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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Nov 11. 2024

#장면 1

 눈이 내린다. 여기는 아주 오래전 모두가 잊은 무언가가 있는 곳이다. 하얗게 천천히 소복이 쌓인다. 푸릇했던 이파리는 모든 수분을 빼앗겨 천천히 바스러졌지만, 땅은 살아서 무언가를 품고 있다.

 검은색 흑발의 작은 사람은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며 천천히 차가운 눈을 쓸어 모은다. 모서리가 보이는 밤, 차가운 비석에는 기억에서 지워진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누군가의 사랑일지도 아니면 원망일지도 모를 글씨에는 먼지처럼 사라진 숨결이 담겨있다.

 파랗게 변한 손 사이에 입김을 불며 또 다른 모서리를 찾는 어두운 하루, 저 멀리 천천히 다가오는 빛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다시, 저 멀리, 붉은 해가 검은 장화를 향해 손을 뻗는다.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 뒤에 놓인 작은 사람은 미동 없이 숲을 쳐다본다. 천천히 다가오는 바람 그리고 겨울. 그는 또다시 눈을 쓸고 담으며 모서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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