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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글 Jun 18. 2020

각자의 충만

떠난 사람만이 느낀다는, 그 충만

한 인생을 살아가며, 나는 언제 가장 충만했을까. 가닿을 수 없는 어떤 이상향의 끝처럼 느껴지는 단어가 내겐 충만이다. 직장인의 삶에서 과연 충만이란 단어를 오롯이 느낄 수 있을까.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죄송합니다.".  업무 숙련이 덜 된 신입사원일 땐, 죄송합니다를 습관처럼 해댔다. 아주 사소한 실수에도 고개를 숙이며 어쩔 줄 몰라하던 때를 지나 어느정도 업무에 속도가 붙으면 조금씩 "죄송합니다"라는 허물에서 탈피하게 된다. 그러나 그 허물을 탈피하기 까지의 과정이 녹록치 않다. 방법이 유일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업무에 익숙해 질 때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도움 받은 상대방은 빈말이라도 꼭 감사의 표현을 한다. 그것이 쌓이다보면, 견고했던 허물이 조금씩 찢어지는 것 같다. 빈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그제야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이것이 일선에서 느낄 수 있는 최선의 충만이다.


내 여행은 대개 힘들다. 이번엔 조금 편한 여행을 즐기자며, 계획을 짜다가도 조금 더 힘들어도 좋겠어! 너무 편한 것 같아 라는 생각에 군데군데 무식한 일정을 끼어넣기도 한다. 이를 테면, 저렴한 새벽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 숨 돌릴 틈 없이, 기차를 타고(만석 열차에 입석으로) 8시간을 달려 겨우 도착. 숙소까지의 거리를 계산하지 못한 채, 캐리어를 끌고 벚꽃구경을 만끽한다는 얼토당토안한 계획이랄까.(실제 계획이고, 나는 내가 충분히 버텨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음날의 컨디션은 고려하지 않은 채.)


"충만의 상태는, 조건 없이 느껴지는 고마움으로부터."


여행에서 느끼는 오롯한 충만은 쓰임이 다양하다. 여행 그 순간의 불안과 걱정에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 고된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일선으로 다시 복귀했을 때 어떤 역경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맷집이 되어주기도 한다. 여행의 충만은 조건이 없다. 직장 동료나 상사에게 도움을 줄 필요도 없고, 그 대가로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않아도 된다. 여행에서의 충만은 낯선 시공간에서의 날씨에서 올 수 있고,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으로 느낄 수도 있다. 여행의 충만은 다만, 이 모든 것들을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느껴볼 수 있었다는 부분에서 묘한 재미와 쾌감을 주기도 한다. 평소에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던 아주 흔한 것들로 여행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가장 왕성한 충만을 준다.


그것은 오직 내 안에서 피어난 꽃과 같아서, 가닿을 수 없었던 이상향의 끝과 같아서

내가 그제야 여기 서있었구나, 내가 이 계절을 겨우 버텨내왔구나 하는 생각들.

 

가장 멋진 내가 여기에 존재함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거다.

이제 D-DA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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