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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

오마이걸 10주년 콘서트 Milky Way

by 엔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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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는 은하수다. 오마이걸 두 번째 미니앨범 Closer 미미 랩 가사의 끝부분에 Milky Way is on 에서 콘서트 제목을 따 왔다.


함께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멤버들은 미라클이 별이 아니라 본인들이 별이며, 미라클이라는 은하수에서 함께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팬에게 말로서 전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반전이다.


무슨 일이든 10년을 꾸준히 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매 순간 힘을 다했다면 전문가를 넘어 장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무대가 좋았다 춤과 노래가 엄청났다는 식의 감상은 시간낭비다.


10년동안 다져진 건 실력만이 아니라, 팬덤과 멤버들, 멤버들 서로간의 관계다. 오마이걸을 잘 모르는 사람도 딱 보면 멤버들 간의 사이가 좋아보인다고 할 정도로, 은하수길처럼 10년을 수놓은 관계는 이제 더욱 더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럼 내가 언제 은하수의 일원이 되었느냐 하면, 아마 2020년과 2021년 사이 언제쯤이었을 거다. 그 전까지는 모두 비인간에 대한 덕질을 했는데, 윤상이 음악을 만든다는 이유로 러블리즈에 관심을 갖다가 퀸덤에서 러블리즈의 데스티니를 커버한 오마이걸에게 충격을 먹고 스며들기 시작했다. 햇수로만 하면 5년쯤.


일본에서 먼저 발매된 싱글 Etolie의 한국어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참 이상할 정도로 빠져들어버려 여기 네가 있어.”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내가 가끔 어색하다. 다른 팬들처럼 쫓아다니고 사랑한다고 소리도 지르고 공연장에서 멤버들과 함께 눈물흘리는 것도 아닌데 (어젠 몇번 울컥했다.) 계속 돈과 시간과 관심을 쏟는 누군가가 아이돌이라니.


다음 가사는 이렇다. “세상에 고개를 돌리고 싶은 날 진심으로 웃게 해” 비참하고 참담하며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덮쳐올 때, 번번이 내면을 채우고 지켜준 수많은 이들 중 하나가 오마이걸이라면 팬덤의 이름인 미라클처럼 기적과 같은 사건이다.


내 사주의 일주가 “정해”라는데, 사주와 팔자를 모두 살펴보면 호수나 바다 위에 뜬 별과 같은 형상이라고 한다. 오마이걸과는 별과 은하수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운명 아니었을까?


오마이걸 공연에 가면 멤버들이 늘 운다. 눈물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긴다. 감격해도 울고, 비참해도 울고, 행복해도 울고, 서러워도 운다.


Etolie의 가사 중 “언젠가 우리 서로 다른 길을 간대도”, 여기가 나에게는 눈물 버튼이다. 연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반려동물이든 누군가와의 이별을 늘 한켠에 두고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런데도 오마이걸은 그런 사실을 늘 마음 한켠에 새겨둔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을 “아련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행복으로부터 그리움을 바라보고, 그리움의 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와닿는 아련함.


콘서트 첫 날은 비가 왔고, 다음 날은 거짓말같이 푸르렀다. 공연장 입구에 일부러 설치한 줄 알았던 왕관 모양 조형물은 원래 있었던 거라고 하는데, 오마이걸 마크와 거의 똑같아서 이 또한 운명인가 싶었다.


2015년 4월 21일로부터 오늘 2025년 4월 21일까지, 그 가운데 다섯 해를 함께 보냈다. 4월은 늘 잔인한 달이고, 그럼에도 아주 오랫동안은 계속 그러하겠지만, 나에게는 단 하루라도 숨을 고르고 쉬어갈 하루가 있다.


승희가 팬들에게 남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오마이걸은 산도 강도 그대로일 수 있도록 늘 숲을 가꿔왔다고. 숲이냐 바다냐 택일해야한다면 숲을 고르는 나는 언제나 봄을 간직하고 있는 숲으로 언제든 뛰어들어간다. 이 기록은 그렇게 숲 속에 누워 나무 사이로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다 돌아온 이틀 간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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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예매한 자리가 죄다 앞옆쪽이라서, 돌출무대에서 공연할 때는 울애들 뒷모습을 실컷 봤다. (일부러 화면은 가끔만 봤다.)

사람의 뒷모습, 특히 사람의 등은 앞모습이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명에 뒷편에서 그늘과 함께 머무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는 주로 눈물과 함께 하고,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자주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에서, 의외의 관계 속에서 들을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 본 울애들 뒷모습이 그랬다.


++)

콘서트 직후 썼던 이 후기는 원래는 다른 매체에 작은 기록으로 남기려했는데, 유아린이 소속사와 결별하는 사건으로 인해 여기에 굳이 옮겨본다. 어쩐지 첫날에 울더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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