡이 일어난 교차점으로 다른 세계와 지구가 있는 우주를 연결하는 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는 이론은 아니다.
어떤 종교단체는 지옥의 관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과거나 미래로 통하는 문이라 생각하기도 하며, 혹은 천국의 계단이 있을 거라 상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실존한다.
저 게이트에서 떨어져 내린 수많은 ‘이종족’들이다.
다시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는 인간과 다르게 생긴 지성체들.
법률적으로는 인간 아종에 속하는 지성을 갖춘 생물체를 의미한다.
만약 저 게이트가 없었다면, 우리 사무실이 개떡같은 이종족 의뢰인들을 맞이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 대리가 내게 고개를 갸웃거리다 물었다.
“변호사님,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뭐가?”
“이종족은 인간과 수명이 다르잖아요. 이를테면 ‘오크’는 30년이란 말이에요.”
아무래도 근처 길을 걷는 오크를 본 모양이다.
커다란 체구, 녹색 피부, 그리고 송곳니가 멋들어지게 도드라져 있다.
어쩐지 정면에 서면 사람을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외양이다.
한국인 평균 키의 2배쯤 되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녹색 피부의 거구 오크가 우리 쪽을 보더니 이를 드러냈다.
“쿠륵! 뭘 봐! 오크 처음 봐? 불만 있으면 주먹으로 얘기해!”
“아, 아닙니다. 전혀 불만 없습니다. 오해하신 거예요.”
“조심해! 앙! 쿠륵!”
소스라쳐 고개를 숙이다, 오크가 지나가자마자 나는 신 대리에게 화를 냈다.
“괜히 오크 얘기해서 맞아 죽을 뻔했잖아! 신 대리, 오크 자치구에서 폭행치사 당한 사람이 한 해에 몇 명이나 되는 줄 알아?”
“몇 명인데요?”
“한 해 352건이야! 웬만한 밀입국자 범죄보다 훨씬 범죄율이 높다고! 물론 살인이 아니라 모두 과실치사긴 하지만!”
요새는 밀입국자보다 이종족이 더 무섭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웬만한 범죄자도 이종족과 맞부딪치면 목숨을 잃기 쉽다.
반대로 말하면 저 이종족들에게서 인간을 보호하고 있는 기제가 법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오늘만 사는 오크들은 사실 30년보다 더 빨리 죽는 거 같은데. 보통 자기들끼리 싸우다 과실치사 일으키는 게 대다수긴 해서.”
그러자 겁 없는 신 대리가 본인이 궁금했던 바를 기어코 물었다.
“그럼 오크들은 정년이 적용 안 돼요?”
“결국 그걸 묻고 싶었던 거구만? 일단 60세가 된 오크들이 없지. 물론 엘프만 오래 사는 건 아니니까, 특례 규정이 만들어지긴 했어.”
“뭔데요?”
나는 이번 케이스 때문에 더욱 자주보게 된 근로기준법 한시 특례 부칙 조항을 읊었다.
“이종족은 이종족 평균수명과 인간 평균수명을 비교해, 비례적 연령을 적용한다.”
이 조항은 이른바 일몰법이다.
매년 연말까지 법이 적용되는 기한을 정해 놓는다.
기한이 도래하면 다시 국회에서 논의해 기한을 연장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형태로 특례 규정을 만들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든 이 특례규정이 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시법이라는 거네요?”
“그래. 매년 한시적으로 연장되고 있지. 게이트에서 어떤 종족이 또 올지 모르고. 이를테면 ‘드래곤’이라도 오면 어떡해?”
“아직 한 번도 사례 없잖아요. 참, 국회도 별 걸 다 걱정하는군요.”
물론 드래곤은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상상의 동물이다.
하지만 우리 세계로 온 이종족들에 따르면, 본인들의 세계에는 드래곤이 있다고 한다.
수명은 무한이라고 하니 이런 경우에는 연령을 적용하는 게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오지 않았으니 실존한다고 가정해봤자 무의미한 일이지만 말이다.
이 정도 설명했으면 된 것 같은데, 신 대리는 아직도 궁금한지 다시 물어왔다.
“그럼 오크는 절반이니까 25세 정도가 은퇴 연령인 거예요?”
“계산해 본 적은 없지만 대충 그렇겠지.”
“엘프는 어때요? 한 번도 평균수명이 밝혀진 적이 없잖아요.”
바로 이게 진짜 궁금한 부분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궁금하다.
정작 우리 의뢰인인 엘프 이영희 씨는 자신의 수명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실은 어떤 엘프도 본인들의 수명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적이 없다.
“본인들이 밝히지 않지. 거짓말을 못하는 대신, 침묵은 할 수 있으니까.”
신 대리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갸웃거렸다.
“626세는 몇살 쯤 될까요?”
“62세.”
“응? 아니, 평균수명 모른다면서요.”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 조금 나쁜 비유를 들어보기로 했다.
“강아지 평균수명 알아?”
“예? 갑자기 왜?”
“보통 12살 쯤이라고 하지. 하지만 잘 키우면 20세까지 사는 개도 있어. 그런 강아지를 두고 인간과 수명 비교할 때, 1년을 6년 정도로 비교하지. 엘프도 반대 의미에서 마찬가지야.”
엘프는 동물이 아니지만, 인간이 아니란 점에서는 동물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너무 긴 수명이니까 10년을 1년으로 비교하는 거야. 그래서 62세야.”
다행히 신 대리는 그 점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62세라는 대목이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부당하지 않아요? 우리는 엘프 평균수명을 모르잖아요. 다른 이종족과 비교해도.”
“난 입법자가 아니야. 변호사지. 신 대리도 국회비서관이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 직원이라고.”
“잘못된 법은 위헌소송 걸 수도 있지 않아요?”
그때 비로소 나는 걸음을 멈췄다.
“글쎄,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에 혹시 친엘프주의자가 있으면 모를까. 불가능할 거 같은데.”
하지만 신 대리의 말은 일리가 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
소송 중 재판관의 결정에 따라 법률의 위헌성을 헌법재판소에 심사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엘프 정년제도의 불합리성을 다룰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단지 헌법재판소에서도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왜요?”
“엘프가 일하는 거 본 적 있어?”
“아뇨. 엘프가 일을 한다니, 그거야말로 뭔가 상상을 깨는데요.”
사실 나도 직접 본 적은 없다.
“일단 엘프는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아. 한국 기준으로 고작 3천 명 정도 있지.”
“소수네요. 표가 안 되는군요.”
“그래. 그런데 수명은 길고, 체력은 좋고, 약하지만 마법까지 쓸 수 있다고. 주로 신체에 거는 마법이지만.”
하지만 뉴스에서 본 적은 많다.
“그래서 주 120시간 노동이 가능해.”
나와 달리 엘프에게 지금까지 별 관심 없이 살아온 신 대리는 눈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이 되었다.
“컥, 자, 잠깐만요. 몇 시간이요?”
“120시간. 사용자에게는 꿈의 근로시간이지.”
“그거야말로 근기법 위반 아니에요?”
나는 무겁게 대꾸했다.
“아까 수명 비례를 적용하는 특례 기준이 있다고 했잖아. 근로시간도 마찬가지야. 이종족에게는 역시 특례규정이 적용돼.”
“말도 안 돼! 노동자 탄압이잖아요!”
“공무원도 똑같이 굴릴 수 있는데? 인간도 전부 근기법 적용받는 건 아니라고.”
공무원은 근기법, 그러니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주 52시간의 통상 근로시간이 적용되지 않으며, 최저임금도 적용되지 않는다.
단지 공무원법도 정년만은 60세로 정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 수명도 벌써 평균이 80살을 넘본다는데, 정년만 60세라니 묘한 생각이 든다.
어차피 변호사에게는 정년도 없지만.
“게다가 봤잖아. 정년퇴직하기 싫어서 우리에게 의뢰까지 하러 오는 거.”
가볍게 두 손으로 머리를 짚던 신 대리가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뭔가 짠하네요. 차라리 자영업 같은 걸 하면 어때요? 엘프는 미모가 뛰어나고, 부지런하니까 잘할 거 같은데.”
“법률자문이 온 거라면 그렇게 회신해야겠지. 하지만, 에레쉬키갈 씨는, 아니 이영희 씨는 인생을 걸어왔어.”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나는 엘프를 모른다.
직접 본 적도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26년 전, 게이트가 열렸을 때부터 엘프는 내게 일종의 꿈과 같은 존재였다.
정작 변호사가 된 후에 만나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에레쉬키갈, 아니 이영희 씨가 어떤 생각으로 변호사를 찾아왔는지 알 것 같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으로 직장생활을 선택한 거야. 그래서 계속하고 싶은 거라고. 나로선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엘프는 만사에 항상 진심인 존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필 한국인으로 사는 것을 선택한 것까지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말이다.
4
법원도 별로 이해가 안 갔던 모양이다.
“이건 애초에 소송 대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재판장이 앉아있는 높은 자리를 이른바 ‘법대’라고 한다.
영어로는 ‘벤치’라고 하는데, 유래를 따지고 들어가면 영국법원이나 독일법원의 모양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유서깊은 장치다.
재판관이란 무릇 당사자의 위에 서서 만사를 공정하게 듣고 판단해 결정한다는 뜻으로 만든 게 아닐까?
물론 실제로는 그저 판사가 귀족이던 시절의 산물이겠지만, 어쨌든 지금도 판사는 법정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존재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소송은 이종족 차별에 대한 소송입니다. 즉, 근기법 적용의 부당성에 대하여.”
“대체 언제적 멘트를 날리고 있는 겁니까? 재판장 존경할 필요 없고, 이종족 차별은 20년 전 얘기 아닙니까? 게다가 법문에 명시되어 있잖아요. 정년은 60세 이상으로 사업주가 정하면 되고, 이 나이는 특례규정에 따라 인간의 수명과 비례해서 만든다고.”
“그 규정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위헌이란 거죠.”
반대쪽, 사측 대리인 변호사는 비웃지도 않고 하품만 하고 있다.
처음부터 요건도 안 되는 소송을 걸었다는 생각일 것이다.
사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아마 재판장도 똑같은 생각일 텐데, 굳이 기일을 잡아 이렇게 물어오는 것은 순전히 내 의뢰인인 이영희 씨를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엘프를 직접 보는 일은 재판관에게도 꽤 이례적인 경험일 테니 말이다.
나는 그 점에 걸어보기로 했다.
“헌법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헌법 기초강의라도 하려는 겁니까?”
“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종족도 근로자로 인정한다고 근로기준법 특례규정에는 명시되어 있죠. 그렇기 때문에 특례규정을 ‘반대해석’할 때, 이종족도 인간이라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재판관은 순순히 넘어가주지 않았다.
“그거야 꼭 근기법이 아니라도 다른 법도 그렇지 않습니까. 세법, 저작권법, 부동산등기법, 기타 등등.”
아직도 헌법에는 이종족에 대한 조항이 없다.
애초에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가 필요한데, 국회가 이종족을 위해 개헌을 시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이종족 권익보호단체와 국가의 필요성 때문에 이종족은 인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인정받을까?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법문을 확대해석하는 식으로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헌법에 엘프가 인간이라는 규정은 없지만, 엘프도 인간이라고 본 다른 법을 통해 인간에 대해 정해놓은 헌법규정을 엘프에게 적용하는 식이다.
“때문에 엘프도 인간으로서 헌법을 적용받습니다. 그러니까 평등권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례적 평등이 이뤄지고 있잖아요. 인간의 10년을 엘프의 1년으로 쳐주는 식으로.”
“그게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나는 대리인 석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먼저 연령이 문제입니다. 민법은 태어난 날로부터 사람의 나이를 기산합니다.”
“아니, 지금 근기법을 다루는 소송에서, 이게 무슨?”
“그런데 엘프는, 아니 이종족들은 언제 태어났죠? 출생연도를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까?”
원래 법원에서 소송대리인은 일어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일이고, 보통 일어나면 재판관이 앉으라고 말하거나 퇴정을 명령한다.
그러나 재판관의 시선은 온통 내 옆에 앉아 있는 엘프 이영희 씨에게 쏠려 있다.
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나는 엘프의 미모에 재판관이 갖는 관심을 동정심으로 바꾸기 위해 열띤 변론을 토해냈다.
“우리는 아무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왜? 다른 세상에서 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주민등록법에 따라 모두 등록된 게 아닙니까.”
“임의적입니다. 이 등록일자 기준으로 출생일자가 바뀌어야 법리적으로 맞습니다.”
나는 이영희 씨가 이름에 대해 내게 이야기했던 논리를 그대로 재판관에게 돌려 주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없다가 출생을 통해 세상에 나타나는 존재들이니까요. 그래서 출생일을 기산점으로 바꾸지 않습니까? 엘프도, 이종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이트가 하늘에 열린 그 날! 26년 전을 기산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재판관은 한 눈은 팔면서도 완강했다.
“소송 사유가 그것 뿐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다음으로 10년을 1년으로 적용하는 규정 자체도 문제입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엘프의 수명이 인간의 10배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엘프의 수명을 모릅니다.”
“그거야 엘프 중 누구도 말하지 않았으니.”
여기에 논리의 맹점이 있다.
“틀렸습니다! 재판장님, 재판장님의 수명을 아십니까?”
“뭐, 뭐라구요?”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압니까? 게다가 이계에 대한 학자들의 탐문연구에 따르면, 21세기 지구보다 훨씬 더 가혹한 생존환경이라고 합니다.”
나는 내 의뢰인, 이영희 씨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러니까 엘프들은 평균수명을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르니까요!”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추정에 불과하다.
애초에 이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계로 가본 적이 없다.
어디까지나 이계에서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이계종족’들을 인터뷰해서 조사한 결과를 논문으로 썼을 뿐이다.
비록 엘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만, 불리한 일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은 지성이 있는 종족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재판관은 수명을 알 수 없다는 논리에는 조금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나를 침묵을 지키며 빤히 보던 재판관이 불쑥 입을 다시 열었다.
“마지막은?”
“예? 이게 소송청구 사유인데요?”
“보통 이럴 때는 세 가지를 들지 않습니까?”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사유가 부족하군요. 일단 다음 기일까지 소송 사유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할 수 없습니다. 다음 기일까지 가져오세요.”
마지막 순간, 여전히 비웃으며 나가는 사측 대리인이 너무 얄미웠다.
5
재판은 보통 법원이 마치기 전에는 끝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공무원의 업무 종료시간, 6시에는 마친다는 것이다.
특별한 심문이라도 잡힌다면 예외가 있기 마련이지만, 오늘처럼 그저 당사자를 한 번 보려고 재판장이 잡은 기일은 예외가 아니다.
노을이 드리워진 길을 엘프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나는 변명하듯 이영희 씨에게 답했다.
“뭔가 하나가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죄송합니다. 각하당할 거 같아요.”
“저는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말씀해 주셨어요. 이 정도로 논리를 세워 소송에 임해준 변호사도 변호사님이 처음입니다.”
“예?”
놀라 돌아본 순간, 이영희 씨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미 한국 나이로 치면 62세입니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연장을 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봤어요. 회사에서도 많이 배려해 주셨고.”
엘프는 감정 변화가 거의 없다고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눈부신 미모를 지니고 있지만, 표정 변화가 별로 없어 연기자와 같은 일을 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영희 씨는 정말 한국에 잘 적응한 모양이다.
어쩐지 슬퍼 보이는 표정까지 내가 눈치챌 수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결국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니 나이 많은 사람부터 자르네요. 전 아직도 수백 년은 더 일할 수 있는데.”
이렇게 일을 하고 싶어하는 종족은 이민이 가능하다면 더욱 늘려야 한다.
주 120시간 근로도 가능하지 않는가?
모든 기업가가 꿈꾸는 근로자가 아닐 수 없다.
나름 고용주의 한 명으로서 즐거운 상상을 하다, 나는 불쑥 물었다.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그저 호기심일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엘프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
이영희 씨는 빤히 나른 보다 되물었다.
“그게 궁금하신가요?”
“엘프 의뢰인은 저도 처음이거든요. 이종족 의뢰인은 자주 오긴 하지만.”
“우리도 인간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법원에서는.”
예리한 논리로 나를 찌르던 이영희 씨는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농담이에요. 엄연히 인간과 다른 종족이긴 하죠. 음, 글쎄요? 그래도 지성체가 사는 곳은 다 똑같아요.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서로 자원을 두고 다투고. 마법이 있다는 건 조금 다르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듣다, 정말 던지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 온 걸 후회하세요?”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 질문에 침묵하거나 혹은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침묵이 곧 답이 될 수 있다.
이영희는 답을 피하지 않았다.
“태어난 걸 후회하시나요?”
“예? 어, 그건.”
“후회할 수 없죠. 태어나는 건 자기 의지로 태어나는 게 아니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이영희는 처음 보았을 때처럼, 심해와 같은 푸른 눈으로 나를 정시했다.
“의지로 온 게 아니니까. 후회할 수도 없죠. 단지 최선을 다해 살 뿐이죠.”
한국인으로 사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지극히 드물다는 통계가 있다.
만약 국적을 서구의 선진국으로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바꾸겠다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계에서 와서 오히려 한국인이 되겠다고 발버둥치는 지성체들도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지금은 질문을 던진 게 오히려 부끄럽다.
낯이 새빨개지는 기분이라, 고개를 푹 숙였을 찰나였다.
너무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혹은 피가 머리 끝까지 몰려서인지, 이상하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느낌이다.
나는 고개를 황급히 치켜 세웠다.
“잠깐, 오던 날 해와 달이 만나는 날이라고 하셨죠.”
“예? 아, 맞아요. 제 생일이에요.”
“아니, 그게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그런 거예요?”
그러자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엘프 이영희가 답했다.
“지구에서는 신기하겠군요. 맞아요. 거긴 이곳과 해와 달의 운행이 다르니까요.”
해와 달의 운행이 다르다.
이계니까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연령’을 잴 때는 그렇지 않다.
“1년이 며칠이죠?”
“예?”
“아니, 절대시간으로 말해주세요. 애초에 1년이라는 건 태양을 지구가 도는 시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지구의 1년과 금성의 1년, 화성의 1년은 모두 달라요.”
이영희가 눈을 크게 뜬 순간, 나는 내가 찾아낸 법의 빈틈을 외쳤다.
“당연히 근기법, 아니 정확히는 고령자고용법은 지구의 1년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요. 그런데 만약 당신들의 1년이 우리의 1년과 다르다면?”
이영희는 눈을 깜박이다 내게 되물었다.
“그러면 뭐가 달라지죠?”
어쩐지 6백년을 산 엘프보다 현명해진 느낌에 기분이 좋아져, 나는 활짝 웃었다.
“정년에 도달하는 시간이 달라지죠.”
위헌심판을 걸 이유가 된다는 얘기다.
6
애석하게도 내게 감탄해준 사람은 신 대리 뿐이었다.
“이걸 26년 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단 말이에요?”
“왜냐하면 게이트에서 떨어져 내린 이종족들은 모두 우리와 말이 통했거든. 그래서 1년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생각을 못한 거야.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뭉갰든가.”
“관료적 자세가 문제군요.”
아주 간단히 정답을 찾은 신 대리가 손뼉을 쳤다.
“그럼, 이제 이영희 씨는 계속 일할 수 있겠네요?”
나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허가하는 결정문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단순히 재판관이 이영희 씨에게 반했기 때문은 아니다.
모든 판사는 이상하게 원칙적이라 법리에 어긋나는 일을 지극히 기피한다.
법대로 처분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로 사안을 보낸 게 분명하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똑같이 볼 것이다.
“그래, 앞으로 360년 동안 더 일할 수 있겠지.”
이계가 그렇게 느린 세계일 줄은 몰랐지만.
덕분에 학자들은 엘프들이 침묵하고 있던, 혹은 인식하지 못하던 이계의 비밀 하나를 알았다고 언론지상에서 떠들썩하다.
어쩌면 이번 재판이 주목받는 최대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터뷰 요청 이메일이 가득한 이메일 목록을 보다, 신 대리에게 물었다.
“승소란, 과연 좋은 걸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예요?”
“아니, 그냥.”
그중, 이영희 씨의 감사 이메일에 내 시선이 멎었다.
“정말 한국인이라면, 한국인답게 파이어 족을 꿈꾸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말이지.”
아무래도 내 의뢰인은 아직 완전히 한국인이 되지는 못한 모양이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