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개 Jan 02. 2023

의미부여

나는 누군가에게 특별해질 수 있을까? 내가 당신을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당신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야 하는, 그런 의무감 따위가 당연히 생길 리가 없다. 그래서 잘 알고 있다. 나를 향한 당신의 모든 것이 특별하지 않고, 나는 의미부여를 해선 안 된다는 것을.


 3년 만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물어봤다. 어떤 점이 당신을 사랑에 빠지게 했냐고. 대답하지 못했다. 현실성 없는 얘기지만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좋다고. 그렇게나 사랑하다니― 하며 부러워하다가도, 나는 그럴 수 없겠지― 하며 슬퍼했다. 나 역시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쉽게 말할 수 없다, 너무 많은 탓에.


 이미 나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 안 되는 것에 목메다는 것이 가장 나다운 삶이긴 하다만, 정말 많은 것을 해내도 결국 가장 소중한 당신의 마음을 얻어내지 못했다. 불가능을 확인하는 건 제법 슬픈 일이다. 끝내 확인하지 않고 싶었는데, 나는 기어이 확인했고, 또 확인했다.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커졌을 때, 반대로 나에 대한 그 사람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었다. 줄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구애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에,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두 번째로 확인한 그날에는 정말 앓아누웠다. 작년 한 해 동안 단 한 번도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었는데, 삶의 의지를 놓은 것처럼 아팠다. 이상한 일이지,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어서 학교 다닐 맛이 나다가 그 선생님이 이직한 느낌이었다. 이게 성인이 돼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니. 그래, 모든 사랑에 순수하진 않아도 순진하긴 했었다.


 원래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빛나고, 멋있고, 동경하고, 내가 함부로 나와 함께하자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항상 깔끔하게 나와의 관계를 재단해 줬고, 나는 이 정리마저도 좋아했다. 이성적으로는 그게 가장 옳았고, 나 역시 추구하는 방향이었다.


 나의 욕심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녔겠지만, 나는 나의 모든 용기를 끌어 모은 결과였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녔다. 나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 나는 업무를 다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나는 모르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만나지 않는다. 나는 아무 사람에게나 보고 싶다고, 예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술기운을 빌려서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지 않는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니, 그 사람을 더 보려는 자기만족을 위해서는 내 마음 고이 접어 어딘가로 버려야 한다. 마음이 생기기까지는 몇 개월이 족히 넘어섰고, 지옥 같았던 32일 동안 그 마음은 몇 곱절 더 커졌지만, 나는 버려야만 한다. 버리고 싶지 않고, 솔직히 더 키우고 싶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 마음을 오랫동안 더 간직할 자신이 있다. 근데 나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에, 이게 당신에게 또 피해가 되겠지.


 당신이 내려준 결정이 이상적이고, 행복한 방법인 거 같다. 행복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방법이 당신이었기에, 나는 성사 가능성을 애초에 크게 잡지 않았다. 그래도 여태껏 나는 진심이면 통할 거라 생각했는데, 진심으로 거절당했다. 승부욕이 강한 편이지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져야 하는 논리에 굴복하는 편이다. 패자가 나에게 어울리는 위치인 것도 납득한다.

 짝사랑의 유통기한이 이번엔 유독 길다. 내 뛰어난 방어기제를 그 사람이 얼마나 흔들어놨는지, 나는 이래 본 적이 없다. 귀국 후 생긴 버릇이 두 개가 있다. 빌어먹게도 새벽 5시면 눈이 떠지는데, 내가 먼저 확인하는 건 당신의 연락이다. 둘 다 어쩌다 생긴 습관인지 모르겠다. '미라클 모닝'에도 불구하고 기적은 없겠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당신과 맛있는 걸 먹고 싶다, 단지 그게 전부였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여전히 어른인 척하는 것에 대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