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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배의 노하우 Feb 24. 2020

무탈한 하루

 아침에 애들을 보내 놓고 출근하고 나면 와이프와 카톡을 나눈다. 오늘 하루 좋은 하루 되라고. 어느 날 나는 와이프에게 ‘무탈한 하루’ 보내라고 보냈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어린 시절에는 무탈한 하루는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조금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기를 희망하기만 했었다. 물론 희망한 대로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 하루는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은 평소보다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대하며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는 순간순간이 설레기도 하고, 아니면 설레는 일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누군가가 인연의 끈이 얽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도 갖게 되고, 사소한 신호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가 있게 다가왔다. 피곤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설레고 흥미로운 일들을 찾아야만 했다. 당장 눈앞에 그런 일들이 보이지 않을 듯하면, 그런 일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자 했다. 나와 같이 할 일 없는 친구를 불러내기도 하고, 괜스레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가 기대했으나 기대하지 않은 듯한 일들이 일어나기를 또 기대하기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겨를이 없었다. 또 다른 내일의 설렘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본다. 지난 주말부터 불편하다고 하시던 장모님의 허리가 점점 더 불편해지고 있다. 진통제를 드시면 좀 나아지실 거라 말씀드렸지만, 진통제에 대한 불신이 사위에 대한 믿음보다 강하시다. 철떡 같이 믿었던 한의원의 수십만 원짜리 한약은 일주일만 먹으면 달라질 거라 했지만, 일주일을 견딜 수 있을 만한 통증의 완화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 사흘 넘게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시던 장모님을 아침 일찍 모시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고 했던 검사는 환자부담으로 진행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선생님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해주셨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상황이고, 진통제만 잘 복용하고 물리치료 잘 받으면서 수술이나 시술 시기를 최대한 늦춰보자고. 처방해 주는 진통제는 장모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으니, 처방에 따라 잘 드시면 훨씬 나아질 거라는 내가 그렇게 해도 듣지 않으시던 그 말도 함께 해주셨다.  


 각종 검사에 물리치료까지 마치고 출근한 회사는 또 다른 무탈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쩜 그리 같은 상황과 조건임에도 다르게 이해를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인지,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에 대한 반성을 다시 함과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와 존중을 하고 나면 나는 이미 많은 탈이 나 있는 상태가 된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후배는 급히 보자고 한다. 후배들에게는 항상 미안함이 있다. 내가 선배들에게 받은 만큼 못해준 것도 같고, 선배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다. 그렇게 또 저녁시간에 후배를 만난다. 후배는 고민이 많다. 얼마 전에도 전화로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내가 감히 조언을 할 입장이 아니지만, 그 기대로 먼 길을 달려온 후배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나 역시 나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내 상황을 벗어날 돌파구를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고맙다고 하는 후배보다 나 스스로가 나에게 더 고마운 상황이다.


 오랜만에 내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집에 오는 길에 오늘 하루는 무탈했는가 생각해 본다. 바빴다. 신경 쓸 일도 많았다. 내 일만이 아니라 가족들과 동료 후배들 일로 많은 탈이 있었다. 나 역시 그들에게 많은 탈들을 만들고 살고 있다. 밥 한 끼만 부실하게 먹어도 걱정하시는 장모님과 작은 변화에도 크게 반응해 주는 동료들과 선후배들이 있다. 하루의 일상이 탈이 나고 그 탈을 수습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어느 순간 무언가 설레고 흥미로운 일들이 발생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탈이 없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쳐서였을 수도 있다. 반복되는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탈 들을 수습하며 지내온 하루하루가 어느 정도 쌓여서 그럴 수도 있다. 어쩌면 탈이 날 것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무언가 새로운 그리고 설레는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러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갖고 싶던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갖게 되더라도, 그 만족감은 한계효용의 법칙을 어긋나지 못한다. 한 개 두 개 늘어갈수록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호기심의 반감기는 더욱 단축되고, 만족감은 복리이자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게 된다.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아무 탈 없는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탈이 생길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에 탈이 생길까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보냈음을 감사하고 또 내일도 무탈하게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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