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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Dec 22. 2022

비누

2015.6.18


테드 제닝스의 "데리다를 읽는다 / 바울을 생각한다" 는 다소 어렵지만 굉장히 뛰어나고 의미있는 책입니다.

그는 로마서의 바울과 데리다의 독법을 만나게 하는 가운데 "정의"의 문제를 고찰합니다. 그가 말하는 정의는 "법 밖의 정의", 또는 "법을 초월한 정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의가 정식화되면 법이 되고, 정의는 그 순간 늘 언제나 법 밖에, 법을 초월하여 있게 된다는 것이죠. 저는 여기에서 예수의 삶과 비유에 "기존 체제에 대한 도전과 전복"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크로산과 비슷한 결을 읽습니다.


제가 연구했던 가톨릭의 기초신학자(조직신학자)이자 정치신학자인 요한밥티스트 메츠는 "교회는 정치에 대한 항구적인 비판자여야 한다"고 갈파합니다. 풀어 말하면, 교회는 예언자처럼 정치에 관여하되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관여하고, 언제든 자신을 변증할 수 있는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정치적 스탠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월터 윙크의 '창조적 비폭력 저항'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습니다. 비폭력 저항이 정식화되지 않고 각자의 맥락과 상황 속에서 '법'과 '틀'과 '구조'를 뛰어넘고 벗어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저항의 지속성과 변질을막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상 그리스도인은 '비누'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손에 쥐었을 때 그 향기와 효력이 묻어나기는 하나, 언제든 미끄러져 빠져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참으로 얄미울 정도로 유연한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가 존재하는 역사와 사회적 상황과 맥락에서결코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는. 그리고 절망이 닥쳐왔을 때에조차 '하나님의 신비로운 작업들'을 향해 빠져나갈 수/자신을 맡길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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