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었던 대학생 시절
나는 '치과위생사'라는 이름을 멋지게 꾸미기 위해 일본 유학도 다녀오고 가끔 강의도 하고 배움을 멈추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같은 치과위생사 선생님들을 포함한 주위의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며 '너는 정말 너의 직업에 열정이 넘치나 봐'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도 처음부터 내 직업에 애정과 열정을 쏟는 사람은 아니었다.
주위의 다른 치과위생사 선생님들과 치위생학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에 대해 대화하다 보면 대부분 '취업이 잘 되는 직군이라서' 혹은 '간호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수능 점수가 그에 미치지 못해서' 등의 답변을 내놓는다. 안타깝지만 '치과위생사가 되고 싶어서' 이 직업을 선택했다는 답은 듣기 어려웠다.
나도 마찬가지로 되고 싶어서 치과위생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수능 점수가 기대했던 것보다 낮게 나왔고, 그에 따라 나의 학과 선택의 폭은 좁아졌다. 부끄럽지만 치위생학과에 지원할 당시만 해도 치과위생사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몰랐다. 적어도 취업이 잘 되는 직군이라는 것을 알고 지원한 사람들은 치과위생사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겠지만, 나는 교정치료를 받으며 수년간 치과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치과에서 일하는 그 사람들이 치과위생사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마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리라.
우선 치위생학과로 입학하고 난 후 다른 학과로 전과를 하겠다는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들어간 자리였기에 나는 그 학과에 들어갔다는 기쁨이나 보람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등하교를 반복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주말에 중고등학생 때 사귀었던 친구들과 만나면 친구들은 나에게 취업이 보장되어 있으니 좋겠다며 그들의 부러움과 불안함이 골고루 섞인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 학과도 나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치과와 관련된 질문들에 전공지식을 곧바로 활용해 답을 줄 수 있다는 데에 아주 조금 매력을 느끼며 입학 시 품었던 전과의 계획을 잊고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20대의 첫 해를 보냈다.
2학년이 되고 나서도 내 생활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정도의 학점만 받고 치과위생사 국가시험만 잘 통과하면 취업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무언가를 더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학과에 다니는 친구들의 생활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기업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에 참여하는 등 각자의 스펙을 쌓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그 고민을 바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나는 가만히 고여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것을 바탕으로 움직일 이유도 없었다.
한 해 전에는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은근한 승리감에 취하게 됐다면, 그다음 해인 21살에는 같은 나이임에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생각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다가는 5년, 10년만 지나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겠구나'
그때부터 나는 교수님들이 안내해주시는 외부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한치과위생사협회에서 모집하는 학생기자에도 지원하고, 일본으로의 연수 프로그램도 참여하는 등 나의 대학생활에 통학 외에 다른 활동들을 덧붙이고자 했다. 이 활동들도 내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무언가를 더 하기 위해 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열해보면 아무런 통일성이 없고 방향성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학과에 다니는 친구들처럼 내 20대 초반을 꾸미기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대학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이루고자하는 목적이 없이 달성한 목표들이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직후의 모습은 동기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가까운 치과에서 그다지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치과위생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