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ドライブ・マイ・カー》 확신 없는 의문에 대한 류스케의 심심한 위로
이 글은 국내 유일의 OTT 미디어, <OTT 뉴스>에 2022년 4월 26일 자로 기고된 글의 연장선입니다.
‘차’라는 공간은 생각보다 사적이다. 익명 채팅 서비스가 유행하기 전까지는 귀갓길의 택시 운전사에게 답변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한때의 유행 아닌 유행이었다. 좁디좁은 공간 속, 둘 밖에 없는데 백색소음까지 잔잔하다.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환경에 술술 나오는 말은 속내 그 자체였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대사에 집중된 영화인데 대개 스토리라인의 중심은 차에서 진행된다. 그 잔잔하고 침착한 감정선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장르: 드라마
개봉: 22. 4. 20.
시간: 179분
연령제한: 15세 이상 관람가
국내 관객 수: 왓챠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때때로 야마가의 집에 몰래 들어가고 있어.
연극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 분)는 아내이자 작가 오토(키리시마 레이카 분)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는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 분)를 가후쿠에게 소개해줬고 그와 외도하는 것을 가후쿠가 우연히 목격한다. 너무 사랑했기 때문일까. 가후쿠는 현장을 빠져나와 담배만 태웠고 그렇게 블라디보스토크 연극제 심사를 다녀온다. 귀국해 돌아오는 길. 오토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통해 대사를 연습하던 가후쿠는 접촉 사고로 인해 병원에 가게 되고 완치가 어려운 녹내장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가후쿠와 오토 사이에는 사실 딸이 하나 있었다. 다만 하늘나라에 있을 뿐. 그래서인지 둘은 더 사랑했고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더 이상 짙어지지 못했다. 또 다른 일상. 가후쿠는 워크숍을 위해 잠시 집을 떠나고 아내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와 함께 운전대를 잡는다. 다시 돌아왔을 땐 오토는 쓰러져있었고 외도의 이유조차 듣지 못한 채 그녀마저 떠나보냈다.
그리고 다시 일상, 가후쿠는 연극 <바냐 아저씨>를 위해 오디션 심사를 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주최 측이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토우코 분)를 붙인다. 차에 대한 애착과 테이프를 틀고 대사를 읊던 습관 때문인지 가후쿠는 좋아하지 않지만 미사키의 무뚝뚝하고 강단 있는 성격에 차 키를 내주고 만다. 그렇게 도착한 오디션 현장에서 다카츠키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하필이면 정부(情夫) 배역의 '아스트로프'로 가후쿠 앞에 나타난다. 그런 다카츠키에게 가후쿠는 발끈하며 그가 원하는 역할이 아닌 무기력한 배역, '바냐' 역할을 주며 <바냐 아저씨> 팀을 꾸린다.
대본 리딩을 하던 어느 날, 다카츠키는 가후쿠에게 술을 권한다. 그러고는 고백하듯이 말한다. 오토의 각본을 연기하는 가후쿠가 좋았다, 둘은 다르지만 같은 것을 전달했다, 라며. 그리고 여색으로 인해 소속사가 없는 다카츠키를 나무란다. 다카츠키는 변명 대신 오토 얘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돌아온 답은, "우린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여자를 사랑했으니". 다카츠키의 답변은 "사실 가후쿠 씨를 질투 냈다"라 했다.
리딩 연습이 끝나고 어느 하루, 윤수(진대연 분)는 우연히 가후쿠의 차를 얻어 타다가 저녁을 초대한다. 그리고 아내가 수어를 쓰는 '소냐' 역할의 배우, 유나(박유림 분)였음을 알린다. 적막하고 따뜻한 식사에서 윤수는 유나에 대한 사랑을, 가후쿠는 미사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미사키는 유나가 '소냐'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테이프가 아닌 대화를 나눈다. 미사키는 고향에서 운전을 배운 이야기를 하며 가족에 대한 상처를 밝힌다.
연습을 가던 도중, 다카츠키가 '옐레나' 역의 재니스 창(소냐 위엔 분)과 함께 차를 타고 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의 차는 사고가 나고 연습은 늦어지고 연기는 형편없었다. 다카츠키가 사과하러 오자 가후쿠는 "분별력을 가져주라"라는 말만 남긴다. 차를 탄 가후쿠는 미사키에게 "어디든 가달라"라고 말하고 미사키는 히로시마의 쓰레기 발전소를 소개한다. 거기서 미사키는 산사태로 인한 엄마의 죽음, 히로시마로 오게 된 사연을 말한다.
또 다른 날, 다카츠키는 돌아가는 가후쿠를 붙잡고 이야기를 청한다. "체호프의 대사는 나 자신이 끌려 나오는데 그걸 버티지 못한다"라며 '바냐' 역을 연기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가후쿠. 그런 가후쿠에게 왜 본인이 '바냐'이냐며 묻는 다카츠키. 가후쿠는 오롯이 역할에 바칠 수 있는 그런 다카츠키가 사회인보다는 배우로 적합하다고 말한다.
술자리에서 돌아가는 길. 딸의 죽음을 말하는 가후쿠는 딸이 살아있었으면 스물세 살, 미사키의 나이였을 거라고 말한다. 딸의 죽음은 오토와 가후쿠의 행복을 멈추게 만들었다고 고백했고 글을 쓰기 시작한 오토의 첫 작품은 본인과의 관계에서 나왔다고 밝힌다. 그렇기에 또 다른 작품들은 작품 속 배우들과의 관계에서 나왔다고, 아마 오토는 여러 사람과 잤을 것이라고 말하는 가후쿠.
오토는 자연스럽게 날 사랑하면서 배신했으니 우린 확실히 누구보다 깊이 이어져 있었어.
오토에 대해 말하는 다카츠키는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가후쿠와 관계를 할 때 했던 이야기, ‘야마가’에 대한 각본의 끝 매음 새를 알고 있다고 말하며 줄거리를 늘어놓는다. 다카츠키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미사키는 그가 거짓말을 한 것 같지 않다고 말하자 가후쿠는 더 괴로워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그렇게 아끼던 차 안에서 담배를 함께 태운다.
다시 또 연습. 연극의 완성도는 무대 위에서 연습하기까지 달성되었지만 예기치 못한 문제가 터진다. 평소 사진을 찍어 가는 행인들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다카츠키가 평소와 같이 행인을 가격했는데 그 행인이 사망하면서 경찰에 연행되었다. 극은 중지하거나, 가후쿠가 ‘바냐’ 역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가후쿠는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가후쿠는 미사키의 고향, 가미주니타키무라로 데려다 달라했고 빨간 사브 900은 테이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오토가 죽던 날, 가후쿠는 용무가 없었음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오토와의 관계가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까봐. 그에 대한 죄책감을 밝히자 미사키는 ‘사실 엄마를 죽였다’라고 말한다. 산사태가 있던 날, 본인도 엄마와 같이 집에 있었지만 혼자 빠져나왔고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고, 구하러 가지 않았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결국 둘은 아내를 죽이고, 엄마를 죽였음을 인정한다. 이들에게 ‘내가 당신의 아버지였다면, 딸이었다면’이라는 가정은 그저 사치다.
미사키는 엄마에게 폭력을 당해왔지만 그다음에는 엄마의 또 다른 자아, ‘사치’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치는 미사키의 유일한 친구였고 미사키가 품어줄 수 있는 엄마의 마지막 아름다움이었다. 엄마가 정신병이었는지, 아니면 미사키를 잡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치는 미사키에게 따뜻했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미사키는 산사태의 그날, 엄마가 죽는 건 결국 사치가 죽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미사키에게 엄마는 의문이 가능한,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토는 다르다고 말한다. 미사키가 봤을 때 오토는 어떤 거짓과 모순도 없이, 가후쿠를 사랑하고 다른 남자를 갈망했다. 가후쿠는 진실을 피하면서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그렇게 나 자신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고 그래서 오토를 잃었다고 말한다. 만나면 화를 내고 싶고 솔직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음에 책망한다. 상실감의 두 사람은 포옹을 나누며 서로의 죄책감을 나누어 가진다.
가후쿠의 말처럼, "우린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그리고 '소냐'의 대사처럼,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40분 만에 오프닝 크레디트가 나올 때는 가히 충격이었다. 그간 프롤로그를 40분 동안, 길면서도 장황하지 않게 설명했고 아내 오토가 사망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오토는 가후쿠와 다카츠키 사이의 불신을 가져다준 인물이자 가후쿠 시점으로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사랑하지만 너무 사랑한 나머지 거리가 멀어진, 그런 관계는 오토의 사망과 미사키의 위로로 한층 더 가까워지는 아이러니함을 반복한다.
아이러니는 내용 면에서만 한정되지 않는다. 가후쿠가 이끌어가는 극의 시나리오는 <바냐 아저씨>로 선망했던 인물에 대한 상실과 실망에 대한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주인공 ‘바냐’는 결국에 모든 것을 잃었으나 ‘소냐’와 함께 다시금 일상에 도전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 역시 가후쿠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가후쿠는 ‘바냐’ 역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해당 배역을 거절하고 피하려 들지만 결국에는 안톤 체호프의 소설과 호흡을 같이 한다.
액자식 구성 혹은 연극적 기법의 시너지는 가후쿠와 오토의 직업으로 인해 더 효과를 발한다. 연극배우이자 디렉터인 가후쿠는 작가인 오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더듬는다. ‘야먀가의 집’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결말을 다카츠키가 알려줬을 때, 가후쿠의 감정은 요동치지만 이는 따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저 미사키와 함께 한 담배 정도가 전부였다. 그다음 장면, 카 테이프 혹은 연극 연습을 통해 가후쿠의 감정은 대신 묘사된다. 가후쿠라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연출법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이 원작이다. 60쪽이 넘지 않는 짤막한 분량의 소설에서 착안한 대본은 3시간짜리로 확장되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대사의 힘’을 믿는 감독 중 하나인데 하루키와 체호프의 소설 사이에서 가후쿠라는 인물을 더 복합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가후쿠라는 사람과 내적 친밀뿐만 아니라 외적 친밀도 가져다주는, 그런 몰입감을 선물한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영화가 지나치게 '영화적'이지 않고 말만 주고받는 연극 같다고. 본래 영화는 연극의 확장판이나 다름없었지 않았는가. 그간 조각 같은 배우들과 멋들어진 CG 때문에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히어로 아니면 아이돌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속에서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결핍과 사랑에 대해 고통을 받고 또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받는다. 정답이 있을 것 같은 클리셰적인 상황들에 비해 확신이 없는 의문의 연속, 그 혼돈 사이에 있는 가후쿠는 '류스케식'으로 우리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