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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Aug 03. 2022

실망할 걸 알면서도 저지르는 철없음에

재수 때부터, 아니 어쩌면 유명한 사립 고등학교 아닌    없는 인문고를 갔을 때부터 나의 숙제는 ‘부모님 실망시켜드리지 않기였던  같다. 방학숙제처럼 꾸준히 미뤄왔던  과제는 유튜브 광고와 달리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스킵할  없었고 고통과 괴로움 속에 받아들인  개의 성적표로 부모님의 가슴에는  많은 비수가 꽂혔다. 개중 하나가    없는 지방국립대학교 입학이었다.

하여간 그래야만 했다. 고군분투 그 자체.

 애초에 내가 원하는 길과 내가 택한 진로는 부모님의 실망이 거름이 되어 더 커진 꿈이었다. 그들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나는 이만큼 더 간절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힙합 정신이 깃들인 덕분에 나는 “Show and Prove”에 익숙했고 특유의 반골기질까지 동참하면서 ‘엄마, 아빠가 하란대로 안 해도 난 행복할 수 있어’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더 실망스러운 길은 많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뻐 보이고 겉모습이 잘 정돈된 길을 택했다. 그래야만 내가 덜 불효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졸업 전에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급여 수준과 안타까운 업무 환경이지만 — 미팅과 취재를 제외하면 100% 재택이다 —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나 스스로 크게 만족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특히 한국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밤을 새도 즐거웠고, 휴가를 떠나서도 노트북을 켰을 때도 뿌듯했다. 주 20시간만 일하라는 얘기에도 밤샘은 일상이었다 — 물론, 일이 하나가 아녀서 그런 것도 있다 —. 그래도 행복했고 흔히 말하는 금융 치료 없이도 하루가 거뜬했다.


 정신없었던 인턴십을 마치고 정직원으로 전환되면서 다시 한번 무언갈 증명해낸 거 같아 기뻤다. 객관적인 지표가 구리지만 그래도 내 진가는 알아주는구나, 싶어서 되게 행복했다. 물론 그들이 제의한 급여 수준은 내 예상만큼 적었다. 업계 표준이라지만 전업으로 삼기엔 힘들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탓하진 않았다. 결국에는 나도 알면서 찾은 나 스스로의 불행이라 여겼다.

《결혼 이야기》에서 찰리는, 그리고 니콜은 나 자신을 위해 갈라선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만큼, 그리고 나 스스로 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결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지금 내 급여는 사실 내가 다른 데서 일하면 충분히 벌 수 있는 수준이긴 했다. 다시 말해, 아르바이트 수준에서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더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 급여 수준을 들은 부모님은 분명히 실망했다. 엄마는 위로해줬지만 실망을 감추지 않았고 — 난 사실 위로도 필요하진 않았다. 예상하는 대로였으니까 — 아빠는 회사의 외국인 노동자 수준이라고 말했다. 굳이 알고 있는 사실을 들추는 이유는 기대에 비해 실망스럽다고 말하고 싶어서였겠지. 다 알지만 알고 있는 만큼 상처받았다.


 결국 아들이 하고 있는 일은 예정된 불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녔다. 이게 고등학교 진학 때부터였을지, 아니면 대학 진학 때부터였을지는 확신하기 어렵지만 나란 놈은 태어난 이상 이렇게 실망을 안겨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연봉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업계 표준을 들먹이며 아무리 대단한 스펙을 갖춘 사람들도 이 정도의 돈 밖에 받지 못한다고 어필했지만 결국 예정된 실망은 예상대로였다.


 그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먹던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일을 해야 했으니 먹었지만 이후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고 나중의 운전면허나 미래의 결혼 등 거액이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고 싶지 않게 되었다. 다분히 나는 혼자여서 가장 좋은 사람인 걸 다시금 깨달았다. 지독하게 허하고 우울한 건 정말 오랜만이라 그간 어떻게 이 감정을 핸들링했는지 잘 모르겠다. 밖에 나갈까, 사람을 만날까 하다가도 그마저도 돈이 드는 일이라는 생각에 주저하게 되었다.


 실망할 걸 알면서도 저지르는 이 철없음에, 나는 돈이라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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