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글 Sep 25. 2019

암묵적인 약속에 대하여

스마트폰 화면에 가끔 이런 메시지가 뜬다. "최명열 님이 1년 전 FACEBOOK에 올린 사진입니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인 것 마냥 생생하다. 어떤 친구와 언제부터 친구가 됐는지도 알려준다. 그렇게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고리타분한 일상을 주고받지만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면서 짧은 대화는 끝이 난다. 오랜만에 본가에 왔다. 추석명절이라는 핑계로 텅 빈 자취방 냉장고를 채워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명절 음식을 챙겨가려면 약간의 노동이 필요하다. 어머니는 전을 부치고, 아버지는 밀가루를 다시 채워 넣는다던지 전자레인지 불을 맞춰준다. 어머니에게 여러 해 쌓인 명절 음식에 대한 빅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여있고, 아버지는 그 데이터 분류에 따라 마치 AI처럼 움직인다. 굳이 어머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척척 해내시는 걸 보면 아버지에게도 약간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는 것 같다. 아버지 정도의 연세가 되면 조금씩 여성호르몬 수치가 높아져 가정적인 모습으로 바뀐다고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세상의 진리가 새삼 의심스럽기도 하고, 호르몬의 힘이 위대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머니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며, 마침내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굴복시켰다는 모종의 승리감까지 곁들여 친지들에게 자랑한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몸이 좋지 않아 몸 져 누우면 , 보살펴 줄 사람이 당신밖에 없잖아." 사람은 가장 힘들 때, 가까운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고 한다. 또한 가장 가까운 사람 역시도 소중했던 사람이 힘들 때, 혼신을 다해 보살펴 준다고 한다. 마치 한 명은 전을 부치고, 또 한 명은 밀가루를 채워 넣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분주히 식재료를 사러 다닌다. 아직 본가 동네 지리를 기억하고 있다. 여기에선 굳이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와 함께 걸었던 골목, 장난감을 사달라며 엄마에게 고집을 피웠던 대형마트 앞, 야자(야간 자율학습)에서 몰래 빠져나와 거닐었던 거리들. 1년이 지나도 내게 다시금 회상하게 해주는 어떤 매개도 없다. 그러나 이 길들이 계속해서 이 곳에 멈추어 있는 것은 안다. 그들과 나 사이엔 암묵적인 약속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관계가 오래 가리라는 것을 그들도 아는 것 같다.


"우리 서로 굳이 멀리서도 알려고 하지 맙시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둘 사이가 가까워지면, 그제야 잘 지냈냐며 눈인사나 하고 다시 갈 길 갑시다."


내가 아프면 당신이 보살펴 줄 것이리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처럼, 나와 이 길 역시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인가. 나는 익숙한 골목을 빠져나와 유유히 집으로 향한다. 다시금 오리라. 동태와 밀가루의 관계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처럼 모든 관계는 기억이라는 하나의 매개로 뭉쳐졌다가, 다시 흩어지는 암묵적인 관계. 잠깐 동안 눈인사를 주고받는 시간처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며, 공존하고 있다. 왜 굳이 당신과 내가 서로의 고통을 보살피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오는지 지그시 바라보며 산다면, 굳이 SNS가 보내주는 찰나의 기억 파편에 의존하지 않는 그저 암묵적인 약속만이라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설사 기약이 없더라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잠시 쉬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부모라는 존재들은 기다림에 익숙해 있다. 자식들은 부모의 기다림을 알면서도 망각한 채, 나는 내 인생을 멋지게 살 거라며, 청사진을 그린다. 자식들 역시 익숙해진다. 망각하는 것에 대해서.


[... 본가에 왔다. 옷가방은 미처 세탁하지 못한 속옷과 양말 겉옷으로 꽉 차있었다. 한 주간 수고 많았다는 격려 대신 기꺼이 내 옷가방을 건네받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엄마. 밥은 먹고 왔는지 묻는 엄마부터 밥을 먹고 왔다 대답했는데도 또다시 밥은 먹고 왔냐고 묻는 엄마까지. 그리움이 너무 크다 보면, 이렇게 한 번 물으면 될 것을 두 번 묻는다. 가끔 세 번 물어보실 때가 있는데, 나는 세 번째 대답을 하며, 미리 네 번째 대답까지 덧붙인다. “먹고, 왔어요.” 현관 벨은 내가 눌렀는데, 어째 꼭 엄마가 누른 것 같은 이 헛헛한 기분. 내가 본가에 없는 사이 엄마가 나를 떠올리며 읊었을 “밥은 먹었으려나.”...] - 필자의 인스타그램 中


-이 자식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우리 자식들이란 존재는 부모 앞에서만큼은 순풍에 앞으로 나아가는 우직한 배 한 척이어야 한다. 가끔은 키를 잘 못 잡아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잊지 말자 우리는 부모들의 방향이자 이상이다. 우리 부모님과 나와의 약속은 세상 그 어떤 암묵보다도 앞서 있어야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생선 비린내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