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란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진 Feb 25. 2024

15. 그란마

#335 보복

보복

  쿠바가 설탕을 판매한 대금에 해당하는 소련의 원유가 도착했다. 쿠바의 환심을 사고자 한 소련은 설탕 값을 국제 가격보다 비싸게 쳐주고 원유는 낮은 가격에 공급했다. 원유는 정제해 휘발유 같은 석유제품으로 가공해야 한다. 쿠바에는 쉘, 텍사코 등 3개 정유공장이 있었다. 쿠바 국립은행 총재를 맡고 있던 체 게바라가 이들 정유 공장에 쿠바 정부의 채무를 정유로 상환할 테니 받아서 정유하라고 했다. 워싱턴과 미리 상의한 정유사들은 소련에서 생산된 원유라는 이유로 정제를 거부했다. 피델이 직접 나서서 이들에 정유를 명령했어도 원유 수입권을 상실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쿠바 정부가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피델은 앞으로 3개 정유사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고 명령했다. 미국 기업의 재산임을 존중하지만 매일매일의 운영은 쿠바 정부가 결정한다는 뜻이었다. 쿠바의 급소를 잘 아는 미국은 설탕 수입 쿼터 삭감으로 보복했다. 오랫동안 미국은 설탕을 정해진 가격으로 구매해 왔다. 가격이 정해진 조건에서 미국의 설탕 수입 쿼터를 줄인 조치는 단일 품목 수출에 의존한 쿠바 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미국이 설탕 수입량을 줄이니 생산되지 못한 사탕수수가 들판에 버려져야 했다. 달리 방안이 있을 수 없는 쿠바는 미국이 사지 않고 남은 설탕을 소련에 사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1960년 5월 제1차 라틴아메리카 청년 대회가 폐막하는 날이었다. 경기장 모든 좌석에 사람이 꽉 찼다. 그 행사에서 피델은 쿠바에 있는 모든 미국인의 자산을 몰수하고 국유화한다고 선언했다. 정유회사가 첫 번째로 거명되었고 은행, 통신, 전기회사, 36개 설탕 회사와 커피 농장을 포함한 26개 회사와 쿠바 정부가 추정한 가치로 8백만 달러가 대상에 해당했다. 미국에 설탕을 판매한 대금에서 기금을 적립해 15년 뒤에 2%의 이율을 적용해 소유자들에게 몰수한 자산의 값을 지급한다고 했다. 피델이 국유화 대상 기업의 명단을 하나씩 거명할 때마다 군중들은 환호했다. 특히 24번째로 유나이티드 푸르트사를 공개할 때 체 게바라가 한 남자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1954년 유나이티드 푸르트의 토지를 몰수했다가 CIA의 사주를 받은 군부와 미국의 폭격으로 전복된 과테말라 전 대통령 야코보 아르벤즈였다. 아르벤즈가 자리에서 일어나 피델과 체 게바라를 포옹했다.

미국이 바나나와 해군으로 과테말라를 침략한 역사서

 군중들은 환호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본 한 기자는 두 번째 독립을 맞는 날 같았다고 현장 분위기를 기록했다. 행사장을 나오는 아바나 시민들은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라도 혁명을 지켜낼 것을 서로 다짐하고 약속했다. 혁명을 상징하는 정책이 된 미국 재산의 몰수와 국유화는 계속 이어졌다.  체이스 맨해튼, 뉴욕 퍼스트뱅크 같은 미국 은행의 자산이 몰수되었고, 쿠바인들이 소유한 105개의 제당소, 18개 술 공장, 8개의 철도 회사, 백화점, 호텔, 카지노 등도 대상이 되었다. 미국은 쿠바 설탕 구매를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기금을 조성할 수 없게 되었으니 국유화된 기업의 소유자들에게 값을 지급할 수도 없었다. 혁명 정부는 대혼란 속에서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쿠바를 지배하던 소수의 재산과 특권을 빼앗아 다수 민중에게 배분했다. 민중들은 토지를 얻고 임금 인상과 교육과 자유도 받았다. 민중들은 더욱 혁명을 지지했고 혁명을 급진적으로 몰아갔다. 혁명 정책은 빠르게 왼쪽으로 치우쳤다. 사회 경제적으로는 개혁이 확대되었지만 반대로 정치는 위축되었다. 혁명하기 전에는 빠르게 선거를 실시하고 언론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의 적대적 태도는 혁명 정부가 정치적 자유를 지체하는 명분이 되었다. 쿠바인들은 정치와 언론 자유는 제약되더라도 100년 이상 쿠바를 짓눌러 왔던 미국과 꼭두각시 바티스타 체제를 타파하고 있는 혁명 정부의 정책에 동의했다. 피델은 카리스마와 권위라는 광채를 쏟아내는 다윗이었고 그의 카리스마는 미국이라는 골리앗에 대한 적대감과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개혁에 대한 민중의 지지와 어우러져 혁명 정부의 급진성을 가속했다. 혁명이 가속할수록 그 지지는 피델에 압축되었고 권력도 피델에 집중되었다. 피델은 CDR이라는 새로운 전국 조직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피델은 ’모든 쿠바 사람들은 모든 골목마다 누가 살고 있는지, 골목에서 무엇을 하는지, 바티스타 정권의 폭정과 어떤 관계였는지,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지, 그리고 누구를 만나는지' 이 조직을 통해 경계할 것이라고 했다. 피델이 이 선언을 하는 동안 연설대 계단에서 폭탄 2발이 터졌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 년간의 고독>은 1928년 콜럼비아 유나이티드 프루트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 파업 사건을 다루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5. 그란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