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한낮의 발리 여행기
서울의 8월은 축축하고 눅눅하다. 지긋지긋한 습도에 마치 어항 속을 산책하는 금붕어가 된 기분이 든다. 푹푹 찌고 쩍쩍 늘어지는 서울의 날씨에 완전히 속수무책이었다. 청량한 동네로의 피신이 간절했다. 그런데 웬걸 인도네시아에 간다니. 무지 덥고 습하겠구나 싶었다.
덥잖아!
분명 더울 거야!
습해서 숨이 턱 막힐걸!
놀랍게도 8월의 발리는 그다지 덥지도 습하지도 않았다. 흔히 4월부터 10월까지는 발리의 건기로 여행 성수기이다. 나만 몰랐던 사실. 낮에는 햇볕과 바람이 조화를 이뤄 걸어 다니기에 무리가 없고 새벽녘에는 조금 쌀쌀한 감도 없지 않다. 우리에게는 적당히 시원하고 선선한 환상적이었던 발리의 여름 날씨에 감기 걸리는 현지인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신호를 기다리며 정차한 오토바이 위 가죽점퍼를 갖춰 입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체크 남방을 입은 여자도 눈에 띄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여름에 긴팔 긴 바지라니. 바람이 숭숭 통하는 끈 원피스 하나 달랑 입고 돌아다니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추워서 그래요. 일교차도 심하고, 바람도 불고."
"춥다고요?"
엄마는 슬쩍 가방에서 카디건을 꺼내 곁에 둔다. 해 질 무렵이 되면 혹시 춥지는 않은지 물어볼 것이 분명하다.
볕 좋고 바람 좋은 발리에서는 유독 하늘을 올려다보던 때가 많았다. 걸어가다 멈추고 걸어가다 멈추고,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고개만 살짝 들면 파란 하늘과 알록달록 예쁜 빛깔의 꽃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발리의 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나무가 하나 있다. 도로에도 거리에도 어디에나 있는 꽃나무이다. 깜보자라는 이름을 가졌다. 하양, 노랑, 분홍, 조금 진한 분홍색도 다양하다. 나뭇가지의 색이 진하지 않고 곁으로 초록빛 잎도 열려 멀리서 보면 마치 예쁘게 다듬어 놓은 조화 같기도 하다.
"저 꽃 이름이 뭐였지? 인도네시아어로 뭐였더라..."
"깜보자."
"맞다! 자꾸 까먹는다. 적어 놔야겠어."
엄마가 꽃을 좋아했던가. 생각해 보니 거실의 작은 화단을 가꾸는 것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큰 화분, 작은 화분, 큰 식물, 작은 식물. 요즘은 다육이가 부쩍 보였다. 노란색 리본을 단정하게 두른 선인장 화분과 얼마 전에 옮겨 심었다는 알로에를 기르는 데 한창인 것 같기도 했다. 바싹 말라 검붉은 색으로 변해버린 장미 다발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오랫동안 부엌 한켠을 지키고 있다. 잘 말려 놓은 시래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장미이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깜보자에 단단히 빠졌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도 거리를 걷다가도 문득문득 깜보자 이야기를 했다. 한국 이름은 천리향이라던데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이라도 이 꽃나무를 집에 들여놓을 것처럼 참 좋아했다. 엄마 덕에 내 사진첩에도 노랑, 분홍 깜보자가 가득 폈다. 꽃나무 아래 선 엄마의 모습은 덤이었다.
"엄마 이것 좀 봐봐."
"안 예쁘게 나왔다. 입술이라도 바르고 찍을걸!"
"괜찮아 꽃이 예쁘니까 됐어."
나를 힐끔 째려보고는 앞장서 걷는 엄마를 뒤따라 가 냉큼 팔짱을 꼈다.
엄마의 사진첩에는 내 사진이 한가득이다. 이것도 예쁘다, 저것도 예쁘다. 여기에 서 봐라, 저기에 서 봐라.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슬슬 고단해진 나는 인상을 써가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렌즈를 응시한다. 엄마는 못났다고 타박하면서도 그런 나를 찍기 바빴다.
잠든 엄마를 옆에 두고 오늘 하루 찍은 사진을 정리하는 것은 발리에서의 내 마지막 일과였다. 앨범 속에 담긴 엄마를 보니 씩 웃음이 나왔다. 수많은 사진 중 단 몇 장뿐이었지만 그 속에서 만난 엄마는 조금 낯설고 새롭고, 많이 반가웠다. 엄마도 그럴까?
내일은 투정 부리지 말아야지. 예쁘게 웃으며 엄마의 카메라 앞에 서야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지. 부드럽고 상냥한 말씨를 흉내 내야지. 깜보자 나무 아래에 선 그녀의 모습을 좀 더 분주히 담아내야겠다는 작은 바람도 빼먹지 않았다. 소소하지만 단단한 나만의 다짐을 되새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