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ndaleena Aug 27. 2018

가이드를 자처한 낯선 두 남자

스며드는 비야 데 레이바, 누구보다 든든한 동네 친구들


호세와 딜런의 저런 삶



“손!” 

“아니, 마노라고 해야지!”


틀린 표현에도, 다소 버벅거리는 말에도 곁을 떠나지 않던 강아지를 앞에 두고 또마르다, 떼네르다 옥신각신하던 중이었다. 멀찌감치 계단에서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청년 둘과 눈이 마주쳤다.

     

“떼네르 맞아.”


시종일관 뚱한 표정이다가도 한 번 웃음이 터지면 도날드덕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어딘가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 ‘호세’와, 까무잡잡한 피부에 개성 넘치는 턱수염이 인상적인 ‘딜런’은 서로를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르는 세 살 터울의 사촌 형제였다. 보고타에서 왔다는 이들은 대여섯 살 어린 시절부터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휴가차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이름은 무엇인지, 어느 나라에서 온 건지, 나이는 몇 살인지. 또 콜롬비아엔 어떻게 왔으며 다음엔 어디로 갈 건지.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많았던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짧은 만남으로 끝내기엔 아쉬웠다.


“우리 내일 아침 같이 먹을래?”

1분도 채 되지 않아 그러자는 답장이 왔다.


지난밤의 호기는 다 어디로 간 건지, 성당 앞 계단에 앉아 호세와 딜런을 기다리던 우리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만나면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지, 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머릿속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사전을 뒤적이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어딘가 어색한 포옹을 나누고는 근처에 좋은 식당이 있다는 그들을 따라나섰다. 


과일이 잔뜩 들어간 샐러드를 주문하는 호세를 힐끔 보며, 딜런은 자신의 선택이 나을 거라 호언장담했다. 딜런을 따라 주문한 음식은 ‘코스티야 데 깔도’. 한국의 갈비탕과 비슷한 익숙한 맛에 어제도 그제도 아침으로 먹은 것이지만, 어쩐지 비교 불가한 맛이었다. 어떻게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인지, 딜런이 먹는 법을 곁눈질로 보며 그를 따라 한 그릇씩 뚝딱 비워냈다.    


“오후 세 시에 산힐로 간댔지? 이제 뭐 할 거야?”

“시내 구경? 사실, 별 계획 없어.”

“그럼 우리랑 폭포 보러 갈래?”

“바모스!(가자!)”


곧바로 식당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며칠 새 익숙해진 마을을 벗어나 돌길을 지나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옥수수밭과 감자밭이 펼쳐지고 이름 모를 꽃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여전히 짤막한 문장이었지만 대화는 탁구공을 주고받듯 랠리를 이어갔다. 보고타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어딘지, 어떤 음식을 즐겨 먹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하드락과 브릿팝, 좋아하는 음악은 달랐지만, 아레빠는 없어서 못 먹는 것이 음식 취향은 꼭 닮은 우리였다. 콜롬비아에서는 보통 서른 살 전에 결혼하는 편이라며 결혼을 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럼 너네는 학생이야?”

“응, 우리 셋은 대학생이야. 다 같은 학교 다녀. 너네는?”


호세는 보고타에서 스케이트보드 가게를 운영하고 딜런은 인테리어에 관한 일을 한다고 했다.


“보드 가게를 한다고? 그럼 네가 사장님이야?”

“그렇지, 근데 사실 나 보드 탈 줄 몰라! 그냥 보드가 좋고 사람들한테 알려주는 것이 좋아서 하는 거야.”


이상하고 어색했다. 대학생이 아닌 20대. 우리에게 ‘같은 나이’란 대개 비슷한 취향과 고민을 가진, 비슷한 길을 걷는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어찌 된 일인지 누구 하나 같은 길에 서 있지 않다. 대학에 가 공부를 하기도 하고, 가게를 운영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일하며 취미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것이 특이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몇 학년이냐는, 어떤 대학교에 다니냐는 질문보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이 먼저인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김치볶음밥뿐이고 보드에는 관심도 없지만, 샌드위치 카페와 보드 가게에 대한 터무니 없는 열망이 비집고 나왔다. 얼마를 버느냐보다 어떻게 버느냐가,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어떤 회사에 다니느냐가 아닌 어떤 일을 하느냐가 무척 중요해진 우리는 요 며칠간 새로운 친구들과 부딪히며 마음속 벽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간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이런 삶, 저런 삶에 대한 의문과 가능성을 받아들이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통닭이 이어준 여행지의 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