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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Jan 04. 2021

걷는 길 위에, 걷는 길


걷는 길과 뛰는 길 중에, 나는 걷는 길을 택했다.

그것은 뜻한 바 있어 결정한 삶의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고잉 그레이(going gray)’ 하기로 마음먹고 더 이상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지 않은 것, ‘비혼’을 결심한 후 계속 그리 살기로 마음 정리한 것. 인생은 어차피 B(birth)와 D(death) 사이 무수히 많은 C(chance)로 이루어지지 않나. 걷는 길을 선택하며 뛰는 길 쪽으론 곁눈질도 않은 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수가 기어이 나타나고야 만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없는 인생! 어쩌다 보니 나의 걷는 길이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길도 어떤 속도로, 무슨 의지로, 혹은 누구와 함께 걷느냐에 따라 제각각 다른 공기의 길이   있다. 지금   위에서 온갖 통제 불가능한 에너지가 넘실대고 있다. 팔과 다리가 제멋대로인 순간도 오고, 정답이라 생각했던  어느 때에는 오답이 돼버린다. 이제 나는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 그와 얼만큼  것인가.


내가 선택하고 펼쳐낼 일들이 걷는 길 위에서 조금 느려져도 괜찮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덧없이 흘러간 2020을 보낸 후 마음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산책하듯 걷는 게 맞는가 의심이 든다. 잡았던 손을 아주 놓아버릴지, 그와 오래오래 갈지 고민은 깊숙이 흘러들었다. 지금 이 길은 고요할 수가 없다. 밀물과 썰물처럼 오락가락하며, 지워진 페인트 위에 글자를 덧입히듯 난장판이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도 모르게 됐다.


그럼에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걷는 것, 걷고 싶다 말하고 생각하는 것, 걷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덧칠하는 것뿐.

걷는 길 위에 걷는 길을, 오늘도 나는 걷고 있다.  





+ 이 글이 나오기 오래전에 썼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danceadaywriter/125




*매거진 [ 쑥떡을 씹으며 ]

쑤욱 떠오른 기억 -> 쑤-욱 떠ㅡ억 -> 쑥떡

쫄깃 오묘한 쑥떡의 식감과 향내 같은 일상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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