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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글 Sep 28. 2019

완연한 기적이다

1년 사이에 부쩍 몸이 불었다. 나에 대해 늘 관대한 평가를 내려주던 엄마도 지금의 내 모습에 걱정하는 눈치다. 스무 살 까지 90kg~100kg을 오갔던 체중에서, 80kg까지 감량했고, 최근까진 73kg이었다. 긴 시간 동안의 노력으로 뺀 살인데, 1년 사이에 다시 80kg대까지 몸이 불어나니 엄마 입장에선 걱정할 법도 했다. 친한 친구나 애인이 살을 빼라는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나는 엄마의 잔소리에 약간의 경각심을 느끼게 되었다.


"운동은 하니? 네 나이에 특히 관리를 잘해야 돼."


여러분들도 그러한가? 우린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성인이 되기까지 대개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자랐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내게 하는 감탄이나 걱정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걸음마를 배우고,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된 이유는 부모의 감탄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이구, 우리 아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옳지!! 오!!"와 같은 최초의 감탄으로 성장해온 것이다.


부모의 칭찬과 격려를 듣기 위해 우린 얼마나 많은 노력으로 지내왔는가. (머리가 컸다고, 부모의 조언이나 칭찬을 괜한 참견 혹은 잔소리라 치부하지 말자. 완연한 기적이다.) 그래서 부모의 걱정이 괜한 잔소리로 느껴지는 동시에 본능적으로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이 찐 이유는 명확했다. 차가 생기며, 자연스레 걷는 시간이 줄었다. 거기서 오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근처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차를 몰게 되었다. 게다가 나이를 먹어가며, 안정된 회사를 다니게 되었고, 그만큼 벌이도 괜찮아졌다. 차와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 먼 곳에 있는 맛집을 찾아갔다. 결론적으로 걷는 시간이 줄었고, 동시에 먹는 양과 질이 달라졌다. 지난 1년 여의 생활을 돌아보니, 10kg만 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한다면 삼아야 했다.


억지로 걷는 시간을 확보했다. 차를 이용하는 시간을 최소로 줄였고, 기껏해야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이나 만지작 거릴 시간엔 바깥으로 나갔다. 회사와 집에서의 식사량도 조금씩 줄였다. 나의 생활 습관에 전반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했다. 하정우 배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도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람에겐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길 원한다. 거기서 나의 의지력에 대한 의심이 들기 마련이고, 나아가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의외로 거대한 계획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싫은 것, 좋지 않은 것을 덜 어내며 하루하루 완벽에 가까운 나로 살아내는 것이라면, 길고 복잡한 계획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부모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땐, 그들의 감탄을 먹고 자랐다.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엄마'라는 첫마디를 세상 앞에 토해내고, 받아쓰기 100점 종이를 그들 앞에 당당하게 내보이며, 대학 입학 소식이나, 회사에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까지. 그 짧은 순간에는 늘 부모의 감탄이 보상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며, 무언가 변화를 꾀한다면 거대한 계획이 아닌 이 작고 사소한 감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의 감탄을 듣기 어려워질 것이다. 점차 함께하는 시간이 줄 것이고, 나의 감탄을 듣기보단 부모에 대한 걱정이 앞설 것이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감탄을 배웠고, 동시에 상처 주는 법도 배웠다.)  


한 철의 세월이 지난 것이다. 그들의 감탄에 기대며,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 내키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그리워할 날이 언젠가 예고 없이 올 것이다. 벌써 가을이다. 거리는 어느새 차가운 공기로 스산하다. 아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우짠 일로 전화를 다 했대?”

“운동하고 있어, 그냥 생각나서 전화 해봤어.”

“오!! 그래 아들, 엄마 아빠처럼 되기 전에 관리를 좀 해야지.”


쳇, 엄마 아빠가 어때서. 아직 건강하구만.

아직은 돌아갈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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