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한 공간과 향기, 낯설지만 곧 마시게 될 커피 한 잔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 뭘로 할까 고민하다 대표 메뉴로 보이는 것을 주문한다. 계산을 마친 바리스타의 질문.
“쿠폰.. 찍어 드릴까요?”
중요한 커피 맛을 보기도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곳을 앞으로도 올 것인지, 이번 한 번으로 끝낼지. 그 결정에 그럼 어떤 것들이 작용할까? 카페 내부의 인테리어, 분위기에 필수인 음악과 조명, 창문으로 들어오는 채광과 풍경, 테이블 배치나 소품들... 눈에 들어오는 것을 휘리릭 살피며 계속 이용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선다.
처음 만나는 사람.
성인이 된 후로 누군가를 처음 보는 자리들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다. 서류 다음으로 나의 전신을 스캔하는 면접장,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신경 쓰이는 소개팅, 명함을 주고받으며 갑을 힘겨루기를 하는 거래처 미팅, 새로운 배움을 위한 모임에서 어색하게 돌아가는 자기소개, 저절로 공손해지는 애인의 부모님 댁...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상대와 나 사이에서 계산 불가능한 우주의 공기가 흐른다.
이 관계를 더가보느냐 마느냐, 심사숙고하기 전에 잡다한 기준을 들이대고 평가를 남발한다. 호감을 주는 얼굴인지, 키가 크고 목소리가 좋은지, 내 말을 얼마나 잘 따를지, 학력과 재력은 어떠한지. 커피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오감을 집중하고, 여러 잔 마셔 볼 의향은 없는 것 같다. 그의 첫인상에 내 선입견을 보태어 쉽게 결정해버린다.
사실, 맛없는 커피집은 다시는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맛이 적당한 편이라면, 메뉴마다 식은 정도에 따라 또 그날의 기분 따라 커피 맛은 다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상대방을 조금 더 알기 위해 편견 없이 최소한 몇 번 더 만남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관계의 쿠폰에 도장이 쌓여갈수록 내밀한 그의 세계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새 쿠폰을 거절하지 않고, 나는 일단 두 손에 받아 든다.다음 커피가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