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른인 척하는 것에 대해 外
웃긴 이야기지만, 나는 어렸을 적부터 무시당하는 것이 상당히 싫었다. 다섯 살짜리에게 플라스틱 컵은 당연한 처사이지만 나는 어른들이 쓰는 알루미늄 컵을 쓰고 싶어 했고, 어려 보인다는 말이 어리숙하다는 말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노안이 된 거고, 어쩌면 성숙한 척 가면을 쓰는 것이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재수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동생보다 형 포지션이 나에게 어울렸고, 투정을 부린다던지 어린 체 할 수 없는 사정의 연속이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사실 막내 포지션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시니어가 아니고 주니어이니, 당연히 배우는 게 더 많아야만 하는 위치고, 어리숙한 모습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경력직 같은 신입'이 되고 싶었던 나는 어딘가 성숙한 척을 하려 들었고, 어느 정도 먹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미성숙한 경우가 들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자기혐오를 감추지 않았지만, 때로는 얼른 성숙해지려고 노력했다.
과일이 결실을 맺는 시기가 있듯, 성숙해지는 건 시간문제이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안다. 그래도 어른이면 뭔가 효율적이고, 완벽에 가까워질 거 같다는 착각이 '어른이'가 아닌 '애늙은이'로 만들었다. 조금만 더 길게 보면 탄로 날 거짓말을, 최선을 다해 두꺼운 가면으로 덮어보려 한다. 난 여전히, 여러모로 방어기제가 엄청난 사람이다.
"가을을 탄다"라는 말이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부정할 수 없는 건 최근의 나는 가을을 신나게 타고 있다. 취업 준비 때문에 과감히 연애를 포기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일'이라는 족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애정을 열렬히 갈구하고 있다. 낯섦과 설렘이 항상 헷갈렸고, 그로 인해 의도치 않게 몇몇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그래서 쉽게 착각하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울컥하고 쏟아진 감정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전부터 나는 애정을 통해 동기부여를 받는 편이었다. 마음에 드는 선생님이 있었으면 그 과목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의 눈에 띄어서 사랑받기를 원했다. 자연스럽게 짝사랑은 나의 일상이 되었는데,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나는 반쪽 짜리 사랑을 완성하려는 노력을 쉽사리 하지 못한다. 항상 내가 좋아하는 이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의문을 갖기보다는 한 번의 노력을 더 했다. 열 번 말고 딱 세 번만 찍어보자라는 식의 태도였는데 ― 알다시피, 좋은 애티튜드는 아니다 ― 이제는 그 한 번의 시도 이상을 해보기가 어려워졌다. 감정 소모가 많아지는 것을 기피하는 내 방어기제도 한몫했지만, 내 짝사랑의 유통기한이 짧아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매달리고 구애하는 상황에 처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이런 설렘을 느끼다 보니 미성숙한 모습을 여러 번 보였다. 사실 이게 설렘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잘 되고 싶다'라고 생각이 든 건 정말 오랜만이긴 했다. 그러다 보니 술김에 연락하기도 했고, 입버릇처럼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 상황과 여건이 연애를 해선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 사람을 기다렸고, 연락이 오기를 바랐다. 더 나아가 이 사람을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나와 달리 그 사람은 나를 특별히 여기지 않았다. 어느 밈처럼 나는 '뭐 되는' 사람이 아녔고, 무허가로 들어온 그 사람은 정처 없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길어진 짝사랑의 유통기한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놓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난 이 사람을 오래 보고 싶기에, 썩기 전에 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만 하는 노력이지만, 말이라도 하는 노력이다. 예측불허의 일상이지만, 그래서 가장 힘든 건 내 감정의 동요다. 난 여전히 맛있는 걸 먹으면 당신이 생각나고 있으니. 고작 짝사랑 주제에.
오지랖이 프로페셔널한 덕분에 나는 어느 정도의 친절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순간에도 남을 위하고, 남을 해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철학도 일부 동기화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지하철에서 급하게 마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바닥에 가방을 깔고 하다 자리가 생겨서 앉게 된 그날, 노트북을 켜고 급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맞은 편의 중년의 여성이 눈에 밟혔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처럼 보였고 보통이라면 자리를 비켜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고, 30분 뒤에 마감을 해야 한다는 핑계가 족쇄처럼 느껴졌다. 친절도 그들이 필요로 할 때 베풀어야지- 가 나의 개똥철학인데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 불편해 보였고 나의 자리가 간절해 보였다. 나는 비켰어야 했는데, 이 생각을 죄의식 삼아 오늘 밤을 지새운다.
고작 달에 30만 원 벌 때, 나는 유니세프에 매달 3만 원씩 기부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고 이를 말했을 때, 공통된 반응은 ‘네 팔자나 생각해’였다. 윤리의식이 투철하다거나, 남을 도와야겠다는 희생정신이 뚜렷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코가 석 자가 맞았고 나는 정부의 지원이 간절할 만큼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맘때 느꼈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갈 베푸는 것도 여유가 있는 사람만 가능하구나.
부티 난다는 말을 고깝게 들었지만 지금은 그 내재된 여유를 뜻하는 거라 생각해 사실 엄청나게 부럽다. 부티는 사치와 향락으로 기준 삼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할 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소득분위 따위로 결정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 부티가 갖고 싶어서 어렸을 적부터 기부를 통한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참 아쉽게도, 지금까지도 나에게 그런 부티는 없어서, 내 팔자에나 신경 쓰면서 살고 있다. 친절도 여유에서 나오는 이 삶이 달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