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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Dec 22. 2022

드러내는 제자도

2015.10.14


신학 입문서 특히 조직신학 입문서를 펴면 처음 등장하는 개념이 "계시"입니다. 풀어 말하면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의미인데, 기독교는 세상과 성서와 인간과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가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하셨듯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또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럼으로서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예수는 삶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지향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는 논쟁과 설교와 비유와 행동을 통하여, 세계의 어둠과 빛, 허무와 가능성, 그리고 그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계시의 총체성입니다.


입문서의 마지막은 보통, 교회와 교인의 삶에 대하여 말하는데, 이를 제자도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제자도는 예수를 따르는 것,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스승인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신학의 시작과 끝, 신앙과 시작과 끝, 그리고 성서의 시작과 끝에는 이 둘이있습니다. 세계를 만듦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 그리고 그 분을 드러내신 예수, 그분을 따르며 그분을 드러내는 이들의 역사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늘 이 두 매듭 사이에 걸린 줄 위에서 춤을 춥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자도는 무엇보다 드러내는 제자도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예수가 그러셨듯 이 세계의 악의 정체를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는 비유와 말씀으로 기존의 통념들을 전복시킵니다. 바울은 "보이지 않는 정사와 권세에게 피흘릴 정도로 싸울 것"을 주문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눈앞에 보이는 악, 이를테면 불의한 정부의 만행이나 질서의 혼란이 아니라, 그 현상들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꿰뚫어보고 드러내고 고발해야 합니다. 불의한 제도, 정서, 사람들이 당연시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당연하지 않은 것 (이를테면 성소수자 혐오) 이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둘째로 그 속에 숨겨진 가능성들을 드러내야 합니다. 세상의 불의 앞에서 소리치고 저항하는 이들,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 버티는 이들, 고발하는 이들 속에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가능성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가 비유와 논쟁과 행동으로 보이셨듯이 좋은 것, 하나님의 나라를 그려보여야 합니다. 그것을 대안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표현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독교인은 그것이 이미 우리 사이에 왔음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은 그저 꿈꾸고 상상하고 실행함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 자신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 무엇보다 나 자신, 어떤 정체성도 경계도 소용없이 인간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평등하고 동시에 하나임을, 경계지을 수 없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나는 나임으로서 온전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취업걱정에 시달리는 청년도, 여성혐오에 시달리는 이들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도, 남다른 성적 정체성으로 타인에게 고통받는 이들도, 타국에 와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도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것을 원함을, 그 수 만큼이나 다양한 빛깔의 아름다움이 "보기 좋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이 기독교의 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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