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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피 Aug 25. 2018

사람과 술을 좋아한다면 광장으로

스며드는 비야 데레이바, 우리의 아지트 


광장에서의 기억으로 마무리되는 매일의 연속



크리스마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연말을 기념하는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연초를 맞이하는 기쁨이 가득한 골목에는 반짝이는 장식이 가득했다. 어둠이 내려올 때면 광장 근처로 예술가들이 모여든다.


우리를 사로잡은 두 남자 역시 그들 중 한 무리였다.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기타를 치던 남자 하나와 아코디언을 부는 남자 하나. 멋들어진 선글라스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과일이 잔뜩 그려진 귀여운 비닐 가방에 연주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챙겨온 것이 어딘가 정이 갔다.


얼마나 오래 이 담벼락에 기대앉아 음악을 들은 걸까.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의 전주가 시작될 때마다 ‘아 이번에도 좋겠구나, 자리를 뜰 수 없겠구나’를 반복하며 한동안 자리 지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완전히 진 저녁이었다. 고지대이자 넓은 평지인 비야 데 레이바의 광장은 별을 보는 공간이라고 한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사람들은 하늘과 가까운 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9시, 10시를 지나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광장은 연인과 친구뿐 아니라,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들로 가득했다. 하늘 위로 던졌다 양손으로 받아내는 자그마한 장난감을 판매하는 상인들과 그 주변을 둘러싼 꼬마 아이들. 대성당 앞 계단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는 이들과 담벼락에 기대앉아 다정스레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로 광장은 활기가 넘쳤다.



펍에서보다 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비야 데 레이바에서 우리는 매일 저녁 광장으로 나가 맥주를 마셨다. 성당 앞 계단에 앉아 뽀께르를 한 캔 두 캔 홀짝이며 고요한 수다를 떨다, 밀려 들어오는 사진 요청을 자연스레 응대하고는 다시, 한 캔 두 캔 홀짝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뽀께르를 사기 위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가게에 다시 들어갔다. 얼굴을 익힌 주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 화장실을 사용하게 해 주었고 우리의 음주는 좀 더 과감해졌다.


피곤함도 걱정도 없이 해맑게 웃으며 사람들 틈을 누비는 아이들 중, 동생을 데리고 몇 번이고 우리 근처를 맴돌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엄마 다리 사이로 몸을 숨기더니, 한 번은 작은 목소리로 “올라!(안녕!)”라고 외치고 도망가는 거다. 그게 귀여워 도망가는 뒷모습을 좇으니 다시 다가와 인사를 한다.


그렇게 얼마간 안녕, 잘 가, 안녕, 잘 가의 인사를 주고받았다. 수줍어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제는 광장의 누구보다도 더 크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꼬마와의 안녕, 잘 가, 안녕, 잘 가는 우리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뒤돌아 가는 뒷모습에 대고도 계속해서 “챠오!(잘가!)”를 외치는 게 눈에 밟혀 계속해서 등을 돌려 손을 흔들어 주었다. 


비야 데 레이바에 머물던 내내, 기절한 듯 잠에 빠진 첫날 밤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광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해야만 하루가 무사히 마무리될 거라 믿었는지 자연스레 밤이 되면 광장으로 나섰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끝없는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지만, 반짝이는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어둠을 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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