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말대로 메데인, 아직은 어려운 페소로 돈 계산
그건 너무 큰돈이야 받을 수 없어
‘밤 버스’를 타고 칼리로 갈 예정이었던 우리는 어딘가 태평했다. 며칠 전 터미널에 들러 버스 가격과 시간표를 미리 알아봐 둔 덕에 버스 시간에 맞춰 호스텔을 떠나기만 하면 될 터였다. 메데인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정신없이, 서둘러 보낼 이유가 없었다.
“이제 어디로 간다고 했지?”
“칼리!”
“버스 표는 산 거지?”
“아니 몇 시에 출발할지 몰라서 안 샀어. 이제 가서 사야지.”
냉장고에 남겨뒀던 맥주와 닭봉을 남김없이 해치우고 가방에 방수 커버를 씌우는 것도 잊지 않았으니 나름 꼼꼼하고 야무지게 떠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소파에 누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던 우리에게 후안은 조심스레 걱정을 내비쳤다.
“아직 예매 안 했다고? 오늘 연휴 마지막 날이라 자리 없을지도 몰라. 혹시 모르니까 좀 일찍 나가봐.”
종교적인 이유에서라고 했나, 기념일이라고 했나. 길었던 휴일이 끝나고 각자의 일터로,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많아 남아있는 표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후안의 말에 덜컥 불안해져 급히 떠날 채비를 했다. 그나저나 호스텔 숙박비를 치러야 하는데 후안은 뭐가 그리 바쁜지 돈을 달라는 말도 없다.
“후안! 우리 얼마 내야 하는 거지?”
“12만 페소야. 지금 줄 거야?”
“당연하지!”
숙박비로 나갈 돈을 따로 모아둔 봉투가 하나 있었다. 콜롬비아에서 머물게 될 약 한 달간 사용할 돈을 한꺼번에 모아둔 꽤 두툼한 봉투였다. 주섬주섬 지폐를 꺼내 한 장 한 장 세어 내밀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너무 큰돈이라는 게 이유였다.
콜롬비아의 화폐 단위에 아직 익숙해지지 못했던 탓에 그렇게 꼼꼼하게 세었음에도 12만 페소의 무려 10배가 넘는 돈을 내밀었던 것이다. 후안은 이 상황이 재미있기도 당황스럽기도 걱정스럽기도 했는지 우리의 손을 붙잡고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나하나 늘어놓기 시작했다.
“돈 그렇게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리고 돈 봉투 아무데서나 꺼내는 거 아니야.”
“원래는 가방 속에 숨기고 다녀. 여기에서는 괜찮지 않아…?”
“그래도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해. 그리고 아이고, 돈 낼 때 꼭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내야 해!”
마지막까지 그는 세심하게 우리를 챙겼다. 버스 표가 없으면 돌아오라며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괜히 엄마처럼, 그리고 아빠처럼 기대고 싶은 사람이다. 오래 본 사이처럼 포근하고 편안하다.
“올라, 치카쓰!”
매일 아침마다 우리를 기분 좋게 하던 그의 밝고 환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멀스멀 차오르던 눈물을 감추느라 애써 미간을 찌푸려 보이던 택시 안. 벌써부터 그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