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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Aug 22. 2018

일상의 이상화, 이상의 일상화

사적인 영화일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사적인 영화일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로맨스 영화를 봐왔다. 특히 '남녀 관계'를 정의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익숙하다 못해 자칫 지루하기까지 한 로맨틱 코미디의 단골 소재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역시 모두가 알고 있는 결말을 가진 그 뻔하고도 지루한 소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관계에 대한 논쟁이 현재까지도, 그리고 미래에도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고 저마다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다루느냐가 관건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이 복잡하고 애매하고 개인적이며, 모호하기도 하고 주관적이기까지 한 관계를 꽤 공감하기 쉬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


애인의 친구는 어딘가 애매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존재이다.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암묵적 경계선을 그리듯 어딘가 조심스럽다. '여사친'과 '남사친'에 대한 염려와 경계를 예민함과 민간함의 증폭으로 제쳐두는 이는 드물다. 


     애인과는 구별되는 이성 혹은 동성 친구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신조어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자. '여사친 구별을 통해 고백하는 방법' ' 남사친이 남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등의 결과가 눈에 띈다. 그 정의마저 불완전한, 그래서 불안정적으로 친구와 연인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매력적인 이성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또는 힘들다"의 전제에서 시작된다. 마치 '해리'의 대사처럼 말이다. 

     사랑과 섹스에 대한 본인만의 확고한 주관이 있는 이 남자는 "매력적인 이성과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샐리'에게 설파한다. 해리에게 샐리는 애인의 난생처음 보는 친구이다. 해리의 대사는 우리의 염려와 경계를 담고 있기에 별 논리 없이도 꽤나 설득적이다. 
그 대상이 애인의 친구라는 점에 일차적으로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도덕적 심판대 위에 올려놓겠지만, 매력적인 이성과 친구가 될 수 있다니? 그건 너무 어렵다. 


     반면 샐리는 해리와 다르다. 샐리 입장에서 해리는 파렴치하고 위험한 남자이다. 

     첫 만남부터 온통 '다름' 투성이었던 이들은 결국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한 채 헤어진다. 그러나 이 작은 인연을 달리는 차창 밖의 이름 모를 풍경처럼 그냥 지나치게 내버려두는 것은 로맨스 영화의 공식이 아니다. 그들의 연결고리는 꽤 지독했다. 어쩌다 우연히 함께 뉴욕까지 오게 된 애인의 친구, 친구의 애인은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적절한 타이밍에 다시 두 번이나 재회한다. 첫 5년 후에는 서로 다른 사람과 열렬한 사랑을 하는 상태에서, 다음 5년 후에는 이전의 상대로부터 실연의 아픔을 겪은 상태에서 말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을 공유하며 이들은 친구가 된다. 그렇지만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알고 있다. 친구라 정의한 이 관계는 사소한 감정의 침입에도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름으로 보이는 견해와 착각의 경계는 이 둘의 관계처럼 참 얄팍하다. 정의하기에 모호하고 애매하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온전히, 해리와 샐리


솔직하고 대담한 해리와 샐리는 사랑에 대해서도 꽤나 명확한 주관을 갖고 있지만, 정작 이 둘은 각자의 사랑에 있어서는 솔직하지 못했다. 잊지 못했던 옛 연인에 대한 마음도 상처도 감춘 채 살아가던 둘은, 친구가 되면서 그 아픔을 공유하고 보듬어 간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겹겹이 쌓아둔 둘의 관계처럼 겹겹이 쌓여있던 두 주인공 나름의 감정이 한 겹, 한 겹 벗겨지는 과정은 위화감 없이 조화롭고 자연스러웠다. 전혀 급하지 않았다. 결코 평면적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래 기억된다. 적절한 현실감을 유지하면서 재치 있고 아름답게 말이다. 로맨스의 법칙을 결코 놓치지 않으면서 또 그것이 너무 과해 현실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은근한 미소와 함께 고개가 끄덕여진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린 서로 싫어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세 번째 만났을 때 우린 친구가 되었다. 
그다음, 우린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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