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드는 비야 데 레이바, 동네 친구가 생기다!
지젤과 라우라의 그런 삶
이걸 케이팝 열기의 연장선으로 이해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단지 난생처음 보는 동양인이 신기한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걸까. 보고타에서부터 시작된 거리 사진 요청은 비야 데 레이바로 넘어오니 한층 더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 아닌 발전이 되어있었다.
특히 어린 여자아이가 포함된 가족들의 사진 부탁은 엄청났다. 그러다 ‘발렌티나’를 만났다. 발렌티나는 엄마, 여동생과 함께 보고타에서 이곳으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정도의 간단한 신상 정보만을 말할 수 있고 물을 수 있는 우리의 에스빠뇰 실력에 발렌티나는 통역사를 자처했다.
16살의 발렌티나는 빛이 났다. 발렌티나는 우리가 콜롬비아를, 또 콜롬비아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우리가 콜롬비아를 여행하며 겪게 될 많은 일들, 만나게 될 많은 사람이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자신의 나라를 좋아하게 되길 바란다 말했다.
보고타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우리를 만난 일은 정말 소중한 기억이라는 이 소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광장 끝으로 사라져 가는 발렌티나에게 손을 흔들며 아쉬운 인사를 마치니, 휴대전화 화면에 짤막한 메시지가 비쳤다. 광장에서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에 지젤이 보낸 답장이었다. 막내 여동생의 생일 파티가 아직 끝나지 않아 자리가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지젤’과 ‘라우라’ 그리고 사랑스러운 퍼그 ‘싸미’는 도착한 날 저녁, 우리가 비야 데 레이바에서 만난 첫 친구들이다. 내일 함께 저녁을 먹자 약속하며 헤어졌던 것이 바로 어제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비야 데 레이바에서의 첫날, 우리는 호스텔에서 빌려 나온 우산에 세 몸을 잔뜩 구겨 넣고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지난밤 보고타에서 새벽 5시까지 이어진 새해 파티의 여파로 속이 좋지 않았다. 숙취와 갈증, 배고픔과 졸음까지. 포근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고 싶은 간절함을 외면한 채 나선 거리이건만, 좁은 돌길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로 가득하고 눈에 보이는 건 죄다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값비싼 식당 뿐이라니.
이 동네 왜 이러냐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기 직전, 흰 봉투를 야무지게 챙겨 든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그 가게’를 발견했다. 후라이드 치킨을 판매하는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자고로 맛있는 식당이라면 한 가지 음식만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우리는, 후라이드 치킨만을 판매하는 이 가게가 마음에 쏙 들었다. 문밖으로 난 줄에 자연스레 뒤로 가 자리를 잡았다.
“빈자리 생기면 같이 앉을래요? 한 테이블에 전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요? 좋아요, 고마워요.”
노릇노릇한 후라이드 치킨과 바삭한 감자튀김, 그리고 이 가게의 핵심 메뉴라고 할 수 있는 달콤한 유카튀김까지. 능숙하게 음식을 주문하는 이들은 근처 도시 ‘툰하’에서 온 자매이다. 닮지 않은 외모에 깜짝 놀라니 다들 자신들을 커플로 착각한다며 개구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요리를 공부한 지젤은 이곳에서 작은 채식주의 샌드위치 카페를 운영하고, 보고타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라우라는 방학을 맞아 언니의 가게에서 자신이 만든 소품과 옷을 판매하고 있었다. 휴일이나 방학 때면 자주 이곳에 들러 지젤과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얘 어제 완전히 취해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
“기억은 나?”
“아니 전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광장에서 미친 것처럼 춤추더니 지나가는 경찰들 붙잡고 울고불고.”
“그만 그만!”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각자 어제 즐긴 파티를 회상하며 지금까지도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고 있음을 고백했다. 술이 덜 깨 오늘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우리에게 둘은 자신들 역시 이제서야 첫 식사를 하러 나왔다며 장난스레 배를 움켜쥐어 보였다. 지젤은 전날 새벽까지 마신 맥주 캔을 치우지 못해 가게 문도 열지 못했다는데, 숙취의 여파로 툭하면 결석을 날리던 우리와 닮아 괜스레 웃음이 났다.
어둠이 내려올수록 빗줄기는 거세졌다. 다시 우산에 몸을 구겨 넣고 지젤과 라우라의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에 채이는 맥주 캔을 하나씩 주워들며 2층으로 우리를 안내한 지젤은,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따뜻한 차를 내오겠다는 말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자그마한 창틀에 놓인 색색의 돌과 테이블 두 개, 라우라가 직접 만든 옷과 인형들이 놓인 선반, 그리고 그 뒤로는 자매가 생활하는 공간이 흰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낮은 천장과 은은한 조명에 지젤표 아구아 델 빠넬라까지. 콜롬비아에서 쌀쌀한 날씨에 즐겨 마신다는 따뜻하고 달콤한 차는 으슬으슬한 몸을 녹이는 데 제격이었다.
우리가 듣는 음악, 우리가 즐겨 입는 옷, 우리가 보는 드라마, 우리의 언어 등 그들은 무려 30시간을 날아온 우리의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들의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그들이 듣는 음악, 그들이 즐겨 입는 옷, 그들이 보는 드라마, 그들의 언어까지.
자신의 옷차림을 ‘보편적이지 않다’고 정의한 라우라는 독특한 옷차림 때문에 보고타에서 곤혹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했다. 피어싱이며 머리 모양이며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한낮에 마약 검사를 하거나 가방을 뒤지는 경찰도 있었다고 한다.
“다 사기꾼들이야. 눈에 불을 켜고 뒷돈을 노린다니까. 벌금을 내야 한다고 겁준 다음에 자기들한테 돈을 주면 용서해 준다고 해. 그게 사기꾼이지 뭐야. 비리 경찰들.”
남이사, 여기를 뚫었든 저기를 뚫었든. 문신과 피어싱, 눈에 띄는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 나아가 ‘다름’에 대한 기피 현상이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은 문화에서 살아온 우리는 라우라의 말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에스빠뇰로 말하는 이들을, 레게톤을 듣는 이들을, 하나 같이 다 다른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니는 이들을 자유와 낭만의 표상으로 세웠다.
들어가 보지 못해서 환상적이고 들여다보지 못해서 이상적인 삶. 고작 며칠 만에 우리는 이들의 삶을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특별한 무언가로 제멋대로 규정했다.
결국에는 모두 같은 삶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