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열 살 전후였을 거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또래 집단에게 띄운 첫 번째 연결 고리는 생일 초대장 같은 것이었다. 스케치북을 찢어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제일 친하다 생각한 몇 명 혹은 몰래 좋아한 남자애에게 건네주던.
여중 여고 시절을 지나면서는 손으로 쓴 편지와 쪽지가 쌓여 갔다. 지난여름 본가 이사로 남아 있던 내 짐을 정리할 때 당시의 종이 꾸러미가 사과 상자 하나쯤 나왔다. 몇 개 꺼내 읽어보니 도저히 쓰레기로 버릴 순 없었다. 지금은 소원해진, 여전히 남아있는 친구들 모두와 순수한 마음을 교감했던 보물 상자 같아서.
대학생이 되어 삐삐와 이메일로, 숫자와 텍스트로 소식을 전했다. 외국에 일하러 떠난 친구에게 간혹 엽서를 보내기도 했지만, 메일로 길게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건 그 먼 거리 너머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충만케 했다. 휴대폰 문자와 메신저를 거쳐 또 지금의 카톡까지, 이제 언제 어디서든 연락하고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미래 시대에는 3D나 VR 같이 살아있는 것 같은 친구를 내 눈 앞에 두게 될지도 모른다.
“줌(zoom)으로 진행합니다...”
요즘 일상에서는 ‘zoom’이 중요한 수단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길어지고 카페 조차 이용할 수 없게 된 날들에 이게 없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몰랐을 땐 몰랐어도 알고 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는 거다.
사실 나는 3년 전부터 그룹 코칭 모임을 ‘스카이프’로 경험했다. 대여섯 명이 시간을 정해 각자의 방에서 만난다는 것이 최초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코치 분이 진행하는 정기 모임으로 반복되었기에 이내 적응되었다. 각자 마음속 이야기를 나눠야 했던 특성상,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으면서 대화에 참여한 느낌은 예상외로 꽤 만족스러웠다. 이것이 zoom 예행연습이었던 걸까.
2020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꽤 많은 모임을 zoom으로 체험했다. 독서 토론, 책 스터디, 자기소개를 포함한 커뮤니티의 첫 모임, 각종 회의, 비혼 여성으로 참여한 고양여성민우회의 좌담회 행사, 공동 문집을 출판한 모임의 송년회 등등. 얼굴을 보며 대화할 뿐 아니라, 문서 자료나 영상을 띄워 발표를 하고 공부를 해 온 순간들도 분명 zoom에서 반짝이는 시간이었다.
특히 일종의 파티였던 문집 송년회에서는 남편이나 아이를 뒤로 한 채 밤 10시, 각자 마실 술을 준비해 모니터 앞에 모여 앉았다. 때가 좋았다면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나눠 먹으며 웃고 떠들었겠지만. 출판된 따끈따끈한 책을 오른손에, 맥주 와인 양주까지 각종 술잔을 왼손에 들고 여덟 명이 화면 캡처로 인증샷을 찍을 때 묘한 흥분과 쾌감마저 들었다. (술기운이 서서히 올라왔기 때문일 수도...)
우리에게 소통, 연결이 무엇일까.
문득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히로코가 편지를 주고받던 이츠키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보낸다.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가 보았을 운동장의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부탁에 이츠키가 운동장을 뛰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씬. 이상하게 나는 그 부분이 참 좋았다. 상대방이 보는 세상이 궁금한 나. 그의 시선과 생각을 보고 듣고 싶은 마음. 거기서부터 대화가 시작될 수 있고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지금은 비록 우리가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없어도, 유일하게 마스크를 벗고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zoom의 순기능을 더 누려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